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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노동의 희망'을 말하려면
입력 : 2019-05-16 오전 6:00:00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2년이 지났다. 집권 초 80%을 넘나들던 국정수행 지지도는 어느새 반토막 났다. 대통령의 소탈한 풍모, 과감한 적폐 청산 의지 그리고 비정규직의 아픔을 보듬어 안는 정책 등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희망을 꿈꾸게 했다.  
 
촛불혁명에서 표출된 국민들의 분노와 절규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요구로 터져 나왔다. 정치 민주주의의 심화, 불평등 해소와 삶의 질 개선, 부정부패 척결,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그 뼈대였다. 혁명보다 어려운 것이 개혁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과 안타까움이 컸던 2년이었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성과가 뚜렷하지 않으면서 국민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한국갤럽의 집권 2년차 국정수행 지지도 조사 결과를 보면 문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률은 47%다. 과거 정부들과 비교하면 낮지 않지만 고공 행진하며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지지도의 하락 추세가 분명하다.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에 큰 걸음을 내딛는 성과와 달리 경제와 노동, 일자리 등 민생분야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냉혹하다. 노동존중사회와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고용노동 분야의 긍정 평가는 25%를 넘지 못하고 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노동계와 소통하고 국민들의 요구였던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수행했는데 부정 평가가 큰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정책에 대한 낮은 평가는 현 정부의 정책이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 비판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계는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이 초심을 잃고 기업 살리기의 하위 정책으로 포섭되었다고 비판한다. 경영계는 급진적 노동정책으로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노동자의 고용과 소득이 거꾸로 줄었다고 지적한다. 노사 양측의 비판은 일면 타당하지만 ‘제 논에 물대기’식 해석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고용노동 상황은 한두가지 정책의 실행으로 정상화될 수 없는 구조적 위기다. 노동시장 내 불평등 심화, 저임금노동자의 확대, 비정규노동의 남용은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을 가로막고 사회 통합을 깨뜨리는 핵심적 요소다. 현재의 노동시장은 구조적 위기에 빠져 있으며 전환기적 국면이다. 이에 노사정 모두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 마련을 위한 허심탄회한 논의에 나서야 한다. 
 
한국 경제는 구조 전환기에 놓여 있다. 고용창출의 원천이었던 주력 제조업은 조선산업을 시작으로 장기 불황 터널로 들어갔다. 자동차산업과 전자산업은 아직 버티고 있지만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국내 제조업 생산액은 2012년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해외법인 매출액도 2014년부터 내리막이다. 제조업 국내 생산액 추이를 보면 2012년 1511조원으로 정점을 찍고 내림세이다. 부산·울산·경남의 고용위기는 전통 제조업이 놓인 위기의 징표이다. 과거 ‘조선의 메카’였던 거제시는 작년 하반기 실업률이 7.1%로 치솟아 전국 최고의 고실업 도시가 됐다. 한때 10만 명에 달하던 거제의 조선 노동자 수는 6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제조업의 위기는 고용 악화로 연결되고 지역사회의 파탄으로 귀결되는 악순환을 보여준다. 설상가상으로 미·중 무역 분쟁은 다시 불을 지피고 있고,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 기조와 신흥국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제조업의 부활을 꾀해야 하고, 작업장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가 비전을 제시하고 노사가 힘을 모아야 한다. 과거와 같은 노동배제의 정책으로는 노동자의 숙련과 헌신을 담보하지 못한다. 세계 최고의 로봇 밀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로봇 도입을 통한 경비 절감은 기업엔 기회의 창출이지만 노동자에겐 고용 단절로 이어진다. 사회적으로 규제되지 않는 자동화는 고용 파괴로 연결돼 결국 사회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제조업 르네상스를 촉진하기 위한 대담한 발상과 혁신을 위해 노사가 나서야 한다. 
 
사회적 대화의 촉진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양극화 해소와 포용적 성장의 실현을 이루고 노동존중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대화기구로 출범했지만 탄력근로제 합의이후 본회의가 열리지 않은 파행을 겪고 있다. 노사정 간 신뢰가 약하고 합의 문화가 취약한 현실을 반영한다. 사회적 대화의 열매는 갈등과 대립 속에서 꽃피는 것으로 단기성과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경사노위의 파행은 더 이상 지속돼서는 안 된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실현 가능한 몇 가지 정책이라도 결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불확실성을 노사정합의를 통해 대처해 나가면서 노동시장 변화, 직업능력 교육, 사업장내 노동조건 등의 전체 분야를 포괄하는 노동정책으로 구체화한 노동4.0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실천하고 있다. 
 
시나브로 다가오는 위기 상황은 남 탓하며 공방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정부는 집권 후반기 2기 노동정책의 비전과 전략을 재구성해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이 약속한 노동 공약을 흔들리지 말고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노동존중사회의 청사진은 아직 밑그림도 그리지 못한 채 남아있는 국정과제이기 때문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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