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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용산참사가 아닌 유엔시티로 새로운 100년을
입력 : 2019-12-17 오전 6:00:00
임채원 경희대 교수
2019년이 저물어 간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이 마감되고, 2020년에 새로운 100년이 시작된다. 앞으로 100년은 마냥 들뜨고 희망찬 100년은 아니다. 우리가 어디로부터 왔고,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성찰 속에서 새로운 100년은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올 한 해 동안 가장 애착을 갖고 역점적으로 했던 일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 '평화공원과 인공조형물 조성 방안'에 대한 연구책임을 맡아 지난 대한민국 100년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100년을 전망하는 일이었다. 지난 100년이 민주공화정의 역사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2016년 '이게 나라냐?'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국민주권 선언은 이미 100년 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확인된 내용들이었다.
 
대한민국의 지난 100년 역사는 민주공화정을 선언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인권과 민주주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주권재민의 원리를 확인한 임시정부의 헌법 1조는 식민시기 5차례의 개헌과 광복 이후 9차례의 헌법 개정에도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미래를 향해 성숙해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독재자의 출현에 대해 헌법 제1조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국민적 저항이기도 했다.
 
이승만이 민주공화정을 훼손하자 4·19가 일어났고, 군사독재가 민주주의를 파괴하자 80년 광주와 87년 6월 항쟁으로 헌법 가치대로 민주공화정을 복원하는 시민들의 힘이 발휘됐다. 2016년 촛불혁명은 10월29일부터 이듬해 3월11일 그리고 이후 3차례에 걸쳐 1700만 촛불시민들이 부패하고 불법적인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100년 전 건국 아버지들이 염원했던 국민주권을 광장에서 직접 행동으로 실현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100년 전 헌법정신에 실었던 또 다른 핵심가치는 세계평화였다. 제1차 대전의 참화 속에서 인류의 성찰과 새로운 정신으로 세계평화는 제국주의의 논리였던 사회진화론과 약육강식을 대신해 새로운 시대정신이 됐다. 파리강화회의에서 평화는 전승국 사이 강자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으로 자리잡아 100년 이후 대한민국이 어느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할지 분명한 이정표를 세웠다. 10개조에 불과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에는 세계평화의 이상이 녹아들어 있었고, 1941년 김구와 김원봉의 건국강령에도 세계평화는 재확인됐다. 세계평화는 해방 이후 김구의 ‘문화국가’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 100년의 대한민국이 갖는 삶의 조건은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이 패권경쟁을 벌이는 문명의 변경에 있다. 패권을 추구하는 두 국가는 군사력과 권력정치를 통한 힘의 우위를 확보하는 일에 몰두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들과 다른 국가비전을 갖고 국가의 활력을 찾아야 한다. 100년 전의 헌법 정신대로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의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평화국가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의 방향이다.
 
대한민국 평화국가론이 구체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용산 세계평화도시다. 용산은 뼈아픈 식민과 분단, 그리고 전쟁을 상징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에서는 150여년 동안 동아시아 패권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 군대가 용산에 진주했고, 1894년 청일전쟁으로 일본군이 이를 대신하게 됐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제는 이곳을 수용하고 본격적으로 일본군 주둔지로 개발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군이 주둔을 시작해서 지난해 6월29일 평택으로 주한미군사령부가 공식적으로 이전하기까지 한반도 분단의 상징처럼 수도 서울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전쟁과 평화의 대비되는 개념으로 전쟁기념관 바로 옆에 있는 미8군 사령부 부지에 세계평화기념관을 조성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 78연대, 79연대가 자리했던 두 곳은 20세기적인 전쟁기념관과 21세기적인 세계평화기념관을 통해 역사의 아픔을 넘어 동아시아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용산 참사가 일어났던 인근지역인 철도기지창 부지에는 유엔시티를 유치할 수 있다. 더 이상 욕망을 쫓아가는 탐욕의 개발방식은 제2의 용산참사를 낳는 재앙의 씨앗이다. 다른 국가비전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의 탐욕추구가 아니라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조화를 이루는 포용국가의 국가비전과 지역발전 전략이 필요하다. 용산 유엔시티는 세계평화도시 서울의 새로운 100년 비전이 될 것이다.
 
임채원 경희대 교수(cwlim@khu.ac.kr)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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