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 공소시효를 없앤 '태완이법', '신해철법', '김광석법'.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사건의 재발 대책 차원 법들의 별칭이다. 올해 유난히 네이밍법들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윤창호법'과 '김용균법'이 그것이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불의의 사고로 안타까운 청춘이 유명을 달리한 데 대해 사회 전체가 공동의 책임감과 죄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원인으로 꼽히는 음주운전에 대한 안이한 사고 방식과 안전 불감증, 모순적인 고용구조, 비효율적인 행정은 기본적인 법과 제도를 지키기만 해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쯤되면 국가의 기본적 역할에 대해 의문을 가질만 하다. 모름지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가장 큰 책무다.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받침이 되는 재정 편성과 집행은 제대로 되고 있는가. 정부가 마련하는 예산안은 각 정부부처의 안을 받아 사업의 중복성, 효율성, 타당성 등을 근거로 책정한다. 경제성이 가장 우선시 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얼마를 투입했는데 얼마의 효과를 볼 수 있느냐는 것이 중요한 기준이다. 효과적 재정 정책을 기하기 위해서 반드시 요소가 경제성이기는하다. 하지만 중장기 사회간접자본(SOC)나 기초 연구개발(R&D)과 같은 예산들은 항상 마지막에 뒷전으로 밀린다.
기준을 바꿔야 한다. 예산 편성을 지나치게 경제성에 포커스를 맞추는 시대는 지났다. 쉴틈없이 달려온 성장의 고속도로 위에서 잠시 뒤를 돌아봐야 할 때다. 수도, 전기, 가스, 도로, 교량, 철도, 항만, 항공, 댐, 건물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 점검과 감독에 더 비중을 둬야 한다는 말이다.
과정과 방법도 틀렸다. 정부안을 받아 국회가 정기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열어 심사하는데 감액 먼저 하고 사안에 따라 추가하는 식이다. 2019년도 469조원 예산도 이 과정을 거쳤다. 특히 여야는 처리 시한을 넘겨 법적 근거가 없고 회의록 조차 없는 '소소위'에서 결정했다. 주고받기식 교통정리와 지역구 쪽지 예산 끼워넣기를 하기 위해서는 아마 소소위가 반드시 필요했던 모양이다.
밀실에서의 예산 심의는 없어져야 한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회의록만큼은 남겨야 한다. 각 정당의 이해관계와 정치논리에 의해 수조원의 세금이 허투루 쓰여 정작 필요한 곳에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집행도 유연한 행정이 요구된다. 국토교통부와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누적 교통사고 사망자가 전년동기대비 10.1%로 줄어든 3443명이다. 지역별로 교통안전시설 개선과 강력한 행정처분, 시민 대상 교통안전 교육 강화 정도에 따라 사고와 사망자가 수에 크게 차이가 났다. 교통안전예산을 적절히 책정하고 집행한 지자체에서 사고가 많이 줄어든 것이다. 재정의 적절한 집행으로 효과를 본 대표적 사례다.
온수관이 터지고, 음주운전은 도무지 줄어들지 않고, 죽음의 외주화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 강릉 펜션 사고는 국민 모두를 일산화탄소 중독의 걱정에 놓이게 했다. 오죽하면 일산화탄소 경보기가 시중에서 동이 날 지경일까. 길을 가다 죽고, 일을 하다 죽고, 이제는 숨을 쉬다가 죽을 판이다. 경제성만을 따고 밀실 나눠먹기에 집중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