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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기후변화 시대, CEO의 수준을 묻는다
입력 : 2016-11-07 오전 8:00:00
''금세기 말까지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훨씬 아래로 제한하고, 1.5℃까지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난해 12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파리협정'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2020년 신(新)기후체제를 위한 이 협정이 기존의 교토의정서와 다른 점은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에 감축의무를 부여하는 보편적이고 포괄적 합의라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모든 협정 당사국들은 자율적으로 자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설정해 주기적으로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출하고, 목표이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보고해 국제사회로부터 검증 받는 동시에 점검 결과를 토대로 기후변화대응 수준을 점차적으로 강화해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파리협정'이 지난 11월 4일 공식 발효되었다.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55% 이상을 배출하는 최소 55개국이 비준해야 발효된다는 요건이 10월 5일 이미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유엔이 체결한 협약 역사상 '파리협정'만큼 국제사회의 이토록 신속한 비준을 거쳐 발효된 협정이 없었다는 점은 기후변화가 얼마나 시급하고 중대한 생존의 이슈인지를 증명한다. 사실 단일 이슈로 전세계의 거의 모든 정상이 한 자리에 마주한 회담은 '기후변화'가 유일하다. 우리나라는 최순실 사건 등 정치적인 혼란 속에서 국제적인 공식 발효 하루 전에야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킴으로써 12월 3일부터 이 협정이 적용된다.
 
세계는 이제 '저탄소 사회' 더 나아가 '탈(脫)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협력해야만 한다. 기업과 투자자는 이 전환의 시기에 가장 위험한 지점이자 기회의 중심에 서 있다. 때문에 기업의 경영전략에 기후변화는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일 수 밖에 없으며, 투자자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이기도 하다. 세계는 이미 그렇게 가고 있다.
 
저탄소 경제 사회에서는 탄소경영을 잘 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으로 평가되고, 금융기관의 투자·대출·보험 등에 매우 중요하게 반영된다. 기후변화·물·산림자원 등 환경 이슈와 관련한 전세계 금융기관들의 정보공개 이니셔티브인 CDP는 이런 글로벌적인 흐름을 잘 보여준다. CDP는 특히 기후변화 이슈와 관련해 투자자들이 이용하는 세계 최대의 기업 온실가스 데이터 등 탄소경영 정보 등록소라 할 수 있다. 6000개에 육박하는 기업들의 정보가 등록되어 있는데, 이 기업들의 시가총액 규모는 전세계의 60%를 차지한다.
 
올해 CDP의 기후변화 정보공개프로젝트에 서명한 금융기관들, 즉 전세계 주요 상장기업들을 대상으로 기후변화대응을 위해 어떤 활동과 성과를 내고 있는지에 대해 정보공개를 요구한 금융기관들은 827개에 이른다. 이들의 운용자산은 100조 달러로 전 세계 운용 금융자산의 3분의1에 해당하는 규모다. 기후변화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 여부와 수준이 투자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는 말이다.
 
CDP의 서명기관으로 연기금 중 세계 2위 규모인 노르웨이 연기금과 유럽 최대의 보험회사인 알리안츠나 AXA 등은 석탄산업에 대한 투자철회를 선언하고 이를 회수하고 있다. 선도적인 금융기관들은 UNEP FI(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와 CDP가 협력해 만든 '포트폴리오탄소제거연합(Portfolio Decarbonization Coalition)'에 가입해 투자기업의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 304개의 투자자들은 CDP의 'Carbon Action'(탄소감축행동)에 가입해 1300여개의 기업에 기후변화대응을 촉구하는 내용의 서한을 CEO에 직접 발송하는 등 기업관여(engagement)에 나서기도 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몇몇 기업도 글로벌 금융기관으로부터 기후변화대응 관련 노력과 성과를 CDP를 통해 공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해당 기업들은 이에 적극 대응하기도 했다.
 
기업의 기후변화 이슈와 관련해 또 하나의 의미 있는 흐름이 하나 있다. 바로 공공조달 시장에서도 탄소경영에 대한 정보공개와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텔, 포드, 월마트, 로레알 등 민간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자사의 전세계 공급망 기업들에게 CDP를 통해 탄소경영 정보를 요구해 오고 있다. 저탄소 사슬(low carbon chain)을 구축하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최근에는 정부가 이에 동참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연방조달청은 미국 정부의 조달에 참여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에게 탄소경영 정보를 CDP를 통해 공개하도록 하는 동시에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미 해군도 군납 업체들에게 이를 요구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 그들의 기지에 위협이 된다는 인식 아래 행해진 조치다.
 
우리나라 기업은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일부를 제외하고는 잘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 관련 정보공개 자체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기업이 여전히 다수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와 목표관리제 대상기업들임에도, 즉 기후변화와 관련해 사회적 책임성이 높은 기업임에도 규제 대응 이외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기업도 많다. 무례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필자는 이는 그 기업 CEO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CDP에 따르면 파리협상이 공식 발효된 이후인 내년부터는 우리나라 기업들에 대한 전세계 금융기관들의 탄소경영 정보공개와 배출량 감축에 대한 기업관여가 더욱 강해질 전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연금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강화, 상장기업 ESG 정보공시법과 65개 공적연기금의 ESG 투자 활성화법 발의,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등 사회책임투자(SRI)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촉진하고자 하는 강한 바람이 불고 있다.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바람이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벽을 쌓는 사람도 있고 풍차를 만드는 사람도 있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기후변화 시대, 탄소경영의 시대, 정보공개의 시대! 벽을 쌓을 것인가, 풍차를 만들 것인가. 다시 한번 CEO의 수준을 묻는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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