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화학물질 공포증이 불시에 닥치는 지뢰처럼 유통기업의 생존을 위협한다.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는 문제가 지상과제로 떠올랐다.
내달 8일은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지원과 대책마련을 약속한 지 1년이 된다. 관련해 사회적 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대책 논의와 함께 공식출범을 준비 중이다. 관계부처 등 지원이 미흡해 출범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으나 조만간 가동할 것이란 소식도 들려온다. 특조위 조사가 본격화되면 사건에 연루된 기업 관계자들이 줄줄이 소환될 것으로 예상돼 업계에선 긴장된 분위기도 감지된다.
전 옥시 익산공장 근로자들이 국회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의 원성은 여전하다. 한 피해자 유가족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시간 속으로 점점 묻혀 가지만 소중한 가족을 잃고 병과 싸우는 피해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기업에 대한 분노와 정부에 대한 원망이 커져만 간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환경부에 문의했더니 피해자 배상은 정부와 상관없이 기업과 개인간 소송으로 법원 판결이 내려져야 한다고 딱 잘라 말하더라"며 "정부는 어떤 기업과 개인의 중재역할을 할 의무가 없다는데, 국민의 의무만 강조하고 국가가 국민을 위해 생명과 재산, 안위를 책임져야 할 의무는 무시하는 나라”라고 비판했다.
국회 앞에는 ‘옥시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전 옥시 익산공장 직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공장을 고용승계 없이 LG생활건강 자회사에 매각하고 꼼수와 편법으로 같은 공장 생산라인에서 라벨만 바꿔 OEM(주문자상표제작)생산하는 것은 위장 자산매각”이라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LG생활건강 측은 OEM생산을 부정하면서 “익산공장은 가동정지 상태로 무엇을 생산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가습기 살균제 공포는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 등 다른 제품으로도 전이되고 있다. 경실련은 5일 CJ제일제당, 사조해표, 삼양사, 인그리디언코리아 등 GMO 농산물 수입업체 명단을 공개하며 이들을 간접적으로 압박했다. 경실련을 비롯한 소비자단체와 시민단체 등은 GMO 사용 식품을 반대하며 GMO 완전표시제를 촉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도 21만명을 넘었다.
화학물질 공포증이 커지면서 ‘케미포비아’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공식적인 인증을 거친 제품도 안전하지 않다는 소비자 인식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식품, 생활용품 등 유통제품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안전에 대한 소비자 염증이 깊어 관련 이슈가 터질 때 존폐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기업 사이에서도 인지된다.
시장 전문가는 “관계 당국들의 안전 검증 시스템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팽배해 정부가 철저한 진상규명과 대책마련을 통한 신뢰 회복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기업은 영업환경의 불확실 위험요소로만 여기지 말고 소비자 신뢰를 얻는 길이 지속가능 성장이 가능한 생존과제이자 기회임을 보다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