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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수 14만 '한공주'의 흥행 이유와 의미
입력 : 2014-04-28 오후 7:42:06
◇'한공주' 포스터 (사진제공=무비꼴라쥬)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이게 기뻐해야 될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사회적으로 슬픈 기간인데, 이 영화가 흥행하고 있고, 사실 좀 혼란스럽네요."
 
영화 '한공주'의 흥행에 대한 소감을 묻자 연출을 맡은 이수진 감독이 전화기 너머로 건넨 말이다. 지난 16일 전라남도 진도 부근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애도 분위기 속에서 맞은 성과라 내놓고 좋아할 수도 없는 이 감독의 진심이 묻어난 말이다.
 
국내 독립영화 역사상 최단시간인 9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했고, 11일 만에 14만 관객을 돌파해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누군가 봤을 때는 굉장히 초라한 수치일 수 있지만, 국내 영화 시장을 보면 그 어떤 영화의 흥행보다도 의미있는 숫자다.
 
관객 1만명만 들어도 흥행작으로 분류되는 독립영화가 기록한 14만 관객이라는 수치. 의미가 다양하고 많다.
 
◇성폭력을 소재로 한 착한 연출
 
영화는 끔찍한 일을 당한 한공주(천우희 분)의 뒤를 따라다닌다. 고릴라 가면을 쓴 남학생 40여명에게 차례로 끔찍한 일을 당한 한공주가 살아가기에 위해 어떤 안간힘을 쓰는지 보여준다.
 
자극을 최대한 빼고 한 여학생의 희망에 초점을 맞췄다. 오랜시간 공을 들여 만든 자신의 영화가 흥행하는 것에 기뻐하기에 앞서 혼란스럽다는 이수진 감독의 심성이 스크린에 그대로 묻어있다.
 
이 감독의 착한 심성은 인터뷰 때도 드러난다. 수 년전 밀양에서 벌어진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지만 인터뷰 내내 그 단어를 스스로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성폭행'이라는 말도 쓰지 않았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로 나눠 고발과 처벌을 말하기 보다는 상처 받은 가상의 인물의 삶에 집중하고 응원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희망이라는 단어를 머릿 속에 떠올리게 된다. 연출자와 배우들의 힘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앞서 이 감독은 "뉴스에 나오는 사회 범죄를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이유로 영화를 만들었다. 분노하고 화내는 게 과연 옳은일인가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하게 된 영화"라며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흥행과 별도로 많은 사람들이 보기를 원했다.
 
또 성폭행을 소재로 다룬 영화는 자칫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이 들어가면 비난의 화살을 받는다. 지난해 '소원'을 만든 이준익 감독도 이 부분에 크게 고민했다고 전했다. 이 영화는 개봉전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이 감독의 올바른 심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천우희부터 단역까지..최선을 다한 배우들
 
이 영화의 타이틀롤을 맡은 천우희가 없었다면 '한공주'는 수작으로 불리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상처 받은 여학생의 아픔을 담담한 표정과 대사로 풀어내는 연기는 기성연기자들도 하기 힘든 역할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처음 보는 순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중력이 좋고 연기자로서 갖춰야할 감각과 재능이 넘치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뿐 만 아니라 밝고 건강한 새 친구 은희 역에 정인선, 다소 가볍지만 잔정이 넘치는 친구 화옥 역의 김소영, 주변 사람들에게 린치도 당하고 경찰과 바람도 피는 등 복합적인 감성을 가진 조여사 역의 이영란까지 이 영화에는 연기를 잘한 배우들이 많다.
 
아울러 공주에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가해자 학생부터 선생님 어머니를 때리는 단역들도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 감독은 정인선에게는 연기에 기본적인 틀이 잡혀있다며 영화가 위기에 처한 당시 구세주 역할을 했다고 고마워했고, 김소영은 화장을 지우니 순수하고 풋풋한 19세의 감성이 드러나 좋았다고 표현했으며, 이영란에 대해서는 신인감독을 배려하는 모습과 다양한 감정을 완벽히 표현해준 것에 대해 감사해했다.
 
그는 "이 영화는 배우들의 명연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호평받지 못했을 것이다. 천우희부터 단역까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고맙다"며 "사실 이 영화가 런닝타임이 길어졌다. 배우들 덕분에 완성도 있게 영화가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애초 예상했던 100분 전후에서 10여분이 길어진 '한공주'를 보면서 시계를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무겁고 어둡지만 몰입도와 긴장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이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명연기 덕분일 게다.
 
◇독립영화의 흥행..한국영화의 폭을 넓히다
 
그간 우리 주위에는 여러 독립영화들이 존재했다. 예측할 수 없는 반전과 긴장감, 유머감각을 지닌 노영석 감독의 '조난자들', 납치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또 다른 납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유원상 감독의 '보호자' 등 여러 영화들이 개봉했다.
 
하지만 거대한 자본과 든든한 제작사와 배급사의 지원을 받은 영화들에 밀려났다. 영화적 완성도와 재미는 더 뛰어났다고 말할 수 있었음에도 관객들에게 제대로 보여지지 못했다. 상영관의 수가 적기도 했고, '한공주'처럼 관객들의 관심이 관람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울러 지난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은 극장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애도의 시기라 발걸음이 뜸해졌다. 그런 와중에 '한공주'는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독립영화계의 커다란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웰메이드 영화의 흥행이라는 점도 있지만, '한공주'가 많은 관개들에게 한국 독립영화의 수준을 알린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기도 하다. '한공주'는 상업영화만큼 즐거움이 있는 독립영화가 있다는 사실과 거칠고 실험적이고 어렵고 무거운 영화만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계기의 영화라 할 수 있다.
 
독립영화가 폭이 넓어지면 한국영화의 폭도 넓어진다. 독립영화에서 활약한 배우들이 상업영화에 출연하고, 연출자들이 거액의 돈을 투자받고 새 영화를 만들게 될 수도 있다. 관객들 역시 커다란 스케일의 영화보다는 작은 영화를 세심하게 찾게 될 수 있다. '한공주'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한국영화의 성장이라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함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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