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메일
페이스북 트윗터
(차기태의 경제편편)순환출자 사슬 끊으니 ‘만나’가 생겼다
입력 : 2018-10-02 오전 6:00:00
지난 4월 삼성SDI는 삼성물산 주식 404만2758주를 모두 매각했다. 9월21일에는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보유중이던 삼성물산 지분 전량을 처분했다. 삼성전기가 보유하고 있던 500만주와 삼성화재가 들고 있던 261만7297주가 모두 이들의 품을 떠난 것이다. 이로써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사슬이 완전히 끊어졌다. 
 삼성은 국내 최고의 재벌로서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큰 기여를 해왔다고 자부해 왔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순환출자로 말미암아 그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다. 시민단체나 언론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비판의 표적이 돼왔다. 이제 그 사슬을 마침내 완전히 끊어냈으니, 삼성은 물론 대한민국 경제사에 길이 기억될 기념비적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순환출자 해소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삼성SDI는 삼성물산 주식을 처분한 결과 5600억원 가량을 손에 쥐게 됐다. 삼성전기와 삼성화재도 매각을 통해 6425억원과 3285억원의 현금을 새로 마련했다. 지금까지 그룹 지배구조 유지를 위해 무수익자산으로 묶여 있던 자금이 사슬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삼성SDI와 삼성전기는 매각대금을 재무구조 개선과 주력사업 확대 등을 위한 투자재원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삼성SDI는 2차전지 등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삼성전기의 경우 요즘 스마트폰의 핵심부품 가운데 하나인 MLCC 분야에서 담대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럴 때 새로이 마련한 자금은 천군만마와도 같은 것이다. 
 
현대미포조선도 보유중이던 현대중공업 지분 3.9%(272만558주)를 지난 8월 현대중공업지주에 매각했다. 이로써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사슬이 끊겼다. 현대미포조선은 이번 매각을 통해 3183억원을 받았다. 최근 들어 현대미포조선의 경영상황이 다소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적인 조선 경기도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이럴 때 마련된 3000여억원은 소중하기 이를데 없다.  
 
추측컨대 이들 삼성과 현대중공업그룹의 계열사들은 그런 자금을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강고한 재벌체제 아래서 순환출자의 사슬을 끊겠다는 용기를 낼 수도 없었다. 아마도 순환출자 해소와 지배구조 개선을 재촉하라는 유형무형의 압박을 받으면서 자의반타의반으로 결정했을 듯하다. 경위가 어떻든 순환출자라는 사슬을 끊어낸 결과 망외의 소득이 생겨난 셈이다. 
 
구약성서에서 유대인들에게 하늘로부터 떨어진 만나와도 비슷하다. 유대인의 만나는 스스로 노력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거저 주어진 것이다. 반면 이들 재벌 계열사는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서 얻어낸 것이니 더욱 값지다고 하겠다. 
 
삼성그룹의 경우 지배구조 개선이 완결된 것은 아니다. 지주회사 전환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기에 가볍게 결정할 일은 아니다. 삼성은 더 숙고할 것이다. 하지만 우선 순환출자라도 모두 해소했으니 큰 진전이다.  
 
현대차그룹도 머지 않아 순환출자 사슬을 단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지난 5월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기아차와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하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수석부회장 부자가 매입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계열사 사이의 순환출자 사슬을 모두 끊고 묶여 있던 자금을 방면한다는 계획이었다. 
 
특히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지분 16.9%, 1642만7000주까지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인수하겠다는 것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이를 위해 두 오너는 4조원을 훨씬 웃도는 규모의 사재를 투입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의 계획이 그대로 이행됐다면 4조여원의 자금이 기아차에게 유입돼 지금쯤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사실 기아차는 지난해 이후 미국과 중국 시장의 판매부진 등으로 어려운 여건에 놓여 있다. 이럴 때 4조여원의 자금이 유입된다면 백만원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의 개편안은 다른 흠결사항 때문에 국내외 투자기관들의 잇단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개편안은 일단 무산됐다. 현대차그룹은 요즘 새로운 개편안을 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편안의 내용은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그렇지만 새로운 개편안에도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지분 매각을 통한 순환출자 해소는 들어가게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선과 발전을 위한 불가결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재벌 계열사들이 순환출자 사슬을 끊는 것은 결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한국 경제의 투명성과 대외신인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이다. 결국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김진양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