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02.25 (토요일)

법조원로의 품격“청구인(국회)의 수석대리인이 되는 것. 법관이 아니에요” 이는 대통령 대리인단 변호사 중 한 분이 변론 도중 헌재재판관을 대상으로 꼬집어서 한 애기다. 또한 대리인단은 심판지연을 목적으로 함이 농후한 신청을 남발하기도 했다. 즉 최종 변론을 앞두고 입증과 관련이 없는 정세균 국회의장 등 20여명을 무더기로 증인신청 하고, 결국에는 편향된 진행을 한다는 이유로 주심인 강일원 헌법재판관에 대한 기피신청을 하기도 했다. 물론 무더기 증인 신청은 모두 채택되지 않았고 기피신청도 15분 만에 각하됐다. 이 모든 것이 국가원수인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국가적으로 매우 중대한 사건이 진행되는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변론을 앞두고 하루 사이에 벌어진 법정참극이다. 이 전에 태극기를 들고 재판정에 등장한다던가, 다음 기일에 변론할 기회를 준다는 재판관의 소송지휘를 무시하고 “그럴 거면 왜 헌법재판관씩이나 해요”라고 소리를 지른 것은 해프닝에 불과할 정도다. 강 재판관이 편향된 진행을 한다는 일부 대리인단의 항의에 대해 대리인단의 일원인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에게 “헌재가 쟁점을 정리한다든지 중요 법령을 정하고 증거취사를 하는 것은 주심에게 권한이 없고 재판부의 권한이지 않느냐”며 “재판부가 (증인에게) 물으면 안 되느냐”라고 물었고, 이 전 재판관은 강 재판관의 말에 수긍했는데, 이러한 당연한 태도가 오히려 품격 있어 보였다. 변호사법은 “변호사는 그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변호사가 이를 위반하면 징계처분을 받게 되며, 헌법재판소는 ‘변호사로서의 품위’란 ‘기본적 인권옹호와 사회정의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법률전문직인 변호사로서 그 직책을 맡아 수행해 나가기에 손색이 없는 인품’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국 ‘변호사 직무에 관한 모범규칙’도 변호사의 품위유지의무를 규정하면서 ‘재판운영에 해로운 행위를 하는 것’을 위반사례로 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리인단 중 일부 변호사들이 변론과정에서 보여준 위와 같은 행태는 변호사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킨 것으로 보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대리인단 중 일부가 포함된 변호사들이 ‘탄핵심판에 관한 법조인의 의견’이라는 취지로 의견광고를 개진했다. 다수 언론들이 전 대법관, 전 헌재재판관, 전 대한변협협회장 경력이 있는 이들을 ‘원로 법조인’이라고 표현하며 기사화 했다. 법조원로의 정의는 무엇인가. 단순히 법조경력이 오래되었거나 대법관 등 화려한 경력이 있으면 자동적으로 원로로서 존중받아 마땅한 것인가. 여기에 쉽사리 동의할 수 없다. 필자가 생각하는 법조원로는, 법조 내부에서는 후배들에게 변호사다움과 변호사로서의 품격을 전해주는 롤 모델이 되고, 법조 외부로는 국가권력이 남용되거나 헌정질서가 붕괴되는 상황에서 도탄에 빠진 우리 국민들의 손을 잡고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주는 역할을 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대리인단에는 법조경력 40년이 넘고, 대법관 등 일견 사회적으로 신망 받는 위치에 있었던 분들이 다수 있다. 그런데 이 분들 중 일부는 앞서와 같이 재판정에서 재판관을 모욕하고 심판지연을 목적으로 증인신청을 남발하는 등 평범한 변호사들에게서조차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변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과연 이것이 변호사다움이고 변호사의 품격인가. 국민여론을 듣게 되면 즉시 아니라는 답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리인단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렇다면 대리인단이 의도적으로 변호사의 품격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만일 탄핵이 될 것을 대비해 심판이 불공정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불공정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라면(극단적으로는 법정모욕으로 감치를 각오하고), 이는 변호사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바닥까지 저하시켰을 뿐만 아니라 조속한 국정안정과 헌정질서회복을 방해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제 최종변론일인 27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직을 상실케 할 수도 있는 탄핵심판이라는 중대한 심판의 결론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진정한 법조 ‘원로’의 모습으로 품격을 보이며 최종변론에 임할 것인지, 대한변협으로부터 징계처분을 받을 것인지는 그들에게 달려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법무법인 공간)  


태극기 위에서 춤추는 사람들 태극기의 출렁거림이 예사롭지 않다. 어릴 적 태극기는 나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 태극과 4괘에 담긴 의미가 어린 나에게 신비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태극은 유학, 특히 성리학에서 모든 존재와 가치의 근원이 되는 궁극적 실체를 의미한다. 여기에 건곤감리 4괘는 하늘과 땅, 태양과 달을 상징한다고 하니 세상의 이치를 궁금해 하던 어린 나에게 신비롭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여전히 이 태극기의 신비로움 앞에 맥을 못추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서다. 태극기는 보통 애국심을 상징한다. 태극기를 펄럭이며 애국을 주장하는 국민 앞에 누가 욕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 애국심이라는 것이 참 애매하다. 구체적인 형상이 없어 무엇을 애국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런지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근대 이전에는 나라님에 대한 충성을 애국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는 근대를 지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이 다가오면서 광장의 태극기 물결도 덩달아 달아오르고 있다.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나오는 분들의 순수성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그중에는 분명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거리에 나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와 정권을 동일시하는 오류는 버려야 될 전근대적 잔재임은 분명하다. 태극기를 든 손이 진정 나라를 걱정하는 손인지 박근혜 정권을 걱정하는 손인지 스스로에게 자문할 필요가 있다. 우리 후손들에게 전근대적 유물을 보물인 양 넘겨줘서야 되겠는가. 사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보다 비난 받아야 할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생존 기반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태극기 물결이 출렁이자 국정농단 사태 이후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있던 정치인들이 다시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자유한국당 내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다. 이름을 거론하기도 거북스러운 인물들이 태극기 위에 몸을 맡긴 채 춤을 추고 있다.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 매섭게 달려드는 그들에게 반성이란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의 말을 빌려 설사 박 대통령이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실을 몰랐다 한들 ‘꼭두각시’가 죄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정작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무게감은 어느 순간 낙엽보다 가벼워진다. 더욱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국정 공백의 대혼란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대통령을 만들었던 친박계 의원들이다. 집권당인 자유한국당도 반성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태극기가 휘날린다고, 지지율이 오른다고, 그들은 ‘반성모드’를 ‘반격모드’로 전환했다. 아니 사실 무엇을 반성했는지 모르겠다. 친박계 의원 3명에 대한 당원권 정지를 인적쇄신이라 부르짖고, 당 이름 하나 바꿨다고 쇄신했다 외치고 있다.  반성이란 자기 자신의 상태나 행위를 돌아보는 일을 말한다. 자유한국당과 친박계 의원들은 자신의 상태나 행위를 얼마나 돌아봤는지 궁금하다. 반성을 했다면 그 이후가 중요하다. 반성 전과 반성 후는 명확하게 달라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최근 모습은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태극기를 앞세워 또 다시 안보몰이에 나서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친박계 의원들은 태극기 위에서 춤추려 하지 말고 이제 태극기를 국민 전체에게 돌려줘야 한다. 최용민 기자 yongmin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