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병남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 금리를 0.50%포인트 '깜짝' 인하하면서 한국은행에 기준금리 인하 압박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이번주까지 예금금리 인하를 단행한 주요 은행들은 기준금리 인하 시 추가 수신금리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어서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가 현실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일 하나은행을 끝으로 최근 시중은행들이 줄줄이 수신금리 인하를 마쳤다. 그러나 이날 연준 결정 등 시장 변화가 예상되면서 추가 예금금리 인하 가능성을 고민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한은이 내달 9일 예정된 정례회의 전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전격적인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같은 낙폭이라도 금리가 1%대에서 떨어지는 것과 예전의 7~8%대에서 떨어지는 것은 비율상으로도, 체감으로도 다르게 다가온다"면서 "이미 시장금리가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기준금리 마저 떨어진다면 추가 수신금리 하락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들은 수신금리 조정을 알리고 최대 0.30%포인트 인하하거나 이달 내 적용을 예고한 상태다. 우리·하나은행이 거치식·자유적립식 예금을 포함한 수신금리 인하를, 국민·신한은행은 일부 예금 상품에 대한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4대 은행은 지난 10월 기준금리 인하에도 수신금리 조정을 망설여왔다. 지난해 12월 농협은행이 금리를 인하한 것을 비롯해 은행권은 일제히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금리 조정을 실시했다. 4대 은행이 오픈뱅킹 시행과 신예대율(예수금 대비 대출금 비율)에 대비하면서 예금금리를 함께 내리지 못하고 4개월간 눈치싸움을 벌여온 것이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여파와 시장금리 약세에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이 예상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4대 은행은 예금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금융권에서는 올해 은행 평균 NIM 하락 폭을 9bp에서 11~12bp 수준으로 더 낮춰 전망하고 있다.
현재 1.25%인 기준금리가 1.0%로 내린다면 0%대 금리 상품 출시 속도는 더 빨라질 전망이다. 이미 0%대 금리 상품이 속속 등장한 상황이다. 기본금리 기준으로 '우리은행 WON 예금'은 연 0.84%의 이율을, '신한은행 정기예금'과 'Sh수협은행 스마트ONE적금'은 각각 0.90%로 이율을 제공한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1.0%)를 고려하면 돈을 넣으면 손해가 되는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가 되는 셈이다. 은행들은 소비자 불만이 터져 나오더라도 더 이상의 수익성 악화는 막겠다는 입장이다.
꾸준히 증가했던 은행의 예·적금 잔액도 최근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 2월말 기준 4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전월말 대비 3조272억원 감소한 514조4714억원으로 집계됐다. 정기예금은 원금이 보장되는 안전상품으로 분류되지만, 금리 수준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상품으로서 매력이 떨어졌다.
반면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의 선호도는 높아지고 있다. 신한은행 고시 기준에 따르면 금 1g의 가격은 지난달 24일 기준 6만5775원으로 시장 개설 이후 최고가를 경신했다가 이날 기준 6만2699원으로 떨어지며 주춤했다. 다른 상품으로 고객이탈을 막아야할 은행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한편 수신금리 하락 분위기에 따라 은행이 취급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은행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를 기준으로 주담대 금리를 설정하는데, 코픽스는 예·적금, 은행채 등 수신상품 금리가 인상 또는 인하될 때 이를 반영해 변동한다. 수신금리가 떨어지면 코피스도 함께 떨어져 주담대 금리 부담은 줄어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서울 종로구의 한 은행 지점에서 직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병남 기자 fellsi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