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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지방정부, 사회적 가치 실현의 주체가 돼야”
(인터뷰)강충호 사회책임협동조합 이사장
입력 : 2018-05-28 오전 8:00:10
주요 정당들이 일제히 6·13 지방선거 공약집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선거전 채비를 마쳤다. 공약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경제’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은 지방선거 공약 1순위에 청년과 민생, 경제를 제시했고,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지역경제를 앞세웠다. 먹고사는 문제가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화두가 된 가운데, 이를 ‘사회적 가치’라는 기조로 확장해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남북문제 등 다른 현안에 묻혀 지방선거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는 가운데 강충호 한국사회책임협동조합 이사장을 만나 지방정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25일 서울 사당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 아닌가. 프레임이나 거대 담론보다는 지역 주민들의 실생활과 관련된 공약과 그것을 실질적으로 이루려는 노력, 지난 지방정부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다. 그러나 적폐청산과 북한과의 외교안보 문제 등 대형 이슈들이 산적해 있어서인지 지방선거에서 정책이나 공약이 묻히고 있는 듯하다.
 
인구의 절반, 국세 수입의 4분의 3이 수도권에 집중된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하면 지방선거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 정부도 지방분권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하지 않았나. 뿌리가 약한 지역의 자생력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대자본 유치나 중앙정부의 세수 조달보다도 지역에서부터 시작하는 상생과 참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성장의 과실을 소수가 무한히 축적하는 가치보다 ‘사회에 의해 부여되고 공유되는 가치’, 즉 사회적 가치가 지방정부에서도 중요해진 셈이다. 다만 이번 지방선거 무대에서는 공약 면에서 이러한 접근이 잘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중앙정부에선 사회적 가치가 반영된 정책이 활발하게 나오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법안 중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2014년 6월에 발의한 ‘사회적 가치 기본법’이 있다. 2012년 영국에서 제정된 ‘사회적 가치법’을 모델로 구상된 법안인데, 영국의 법은 정부의 구매, 조달에 있어서 사회적 경제를 통해 생산된 물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다른 말로 ‘사회책임조달’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사회적 경제에 국한되어 있는 법인데, 2014년 발의된 사회적 가치 기본법안은 그에 비해 상당히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인권, 노동권, 안전, 생태, 사회적 약자 배려, 양질의 일자리, 대·중·소 기업 상생협력 등 ISO 26000에서 얘기하고 있는 사회책임의 여러 이슈들을 상당 부분 포함한다. 이와 더불어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과 대통령 직속 ‘사회적경제위원회’ 설립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처를 막론하고 사회적 가치가 현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임을 체감하고 있다. 지난 3월 19일 열린 제1회 정부혁신전략회의에서 정부는 사회적 가치를 국정운영의 핵심기조로 제시했다. ‘공정성’, ‘참여와 협력’과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국정 전반의 중심에 두겠다는 의지로, 이전보다 사회적 가치의 중요도를 한층 높인 셈이다. 이미 구체적인 정책들도 많이 나왔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사회적 가치 배점 확대 ▲금융권 노동이사제 도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추진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사회적 경제 활성화 등 부처에 상관없이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방정부에서도 관련 조례 마련 등 이전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이 보이는데.
작년부터 서울특별시, 경기도, 제주특별자치도 등 많은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에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조례 제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도의회 차원에서는 경기도가 괄목할 만하다. 경기도의 CSR조례는 사회적 책임을 준수하는 기업을 공공조달에서 먼저 고려할 것을 명시했다. 공공조달 물품·공사·용역 구매 및 계약 등에 있어 경기도의 종합지표를 개발해 CSR 기업들을 우대하도록 했다는 측면에서 실질적이다.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 시정에 반영시키는 데에서는 아직 지켜볼 부분이 많다. 이 점에서는 서울시가 앞서 있다. 사회적경제지원센터를 조직화해 실질적인 정책들을 많이 추진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에서도 관련 조례 제정에 적극적이다. 서울시 내 대부분의 자치구에 사회적 경제 지원조례가 마련되어 있고, 전주시 등 시 단위에서도 고무적인 지역들이 보인다.
 
-현황을 평가한다면.
최근 상황이 고무적이기는 하지만, 왜 최근 지방정부에서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을까 생각해보아야 한다. 중앙정부의 영향도 있겠으나,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지방정부의 장기적인 지역경제발전·주민복리증진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분권화 의제가 지속적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지역의 지속가능한 역량 확보를 위해 자생적인 발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일시적 트렌드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회적 경제 조례가 마련된 지역에서 조례의 핵심적 이해당사자인 공공기관, 기업조차 아직도 조례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러한 움직임이 사회적 경제 차원에 국한됐다는 점에서 아직까지는 전술적인 접근에 그치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사회적 경제를 통해 마을기업·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주체들을 활성화하고, 기존의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바람직하다. 상생·연대·공동체 등 사회적 경제가 품고 있는 가치들을 고려하면 이전에 비해 진일보한 상황이다.
 
