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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숙인 '스타 마케팅'과 '끝까지 간다'의 차이
입력 : 2014-06-29 오후 4:00:31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지난해는 한국영화의 해였다. 연기력, 스토리, 표현력 등이 할리우드 영화에 뒤쳐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르네상스를 구가했다. 하지만 불과 6개월 만에 한국영화는 관객의 외면을 받는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수상한 그녀>를 제외하면 올 상반기 한국영화 중 500만 관객을 넘긴 작품이 없다. 지난해 9개의 영화가 5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한 수치다. 세월호 참사 영향으로 영화관을 찾은 관객수가 감소한 것을 고려하더라도 분명 기대 이하다.
 
아울러 올해에는 현빈, 송승헌, 장동건, 차승원 등과 같은 이른바 흥행이 담보되는 배우들이 총출동했음에도 줄줄이 흥행에서 참패를 맛봐야만 했다. 무엇이 이토록 단 6개월 만에 한국영화의 주소를 뒤흔들어 놨을까.
 
◇<역린>·<우는 남자> 포스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스타에게만 의존..창의력 부재한 자기복제
 
지난 4월 개봉한 <역린>은 조선시대 정조의 암살 시도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려낸 영화다. 군 제대 후 복귀한 현빈에 조정석, 정재영, 김성령, 한지민 등 스타들이 대거 투입됐다. 제작비도 약 120억원이 투입된 대작이었다.
 
하지만 누적 관객수 384만명을 기록, 손익분기점(320만)을 간신히 넘기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개봉 전 1000만 영화 기대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한 성적이다.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를 연출한 MBC 이재규 PD의 첫 입봉작으로 기대감이 컸지만, 뚜껑을 연 <역린>은 드라마 PD의 한계만 남기고 말았다.
 
송승헌이 데뷔 18년 만에 첫 노출연기를 시도한 <인간중독> 역시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송승헌의 노출 마케팅을 앞세운 이 영화는 베트남 전쟁 직후 1969년 군 관사를 배경으로 군인이 부하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러브 스토리를 담았다.
 
<음란서생>, <방자전> 등 19금 영화에서 특출한 능력을 발휘한 김대우 감독과 송승헌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뿌렸지만, 누적관객수 143만여명에 그쳤다. 손익분기점인 150만도 넘기지 못했다.
 
그나마 위의 두 작품은 선전했다고 평가된다. 장동건이 나선 <우는 남자>는 제목대로 울어야만 했다. <아저씨> 신드롬을 일으킨 이정범 감독의 신작인 이 영화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킬러로 길러진 한 남자가 우연한 사고를 겪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장동건과 김민희의 호흡에 스케일이 큰 화려한 총격 액션신을 내세웠지만 개봉 4주차 60만 관객만이 이 영화를 봤다. 100억원이 넘는 큰 돈이 투입돼 500만 이상의 관객을 바라봤지만 현실은 예상에 비해 훨씬 밑도는 성적만 남겼다. 최근 연속된 실패로 부활을 다짐한 장동건과 꾸준히 흥행 성적을 낸 김민희에게도 <우는 남자>는 또 하나의 실패작으로 남게 됐다.
 
영화 관계자들은 이 같은 한국영화의 부진을 두고 스타들에게만 의존한 '자기복제'를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한 영화 관계자는 "대스타가 나오지만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져 관객의 외면을 받는다. 최근 멀티캐스팅이 트렌드가 됐는데 딱히 이유가 없는 이름값 높은 캐스팅만 보인다. 제작사의 안일한 스타 의존은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한국영화가 잘 된 이유중 하나는 <더테러라이브>, <감시자들>, <숨바꼭질>, <관상>처럼 독특하고 신선한 형태의 영화가 등장했기 때문"이라며 "올해는 새로울 게 없는 영화들이 줄줄이 등장하고 있다. 김대우, 이정범 감독 역시 전작에 기댄 자기복제형 작품을 내놓고 있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 관객들을 만족시키지 못해 흥행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끝까지 간다> 포스터 (사진제공=쇼박스 미디어플렉스)
 
◇개봉 31일 만에 300만 돌파..<끝까지 간다>가 성공한 이유
 
한국영화의 부진 속에서도 한 줄기 빛처럼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 <끝까지 간다>다. 지난 5월 말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31일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한국과 할리우드 대작들 사이에서 일궈낸 유일한 성과다.
 
우연한 사고로 시체를 유기한 강력계 형사 고건수(이선균 분)과 그 모든 사실을 알고 고건수를 협박하는 교통계 형사 박창민(조진웅 분)의 혈투가 담긴 이 영화는 이선균과 조진웅 외에는 많은 인물들이 출연하지 않는다. 스타 마케팅도 따로 없었다.
 
오롯이 영화 내용만 가지고 승부한다. 독특한 발상에서 출발한 이야기와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박진감 있는 구성, 매끄러운 전개, 실제를 방불케하는 현실감 있는 액션, 배우들의 호연이 시너지 효과를 냈다. 완성도 면에서 올해 가장 뛰어난 국내 상업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영화는 <우는 남자>, <하이힐>, <엣지 오브 투모로우>, <엑스맨:데이지 오브 퓨처 패스트> 등 대작들과 맞붙는 과정에서 1~2위를 오가며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손익분기점인 170만 관객도 훌쩍 넘겼다. 절대치로 봤을 때 엄청난 흥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작품 예산이나 스타마케팅이 없었던 점 등 기대감이 높지 않았던 상황에서 큰 성공이 아닐 수 없다.
 
<끝까지 간다>의 성공은 스타마케팅보다는 촘촘한 연출력과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가 결합한 만듦새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은경, 성동일, 나문희 등 연기파 배우들을 내세운 <수상한 그녀>가 800만 이상의 성적을 낸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스타마케팅의 경우 개봉 1주차에는 막대한 영향을 줘 관객 동원에 수월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입소문의 영향이 더욱 커 완성도가 좋지 않은 영화는 결국 뒷심을 발휘하지 못한다"며 "결국 시나리오와 만듦새가 흥행의 성패를 가른다"고 말했다.
 
한국영화가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다. 
 
함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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