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홍 기자] 산업은행이 올해 말 한국GM에 지급해야할 4050억원을 두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구조조정 비판을 생각하면 자금을 투입해서는 안 되지만, 공장철수와 국제소송을 감안하면 지급을 해야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24일 학계와 전문가 등에 따르면 산업은행이 한국GM에 투자 지원을 하지 않을 경우 GM으로부터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을 당할 수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정부가 여러가지 기대이익을 갖게끔 행위를 해놓고, 갑자기 정책을 바꿔 투자 기업에 손실이 발생하면 ISD에 피소 당할 수 있다"며 "현재 산업은행은 가처분 신청까지 기각돼 법적 정당성이 없는 상태에서 ISD 제소까지 당하면 상당히 불리해진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산업은행이 자금지원을 철회하면 GM은 국내 공장철수는 물론, ISD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ISD의 제소 요건 중 독소조항으로는 '간접수용' 조항이 꼽힌다. 이 조항에 따르면 외국 투자기업은 정부의 정책적 판단으로 발생하는 간접적 피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론스타, 이란 다야니 가문이 우리 정부에 제기한 소송도 모두 간접수용 조항에 해당된다. 산업은행이 계약을 위반하고 추가 자금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GM은 간접수용 조항을 근거로 얼마든지 제소할 수 있는 것이다.
김연학 서강대 교수는 "GM은 산업은행의 자금지원이 안될 시 바로 한국에서 철수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4조원의 투자손실은 ISD소송으로 보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산업은행이 한국GM에 4050억원을 지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국GM 법인분리를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산업은행이 자금을 지원한다면 혈세를 퍼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전문가들도 한국GM 법인분리를 구조조정 일환으로 확정하는 분위기다.
김연학 교수는 "이미 회계상 한국GM은 생산법인과 연구법인이 분할돼 본사도 따로 관리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실질적으로 조직을 분할하는 것은 경쟁력이 취약한 생산법인을 언제든지 구조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GM본사 입장에서 생산법인은 생산력이 낮고 고임금인 곳이지만, 연구개발법인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곳"이라고 덧붙였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도 "산업은행은 한국GM 법인분리가 진행돼도 10년 동안의 투자 계약은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GM은 10년 뒤 공장철수 엄포를 놓으며 정부의 지원금을 또 요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GM은 산업은행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한국GM 자산 20% 미만을 단계적으로 매각할 수 있다"며 "산업은행은 이에 대한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익명을 요구한 산업계 관계자는 "애초에 정부와 산업은행이 한국GM에 8100억원을 지원한 이유는 근로자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인데, 오히려 그러한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현재 산업은행은 한국GM 주주총회 효력정지에 대한 본안소송을 준비 중이다. 앞서 산업은행은 법원에 주주총회 개최금지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는 "현재 본안소송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여 여기에 집중하고 있다"며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산업은행은 한국GM에 출자하기로 한 8100억원 중 절반을 지난 6월 집행했으며, 나머지 절반은 오는 12월 31일까지 집행해야 한다. 이동걸 회장도 최근 국정감사에서 "정책적 판단에 따라 (추가자금 집행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최홍 기자 g243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