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보규 기자] 자본시장 환경 변화로 고빈도매매(high frequency trading)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에 대한 제도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고빈도매매 증가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식시장에서 고빈도매매는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고빈도매매의 장벽인 증권 거래세가 앞으로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고 인공지능(AI) 발전으로 관련 기술 발전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는 게 주요 근거다.
고빈도매매는 사전에 정의된 투자방식에 따라 자동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알고리즘 매매의 하위 개념으로 1초에 수백~수천번의 주문을 내는 것을 말한다.
고빈도매매가 늘어날 구조적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관리·감독하고 규제할 장치가 사실상 없다는 점에서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봉주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알고리즘 매매 자체를 전반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시장 발전을 저해하겠지만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며 "금융 감독기관의 상세한 모니터링과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빈도매매를 활용한 불공정거래와 같은 부정적 사례를 차단하는 동시에 시장 유동성 확대와 가격 불균형 해소 등의 긍정적인 기능은 극대화될 수 있도록 하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증시는 고빈도매매에 관한 규제가 시행되고 있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법을 통해 고빈도매매를 까다롭게 관리하고 있다. 초당 2~4회를 고빈도매매로 정의하고, 고빈도매매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스템과 알고리즘을 사용할지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위험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관련 책임자도 지정해야 한다. 주문·취소 내역은 5년간 보관해야 하고 주문이 잘못 이뤄진 경우에는 취소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야 된다. 일정한 유동성을 제공할 의무도 있다.
유럽에서 고빈도법을 가장 먼저 제정한 독일은 연방금융감독원의 허가와 자본금 요건 등을 갖춰야만 고빈도매매가 가능하다.
미국은 우리나라 금융투자협회에 해당하는 금융산업규제기구(FINRA)의 자율규제를 통해 관리한다. FINRA 등록과 위험 통제시스템 구축 의무 등이 있지만 유럽보다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편이다. 비정상적인 가격으로 주문을 걸어두는 행위를 금지하는 등 세부적인 문제점을 통제하는 방식이 미국 규제의 특징이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 실장은 "거래 비용에 민감한 외국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고빈도매매가 확산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다양한 규제가 시행 중이고 논의되고 있는 미국·유럽 사례를 참고해 대응에 나서야 할 때"라며 "자본시장법을 건드리지 않고 시행규칙이나 거래소 규정을 다듬는 것으로도 여러 방안이 나올 수 있는 만큼 규제 정비가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메릴린치 사례처럼 고빈도매매로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하더라도 관련 규정이 없으면 제재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도 규제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거래소는 이날 시장감시위원회를 열고 미국 시델타증권의 고빈도매매 창구였던 메릴린치에 대한 제재를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연기했다. 시델타증권은 메릴린치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수백개 종목을 고빈도매매 해 상당한 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뚜렷하게 증명하기 어려운 불공정거래 측면에서 접근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며 "고빈도매매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었다면 제재 여부와 수위에 대한 결론은 더 수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