그러나 사회적 경제는 어디까지나 사회적 가치의 큰 범주 중 일부로 보아야 한다. 중앙정부에서 국정운영의 철학으로 이를 다루고 있는 반면 지방에서는 아직까지 지역경제 발전의 전략으로 사회적 경제를 채택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최근 조례로 마련한 사회적 경제 지원안을 실질적인 정책으로 구현하고, 이를 넘어 지역발전의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하는 시도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약에서 이러한 접근이 잘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지방정부가 사회적 가치 실현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방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분권화로 앞으로 지방정부에 더 많은 역할이 부여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공동체를 복원해 지역사회를 활성화하고, 이익이 지역에 순환되는 지역경제를 구축하는 지방분권의 목표들은 결국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의미한다. 시민자치의 지속가능한 선순환을 도모해야 할 지역에서 협동·상생의 사회적 가치를 마주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지방정부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라고도 생각한다. 구청·동사무소는 주민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실생활에 필요한 정책을 포착하기 유리한 여건을 가지고 있다. 중앙정부가 국정운영 전반에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고 이를 정책화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에 해당한다. 실제 시민들의 삶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주역은 단연 그들과 가까이에 있는 지방정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주요 정당들의 공약 1순위가 경제다. 거칠게 말한다면, 사회적 가치가 ‘밥 먹여’ 줄 수 있을까.
경제의 주체를 시장에서 기업만으로 생각한다면 사회적 가치는 지역경제 발전과 대척점의 구도에 놓이게 된다.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선 대자본의 유치가 최우선 과제인 것 같지만, 정작 대기업 공장이 지역에서의 고용 문제나 세수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최악의 결과를 낳은 사례도 있지 않나. 거제·통영의 조선업 몰락, 군산 지엠(GM)공장 폐쇄로 지역경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순환·자립형의 사회적 경제는 협동과 공생의 경제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다. 지역에서 벌어들인 돈이 수도권으로 흘러가는 역류 현상을 방지할 수 있으며,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지역경제에 기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업들이 잘할 수 있는 영역들이 있지 않나. 아동 돌봄 서비스, 실버 케어 등 늘어나는 사회복지 수요를 중앙정부에서 모두 충족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지역에 기반을 둔 사회적 경제가 복지 기능을 분담할 수 있다. 중앙정부보다 시민 친화적이고, 불필요한 행정절차가 줄어드는 등 더 유리한 지점도 많다.
 
물론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에 아직까지 우리나라 사회적 경제 규모가 협소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전체 고용규모를 보면 1.4% 수준으로, 유럽연합(EU)의 사회적 경제 고용비중 6.5%에 한참 떨어져 있는 형편이다. 사회적 경제가 국내총생산(GDP)의 10%를 담당하는 유럽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지만 앞으로의 발전 여지는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현재 지방의회 조례의 내용들이 사회적 기업들의 지원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이 지방선거 이후 제도화하여 사회적 경제의 자립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관련정책이 필요하다.
 
-지방정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먼저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사회적가치기본법’과 더불어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이 하루빨리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사회적 경제기본법의 내용을 보면 기재부 장관이 중앙정부 차원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촉진하기 위한 기본계획’을 3년마다 추진하도록 되어 있는데, 지방정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중요한 것은 다음 대목이다. 지역 차원의 발전 계획도 3년마다 수립하도록 명시한 부분이다.
 
중앙정부의 법률에 비해 지방정부의 조례는 절차가 간단해 신속하게 제정되고 그 중 다수가 폐지된다. 지방의회에서 관련조례 마련이 활발하지만 실질적 정책으로 이어진 사례가 드문 것도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발전에 관여하는 추진체계가 복잡해 다양한 사업에 대한 지방정부의 종합적인 조정기능은 발휘되지 못하기 일쑤다. 때문에 계획 단계부터 지역발전의 패러다임 자체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작업이 중요하다. 사회적 경제기본법에 대한 여야 입장차이가 크지 않아 이른 시일 내에 제정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광역·기초 단위에서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정책들을 총괄하는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 서울시의 사회적경제지원센터나 대전시의 CSR지원센터도 좋은 사례지만, 지원을 넘어 지방정부 내에 공식 부서 혹은 담당자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에 있는 외곽·지원 조직을 통합부서로 강화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마지막으로 예산 마련이 절실하다. 지역기금, 정책금융을 조성해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지난해 전국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성북구가 사회적 경제조직 대상의 사회투자기금 융자사업을 실시한 사례가 있다. 2015년 9월부터 사회투자기금을 조성해 유사기금 중 가장 저금리로 융자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물론 지방정부 예산에 사회적 경제 지원 예산이 바로 편성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지역의회와 주민 등에 공감대를 얻어내면 실현 가능한 문제다.
 
-유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역은 시민자치의 현장이자 삶의 공간이다. 사람과 공동체가 중심이 된 사회적 가치들이 실현될 수 있도록 피드백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시민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감시가 가능하고, 또 중요하다. 선거가 심판의 기능도 있지 않나. 정당만 심판대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난 지방선거에서 나왔던 공약들을 평가하는 선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형 이슈로 선거 자체의 주목도가 떨어지는 가운데 31일부터는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지역 현안을 파악하고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는 후보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선거라는 선거의 본질을 되새기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강충호 한국사회책임협동조합 이사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방정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이 화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KSRN
정윤하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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