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기업의 이해 당사자들이 기업에 기대하고 요구하는 사회적 의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수행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존속하기 위한 이윤 추구 활동 이외에 법령과 윤리를 준수하고, 기업의 이해 관계자 요구에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는 것이 사회책임투자(SRI)다. 사회책임투자란 기업의 재무적 성과에만 초점을 맞추는 기존 재무적 투자와 달리 기업의 사회, 환경, 윤리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여 행하는 투자를 가리킨다. 지난해 12월,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경영참여(주주권 행사)를 의미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고 여러 금융기관의 가입이 계속되면서 한국에서도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일찍이 금융투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의제화ㆍ공론화를 이끈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SRI계의 대표적인 기관이다. 창립 10년을 맞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설립을 주도하고 설립이후 현재까지 상임이사로 활동 중인 양춘승 상임이사는 그 공로로 SRI 분야에서 국제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상을 받았다. 양 이사를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실에서 만났다.
- GLOBAL AWARDS CorporateLiveWire 2017 Excellence in Sustainable Investment Services 상을 받았다. 소감은?
우리 포럼의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한국은 아직 SRI·CSR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약한 부분이 있지만, 열악한 상황에서 지속가능성을 다루는 해외의 여러 단체와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점을 높이 봐 준 것 같다. 내게 준 상이 아니라 우리 포럼 직원들에게 준 상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창립 10주년이 됐다. 어떻게 포럼을 창립하게 됐나.
대학원에서 에너지 정책을 전공한 뒤 환경 관련 사업을 하면서 기후변화 문제와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다 사회책임투자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고 돈을 쓰느냐에 따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당시 선진국은 벌써부터 사회책임 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해 관련 단체들이 꽤 있는 편이었는데, 우리나라는 사회책임투자라는 개념조차도 생소했던 상황이라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우리나라에 사회책임투자를 정착시키겠다는 꿈을 가지고 뜻을 함께하는 40여 명이 모여 1년 반 동안 꾸준히 공부하고 토론한 끝에 2007년,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을 창립했다.
- 10년 동안 사회책임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나.
10년 전과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사회책임이나 지속가능성 등의 주제들이 자연스럽게 소화되는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사회책임 문제를 이야기하면 사회주의자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사람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직접 겪기도 하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겪게 되면서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 기업들도 예전에 비해서는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나름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고, SRI나 CSR을 다루는 단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중요한 변화다.
- 어려웠던 점이나 아쉬운 점은 없었나.
자금 문제가 가장 힘들었다. 포럼을 창립하고 단 한 번도 정부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녹록치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10년을 버텨왔고, 점점 인식도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 사정이 괜찮아지면 우리 직원들 월급을 제일 먼저 올려주고 싶다.
- 사회책임투자의 활성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왜 중요한가?
기업은 기업 경영자 개인의 역량만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소비자들이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해주고, 좋은 노동자들이 일을 해주고, 또 좋은 투자자들이 돈을 투자해줘야 비로소 기업은 영업활동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번 돈이 전부 본인의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기업이 돈을 버는 데 이 사회가 연관되어 있다면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 자신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기업을 향한 사람들의 분노를 목격할 수 있었다. 생산된 물건을 사주는 소비자가 없다면 기업은 더 이상 이윤을 추구할 수 없다.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은 기업경영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리스크도 적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자에게 더 큰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SRI를 통한 자본의 선순환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활성화하고 우리 사회를 보다 지속가능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 그런데도 왜 우리나라 기업이나 투자자들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일까.
게임의 규칙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거나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아무도 모범생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사회책임과 관련해 규칙이 제대로 서지 않은 나라에서 기업들은 사회책임을 비용이나 손해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앞장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동안 정부가 사회책임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규칙을 구축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책임한 기업, 단기적 이익만 바라보는 투자자 등 이기적인 이해관계자들이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SRI, CSR이 활성화될까.
SRI·CSR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든 시장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거나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윤리적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모든 것들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기업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회책임 활동을 하는지, 이 물건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이 기관은 어떤 곳에 투자를 하는지 등을 소비자 및 개인 투자자들이 전부 알 수 있어야 한다.
유럽연합(EU)은 유럽연합 국가 내 종업원 500명 이상 기업들이 비재무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다국적기업이 자국에서 벌어들이는 매출의 일부를 사회책임과 관련된 곳에 사용하도록 하기도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활성화할지 정하고, 또 기업뿐만 아니라 소비자나 노동자, 투자자 등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가진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어떻게 구현해 내야 하는지 등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 국내에 CSR을 잘하는 기업은 없나?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산업군에서는 CSR 개념이 나름 잘 퍼져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외의 기업들은 사회적책임에 큰 관심을 보이지도 않고, 이를 비용으로 인식해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CSR을 잘하는 기업을 하나 꼽자면, 2015년 임직원 이익 공유제를 도입한 KSS 해운이 있다. 기존의 상여금 중 일부를 기본급으로 전환해 통상임금화하고 나머지는 회사의 순이익금에 비례하여 배당금액을 달리하는데, 직원들과 더불어 윤리경영을 하는 좋은 사례다.
- 우리나라에도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됐다. 어떤 변화가 있을까.
작년 12월, 한국에도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후 약 5개월까지는 가입이 굉장히 더디게 이루어졌다. 그러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사회책임 투자에 입각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를 공약으로 내고, 또 우리 포럼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그 공약의 실효성을 확보하면서 정권 교체 후 점점 가입기관이 늘고 있다. 금융위원회 위원장,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도 스튜어드십 코드의 중요성 및 정착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가입 기관은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64개의 기관이 가입을 확정했거나 가입의향서를 제출한 상태다. 내년까지 70개 이상의 기업이 가입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주요기관들의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은 그 기관과 관련된 많은 기관이 따라 가입하게 되는 계기가 되므로 아주 중요하다. 산업은행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 확산을 위해 자산운용 위탁사 선정 시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자산운용사에게 가점을 부여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마 많은 자산운용사들이 가입하게 될 것이다. 자본시장의 큰손 격인 국민연금의 경우 연구용역을 진행 중인데, 아마 내년쯤 가입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은 사회책임경영의 강화를 이끌 것이다.
- 사회책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사회책임과 관련된 내용이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책임 있는 소비에 대해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다. 유럽에는 사회책임 관련 교과과정도 있고, 이를 해외에 수출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사회책임 교육이 미비하다. 몇 대학에서 CSR 관련 강의 또는 강연들이 열리기는 하지만 경영학 과정에서 이를 제대로 가르치는 학교들이 많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CSR 교과서를 쓰고 있다.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CSR 관련 책들은 CSR의 철학적·역사적 배경을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들을 다 망라해서 논쟁적인 부분들도 다루고 사회에 여러 질문을 던지는 책을 쓰려고 한다.
- 사회책임 문제를 대하는 본인만의 철학이 있나.
지금까지 기업이나 투자자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야기만 했는데, 사실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남들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회책임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런데 요즘에는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모습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사람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썩어 들어갈 것이고, 우리 후대들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정직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정권이 바뀌어 사회책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아졌다 해도 그동안 우리가 해오던 일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사회책임투자가 확산될 수 있도록 이를 공론화하고, 법과 제도, 정책들이 마련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는 사회책임투자를 통한 자본의 선순환이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진/KS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