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작은 섬마을에 강물이 범람하면 사람보다 먼저 들어가 구호물자를 실어 나르고, 전염병이 창궐하면 재빨리 수액과 치료제를 공급한다. 어두운 밤길 위를 떠다니며 우범지대를 순찰하고, 광범위한 실종자 수색 작업에도 투입된다. 뜨거운 사막 위에 놓인 태양광 패널이나 먼 바다 위 설치한 해상풍력발전터빈 점검도 끄떡없다. ‘수소드론’이 실현할 ‘머지 않은’ 미래다.
수소드론은 ‘수소’를 투입해 전기를 발생시키는 ‘수소연료전지’를 장착한 드론이다. 수소가 공기 중에 있는 산소를 만나 반응하면서 발생시킨 에너지를 동력으로 사용한다. 연료전지는 본래 1960년대 유인우주선에 전기와 마실 물을 공급하기 위해 개발됐을 만큼 과학기술의 집약체다. 이런 수소연료전지 팩을 드론의 동력원으로 접목한 수소드론은 그야말로 미래형 친환경 모빌리티로 떠오르고 있다.
두산, '산업용 수소드론' 세계 최초 개발…비행시간 '30분→2시간' 대폭 확대
산업용 수소드론을 세계 최초로 개발, 미래 물류시장에 도전장을 낸 건 한국기업 두산이다. 그룹 지주사격인 (주)두산에서 연료전지사업 부문을 분사해 설립한 두산퓨얼셀이 수소연료전지를 개발, 이를 2016년 설립한 자회사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에서 드론에 장착하는 데 성공하면서 지난해 10월 산업용 수소연료전지드론 ‘DS30’ 판매를 시작했다.
드론이 갖고 있던 무궁무진한 활용 가능성을 현실화 한 건 ‘주행 시간’이다. 기존 리튬이온배터리 기반 드론은 배터리 무게 등으로 인해 비행시간이 30분 내외에 그쳤다. 15분만 날아가도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 다시 돌아와야 하다 보니 사용 폭이 제한됐다.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이 내놓은 수소드론은 2시간 동안 시속 40킬로미터로 총 80킬로미터까지 이동이 가능해 시장과 업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두산의 수소드론은 한국전력공사가 운영하는 송전탑 점검에 이미 활용되고 있다. 2018년부터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실증을 거쳤다. 정부가 수소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과 함께 추진하는 수소충전인프라 구축으로 상용화 가능성도 커졌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그간 드론의 한계로 느껴졌던 부분들에 대해 다양한 솔루션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이 개발해 지난해 10월 양산과 판매를 시작한 수소드론 'DS30' 소개. 사진/두산
드론의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만큼 무대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다. 이미 시장 진출을 위해 구호물자나 응급 혈액 등 의료용품 배송 실증이 미국에서 진행했다. 지난 달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한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0’에서 수소연료전지팩 ‘DP30’과 수소드론 ‘DS30’이 최고혁신상과 혁신상을 수상하는 등 기술력도 인정받았다.
선진국·개도국 모두 주목하는 수소드론 시장
선진국 뿐 아니라 도로나 교통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개발도상국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이미 동아프리카 케냐와 르완다, 탄자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는 혈액과 백신 등 의약품 배송, 밀렵 방지, 자연재해 연구 데이터 구축 등 다양한 목적으로의 드론 활용을 시도하고 있다.
개도국 인프라 구축에 융자를 제공하는 세계은행도 드론을 활용한 물류 인프라 구축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는 거주민 상당수가 부락을 형성해 숲속에 거주하는 등 주요 도로 2킬로미터 반경 내 인구가 전체 34%에 불과한 특성 때문에 물류 인프라 구축에 380억달러(약 46조원) 규모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세계은행 주관으로 지난 5일(현지시간)부터 오는 7일까지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드론 포럼(ADF)’은 투자 기회를 모색하기 위한 자리다. 아프리카 20여개국 장관급 인사를 비롯해 전 세계 40여개국 드론 관련 사업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두산 관계자에 따르면, 두산의 수소드론은 이미 ADF 개막 전날 참석자들 앞에서 시범비행을 선보이며 장시간 비행 드론에 대한 호평을 받았다.
세계은행은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주요 개도국에서 진행 중인 드론 프로젝트 사업자 선정에도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ADF 참가가 다른 개도국 드론 산업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이두순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 대표는 “ADF는 물류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아프리카 및 개발도상국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의미 있는 행사”라며 “수소드론으로 여러 산업에 걸쳐 아프리카 시장 내 물류 사업 진출 기회를 확보, 글로벌 물류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박정원 두산그룹회장(가운데)과 박지원 그룹부회장(오른쪽)이 8일(현지시간) CES 2020이 열리는 라스베이거스컨벤션센터를 찾아 두산 부스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두산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