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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맛의 인문학)⑨설렁탕-일상의 음식이 주는 위안과 소박한 삶의 비의
입력 : 2016-04-06 오전 6:00:00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마지막 대사는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로 시작한다. 당시에 설렁탕이 서민에게 그만큼 귀한 음식이었던 정황을 보여주는 대사다. 문득 드는 잡생각. 현진건 시기에 비하면 거의 누구나 설렁탕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요즘이야 말로 정말 ‘운수 좋은 날’들이 아닐까. 꽃이 피는 듯 벌써 지는 게 깍두기 한 점에 소주 한 병은 설렁탕 국물과 훌쩍 반주로 함께 넘겨야할까 보다.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조금 길게 다녀와서 찾는 음식을 꼽자면 모르긴 몰라도 설렁탕이 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 평소에 일상으로 대하는 음식의 목록을 작성해도 마찬가지다. 나만 해도 1주일에 최소 한 번은 설렁탕을 먹는다.
 
내 입맛이 당겨서 먹는가 하면, 누군가 먹으러 가자고 해서 먹는다. 염천이면 모를까, 어지간한 날씨라면 한 끼 식사로 설렁탕만한 게 없다. 한국인 가운데 특별히 국물이 많은 음식을 싫어하거나 고깃국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설렁탕에 큰 거부감이 없는 편인 게, 우리 음식문화가 국문화이다. 맛을 논외로 하면, 국은 알다시피 적은 재료로 많은 사람이 나눠먹을 수 있는 음식의 형태이다. 우리 입장에서 조금 미화한다면 상생의 미덕을 구현한 음식이 국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 솥에서 끓여내는 국물음식인 찌개에 비해 국은 더 묽다. 그 말은 재료의 생산성이 높다는 뜻이다. 200~300g의 고기는 한 사람의 끼니에 불과하지만, 무나 파에 향신료를 섞으면 대여섯 명이 너끈히 먹을 수 있는 국으로 변신한다.
 
우리 문화에서 국은 밥과 함께 밥상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갖는다. 함께 끓여내지만 따로 제공되는 음식이 밥과 국이다. 밥그릇과 국그릇은 독립된 개인의 기본 생존요건이다. 별도로 밥과 국을 받으면 존중받는 한 인격체가 되었다는 얘기다. 다른 반찬은 밥상에서 공유해도 국과 밥은 개인별로 구별하여 먹는다. 그래서 국의 높은 생산성은 음식과 인격의 효능을 모두 제고하는 방향으로 발휘되었다고 재미 삼아 한 번 주장해볼 수도 있겠다.
 
아무려나 밥과 국은 한국인에게 개체를 산정하는 기본단위인 건 분명하다. 옛말에 인간 남성의 성적 욕망과 관련하여 문지방 넘을 힘과 더불어 밥숟가락 들 힘이 종종 인용된 걸로 봐도 그렇다. 성욕은 개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밥숟가락에 따라붙는 선정성이 국숟가락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사실 국만 떠먹는 독자적인 숟가락은 없다. 밥숟가락이 국숟가락이다. 밥과 국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고, 한국인 개체의 존재를 상징하는 단위임이 확실하지만 밥에 비해 국의 상대적 지위는 떨어진다.
 
밥숟가락 들 힘
국이 본질에 가까운 음식이라고 규정한다면, 밥은 현상에 가까운 음식이다. 인간은 밥과 같은 에너지원으로부터 기동할 힘을 얻는다. 인체에 제공된 에너지원은 인간 세포내의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연료가 된다. 미토콘드리아에서 생성된 전기에너지는 인간을 생물로 기능하게 만드는 물리적 힘을 산출한다. 미토콘드리아 한 개에서 생성하는 에너지는 매우 작지만, 인체에 60~100조 개의 세포가 존재하고 세포마다 미토콘드리아가 입주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구조로 인해 인간은 비로소 물리적인 의미에서 인간이 된다. 밥숟가락을 떠야, 밥숟가락을 들 힘이 생긴다.
 
지금까지 설명으로는 밥이 더 본질 같은데 왜 국이 본질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일까. 편의상의 설명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우리 몸을 구성하는 가장 많은 물질이 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국에다 본질을 연결한 논법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성인 남자의 60%, 성인 여자의 55%는 수분이다. 아기는 80% 정도이고, 갓난아기의 체내 수분 정도는 이보다 더 올라간다. 아기 피부의 윤기와 부드러움은 아마도 체내 수분비중으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공기와 마찬가지로 물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기원이자 존속의 조건이다. 비아그라 같은 해피 드럭의 등장으로 현대는 밥숟가락 들 힘이 없어도 문지방을 넘어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물이 없으면 손도 발도 발정도 없다. 인간은 지금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지만 인간의 조상은 물속에서 태동했고 물속에서 숨 쉬고 물속에서 살았다. 뭍으로 나온 이후에 공기를 통해 호흡하고 있지만 여전히 물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살고 있다.
 
밥과 국은 인간이 간접적으로 수분을 섭취하는 통로이다. 밥에도 당연히 수분이 들어 있지만, 국과는 비교가 안 된다. 국은 인간으로 치면 갓난아이 수준의 수분함량을 갖는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밥숟가락이 세상을 움직이는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실제로 그럴지 모르지만 국숟가락 없이 밥숟가락은 존립 자체를 논할 수 없다. 숨어 있는 본질, 또는 본질의 은닉은 밥과 국의 비유에서 확연하게 포착되며,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래서 딱히 삶의 비의라고 할 것이 없지만, 이 은닉의 파악이 삶과 세계를 이해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명료하다. 쉽게 정리하면 밥은 국과 함께 먹어야 맛있다이겠다.
 
