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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민통선 북상과 개발이 현지 농업인들에게 미치는 영향
입력 : 2019-12-24 오전 6:00:00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한반도를 찾는 겨울철 진객 두루미들을 보기 위하여 철원을 찾았다. 철원평야와 한탄강변에서 만나는 두루미들은 말 그대로 '천년의 학'답게 고고하다. 공중에서 행글라이더처럼 하강하는 모습은 우아하다. 두루미들은 재두루미보다 더 예민해 가까이 접하기 어렵다. 대부분 3~4마리 가족 단위로 움직여 보기에도 다정하다. 주변에 삵이라도 출몰할라치면 소리가 범상치 아니하다.
 
철원의 농민들은 두루미가 지역개발에 방해가 된다고 푸대접하다가 몇 년 전부터 생각을 바꾸었다. "두루미 보전을 꺼내려면 철원 땅에 발도 들여놓지 말라"는 분노에 찬 지역정치인의 말을 들은 것이 2013년의 일인데 그사이 변한 것이다. 그동안 전망대 등을 기반으로 안보관광에 주력했지만, 이제 두루미와 철새들이 관광에 도움이 됨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군청 고위 인사들이 두루미보전단체 관계자들과 미국에 있는 국제두루미재단에 견학까지 다녀왔다.
 
환경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일부 기업이 두루미를 보전하기 위해 재정을 지원하지만 혹한에 두루미들에게 볏짚을 깔아주거나 먹이를 주는 일은 결국 현지 농업인들이 시행한다. 농업인들은 인류의 기술로 생태계를 돕는다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슬로건을 실천한다. 종래 이러한 활동들은 환경과 농업 양쪽에서 추진됐다.
 
원주지방환경청이 철원에서 두루미들을 위해 500헥타르(ha)의 볏짚존치 사업을 실시했다. 당초 평당 150원을 지급하다가 수요자들이 많아 최근 130원으로 낮췄다. 하지만 이 가격은 축산업자들이 구매하는 볏짚 가격보다 떨어진다. 제외된 이웃 경작자들의 불만이 많다. 한편, 철원군청은 지력증진의 일환으로 볏짚놓기 사업을 실시한다. 2019년 현재 1500ha에서 실시되었고, 2020년에는 500ha가 늘어난다. 개인들이 선택적으로 참가한다. 농가 단위로 상한제가 적용된다.
 
생물다양성법 개정법(2019.11.14.)에 따라 2020년 하반기부터 실시될 생태계서비스지불제는 종래 생물다양성관리계약을 이어받고 있지만 그보다 적용항목과 평가기준이 광범위하다. 실시기관들은 환경부에 예산을 신청하는 한편, 민간기구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등을 통해 2020년 후반부터 (농업) 생태계서비스지불제를 실시할 예정이다. 그 일환으로 현지 관계자들과 협력 네트워크가 구축돼야 한다. 아울러 새로운 지불제는 생물다양성관리계약 및 지력증진 사업과 정합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생태계서비스지불제 도입 시에 현행 농업직불제의 부작용을 감안해야 한다. 철원 경작지들의 70% 이상을 부재지주들이 소유하기 때문이다. 농업직불제 부작용으로서는 직불제로 소득이 늘어나자 지주들이 임차료를 올려 소득이 토지 소유자의 몫으로 이전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직불제는 내용이 다소 복잡하다. 친환경 직불제의 경우 위반이 적발되면 제명된다. 그래서 많은 농가들이 퇴출됐다. 그간 방제 시기도 문제됐다. 
 
생태계서비스지불제는 농업직불제와 다르다. 새로운 지불제는 종전 직불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현금 대신에 농자재를 지원하는 방안도 있다. 제초제를 치지 아니하는 논두렁, 밭두렁을 걷는 경관직불제를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국에는 경작지를 걷는 둘레길 지도가 있다. 나아가 환경보전을 위한 친환경 유기농을 장려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각 읍·면에 친환경작목반들이 있다. 
 
하지만 친환경에도 갈등의 선이 있다. 유기농 지원단지에 포함되지 않은 이웃 경작자들은 불만을 표시한다. 반면에 유기농들은 재래식 농지에서 유입되는 농약 등을 경계한다. 유기농을 신청하면 인증을 거쳐 시가의 78%를 지급한다. 차액은 농협에서 추가로 지급한다. 하지만 유기농은 재래농보다 노력이 더 든다.
 
생태계서비스지불제의 경우에도 유기농과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 경작자들이 서로 이웃을 잘 모른다. 본인을 보더라도 철원읍내 화지리에 살지만 농토는 전방에 있다. 예컨대 두루미보호협회 회원들이나 생물권보전지역 등을 기반으로 경작자들이 집단을 형성할 수 있는 곳 또는 서로 공통분모가 있는 곳을 정해 의논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민통선이 자꾸 북상한다는 사실이다. 
 
관계 당국이 민통선을 자꾸 북쪽으로 밀어올리는 시책을 추진하면서 농지가 자꾸 개발된다. 농지가 개발되면 농업인들은 경작지 부족으로 철원을 떠날 수밖에 없다. 지킴이들이 사라지는 셈이다. 일부 자본가들은 축사나 온실을 지어 두루미들의 비행과 서식을 방해한다. 일부 농업인들은 미처 숙성되지 않은 축분 액비를 뿌려 악취를 풍겨 철새들을 쫓아내기도 한다. 선거에 연연할 일이 아니다. 민통선 개발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또 누가 이 지역을 지키고 관리하는 주인공인가를 살펴 정책을 시정하기 바란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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