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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노동권의 사각지대
입력 : 2019-12-16 오전 6:00:00
52시간 상한제 도입 유예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다. 고용노동부는 1212, 내년 1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1년 계도기간 부여를 골자로 한 대책을 발표했다. 52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있는 인가연장근로(특별연장근로) 가능 범위에 경영상 이유까지 추가했다. 52시간 상한제 보완 대책이었던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입법이 불발된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민변과 노동계는 법률에 단 한 글자도 존재하지 않는 계도기간 유예로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 집행을 해태하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이고 국회 입법권을 침해한 직권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세계 최고의 장시간노동을 완화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최소 조치로 입법화된 법안이 정부 판단에 따라 시행 유보된 것은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노동존중사회가 아닌 기업존중 정책임을 부정할 수 없다. 노동시간 단축은 더 이상 논의가 필요하지 않는 사회적 합의이다. 디지털사회의 전환에 맞춰 노동시간도 단축하고 일하는 방식도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2018년 독일 금속노조인 IG메탈과 남서부금속고용주연맹은 주당 노동시간을 기존 35시간에서 28시간으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현재와 같은 장기간노동을 유지해서는 생산성 향상도, 직무만족도 향상도 임금체계 개편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주52시간 상한제를 둘러싼 논의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이 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 법 시행을 둘러싼 논란에도 주 52시간 상한제는 202171일부터는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서 시행된다. 하지만 주52시간 상한제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근로기준법은 모든 노동자가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권리로 알려져 있지만 5인 미만은 열악한 기업 경영환경을 이유로 일부 규정만 적용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부당해고 제한 및 구제신청, 법정근로시간 제한, 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수당, 연차휴가 등 근기법 상 일부 조항들이 그림의 떡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4인 이하 사업장 실태조사(2016)에 따르면 20155명 미만 사업장 종사자는 358만 여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19%에 달했다. 특히 작은 사업장 종사자 중엔 청년세대(15~39)의 비율이 36.5%로 높았다.
 
상식에 반하는 이런 차별이 가능한 것은 1999년 헌법재판소의 결정 때문이다. 당시 헌재는 영세 사업장의 열악한 현실과 국가의 근로감독 능력의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며 “4인 이하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적용을 배제한 것은 평등권 등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또한 2019411일 헌법재판소는 상시 4인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근로기준법의 일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위임한 근로기준법 제11조 제2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선고하였다. 하지만 헌재의 결정을 수용할 노동자들이 얼마나 될까. 다른 나라에 종업원 규모에 따라 노동시간을 차등 적용하는 사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는 “5인 미만 사업장에만 근로기준법 주요 규정을 배제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면서,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여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라고 권고했다. 2012년 국회입법조사처에서도 종사 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근로조건 적용을 배제한 선진국의 입법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을 들어 확대 적용을 권고했다. 2018년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에서도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관련법 적용을 확대하고 이를 위한 제도개선을 위한 테스크포스를 구성하도록 주문한 바 있다.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은 이제 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다.
 
52시간 상한제 시행 연기를 둘러싸고 노정간에 거친 공방이 있었던 1212일 청년유니온은 ‘5명 미만 사업장은 1246일까지 일해야 한다.’는 제목의 사례 발표회를 열어 근로기준법 적용을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할 것을 촉구했다. 부당해고에 대해서도 아무런 구제를 받을 수 없어서 하루아침에 구두해고나 카톡 해고가 빈발한다. 7월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적용되지 않아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일터 문화에 노출돼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5명 이상 사업장은 직전 해 근무일의 80% 이상 근무하면 다음 해에 15일의 연차휴가가 주어지지만 5명 미만은 휴식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이 결과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연차 15일을 제공받지 못해 1231일이 아니라 1246일까지 일하는 꼴이라고 비판한다.
 
노동개혁 거창할 것 없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고 하고, 우리 사회의 상식을 회복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아직도 경제타령하며 시기상조를 말할까. 자유한국당은 5인 미만 소상공인·자영업 사업장은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해야한다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내년 총선 ‘5인 이하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이것 하나만이라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국회의원을 보았으면 좋겠다.  
김하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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