태양계 곳곳에서 유래한 물
성인 기준으로 우리 몸의 절반 이상을 구성하는 물은 어디에서 왔을까. 화학적으로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가 결합한 게 물이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많은 물질이고, 별의 폭발 과정에서 생성되는 산소는 수소만큼은 아니지만 비교적 흔한 물질이다. 두 가지 흔한 물질이 합체하여 물이 생겨났다.
 
그러나 태초에 생명을 탄생케 한 우주의 인큐베이터인 물은 원래부터 이곳 지구에 존재한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지구 표면적의 4분의3을 덮고 있는 물이 어디에서 왔을지 고민하다가 지구 밖을 물의 고향으로 지목하였다. 40여 억 년 전 불덩어리 원시 지구에는 물이 별로 없었다. 지금과는 달리 세상이 혼란 그 자체였을 때 지구는 달과도 충돌하였고, 수많은 혜성과 소행성의 도래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지구에 충돌한 무수히 많은 혜성과 소행성 등 외부 천체가 지구에 물을 가져다주었다는 가설은 비교적 최근에 태양계를 떠도는 혜성의 물질을 검사한 결과, 물이 혜성의 적잖은 부분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그 물의 성분이 지구와 동일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입증되었다.
 
혜성의 고향은 저 멀리 오르트구름이다. 태양계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오르트구름은 지금은 행성의 이름을 빼앗긴 명왕성을 지난 카이퍼벨트, 그 너머에 태양계의 껍질처럼 위치한다. 복숭아로 치면 태양이 씨앗이고 오르트구름은 껍질이 된다. 태양계라고 불릴 수 있는 마지막 지역이 오르트구름이다. 혜성은 태양계의 끝에서 인간의 감각으론 한 없이 먼 거리를 이동하여 불쑥 우리 앞에 타오르며 물과 광물을 지구에 전해주었다. 그렇게 지구에 쌓이고 쌓인 물은 아마도 수증기 상태로 존재하다가 지각이 식기 시작한 어느 날 태초의 비로 셀 수 없이 많은 날을 내려 지구에 바다를 만들었다. 많은 신화에서 묘사하는 모습 그대로이다.
 
오르트구름과 카이퍼벨트에서 전해진 물로 구성된 우리 몸은,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 마찬가지로 그 어둡고 춥고 머나먼 곳에서 유래한 물을 이용해 국을 끓여 먹는다.
 
곰탕은 고깃국물 설렁탕은 뼛국물
우리 몸이 별의 잔해로 구성되었다면 우리가 먹는 것 또한 별의 잔해로 구성된 게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 눈앞의 설렁탕은 오랫동안 고은 뽀얗고 뜨거운 맛있는 욕망이다. 설렁탕은 우리 음식이며 동시에 농경문화의 음식이다. 쇠로 만든 솥에다 쇠머리, 쇠족, 쇠고기, , 내장 등을 모두 함께 넣고 장시간 푹 고아서 곰국으로 만들어야 한다. 유목민에게도 잠시는 가능한 음식이겠지만 대체로 정주민이 향유할 수 있는 음식이라 하겠다.
 
설렁탕의 유래에 관해서는 공통적으로 제시되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세종대왕이 등장하는 설에서는 세종이 선농단에서 친경(親耕)을 할 때 갑자기 심한 비가 내려 한 걸음을 옮기지 못할 형편에 처하여, 허기를 달래고자 친경에 사용한 소를 잡아 맹물에 넣고 끓여서 먹었는데 이것이 설렁탕이 되었다.
 
다른 설도 비슷한데 역시 농사와 관련된다. 조선시대에 임금은 봄이 오면 곡식의 신을 모신 선농단(先農壇)과 양잠(養蠶)의 신을 모신 선잠단(先蠶壇)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 또 백성들과 함께 직접 소를 몰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친경 의식을 동대문 밖 지금의 전농동(典農洞)에서 행하였다. 친경례(親耕禮)가 이것이다. 친경례가 끝나고 임금이 수고한 백성들에게 술과 함께 내린 음식이 소를 고기와 뼈째 푹 고은 선농탕(先農湯), 즉 설렁탕이다.
 
곰국과 설렁탕은 혼용되어 쓰인다. 곰탕은 고깃국물, 설렁탕은 뼛국물로 구분하는가 하면, 비슷한 재료로 오랫동안 고아서 만든 국물을 곰탕으로 통칭하기도 한다. 어쨌든 설렁탕에는 소뼈가 들어가야 한다. 소의 뼈와 고기를 우려낸 설렁탕을 유명한 설렁탕집에서는 만원 안팎에 팔고 있어 서민적인 한 끼 식사라고 하기에는 살짝 비싼 느낌이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는 훨씬 덜 서민적인 음식으로 표현된다. 주인공 김 첨지의 아내는 병으로 누워 있다. 소설 안에서 김첨지 아내는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김첨지는 "이런 오라질 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 또 처먹고 지랄을 하게."라며 아내에게 욕을 쏟아내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운수 좋은 날을 만나 인력거꾼 김첨지가 적잖은 수입을 올린 날 그는 아내에게 줄 설렁탕을 사 들고 귀가한다. 결말은 알다시피, 김첨지의 아내가 끝내 살아서 설렁탕을 먹지 못한다.
 
마지막 대사는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로 시작한다. 당시에 설렁탕이 서민에게 그만큼 귀한 음식이었던 정황을 보여주는 대사다. 문득 드는 잡생각. 현진건 시기에 비하면 거의 누구나 설렁탕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요즘이야 말로 정말 운수 좋은 날들이 아닐까. 꽃이 피는 듯 벌써 지는 게 깍두기 한 점에 소주 한 병은 설렁탕 국물과 훌쩍 반주로 함께 넘겨야할까 보다
 
삽화/김희헌
 
안치용 토마토CSR연구소장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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