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 2017.07.22 (토요일)

다리 위 악수와 우주 도킹끝이 보이지 않던 전쟁도 막바지를 향했다. 1945년 4월 25일, 독일군을 격퇴하고 동진(東進)하던 미 제1군 69사단 정찰대와 서진(西進)하던 소련 58사단 선발대가 독일 엘베강 중류 토르가우의 한 다리 위에서 만났다. 미국과 소련 병사들은 악수하고, 독일군으로부터 뺏은 술로 건배했다. 4월 30일 히틀러는 전날 결혼식을 올린 에바 브라운과 자살했다. 5월 7일 독일군은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그렇게 끝났다. 30년이 흐른 1975년 7월 17일, 미국과 소련의 지상관제소 요원들은 숨을 죽였다. 대신 그들은 대서양 상공 우주에서 나누는 승무원들의 교신에 귀를 기울였다. "아폴로 모습이 보인다. 아름답다(소유스 19호)." "소유스, 이제 접근한다(아폴로 18호)." 미국의 아폴로 18호와 소련의 소유스 19호는 시속 3000km의 아주 '느린' 속도로 접근했다. 협정 세계시 기준 17일 오후 16시 19분(한국 시각 18일 오전 1시), 마침내 엔진을 끄고 양국의 우주선은 도킹에 성공한다. 해치를 열고 그들은 악수했다. 아폴로 18호 승무원들이 소유스 19호로 이동했다. 그들은 선물을 교환하고 함께 식사를 나눴다. 양국 우주인들은 포드 미국 대통령과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축하 메시지를 들었다. 19일 15시 26분 양측은 도킹을 해제했다. 만 이틀이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냉전의 시대가 종식되고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충만했다. 냉전 시대 미·소 경쟁은 우주 공간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누가 먼저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느냐, 누가 먼저 우주 유영에 성공하느냐, 누가 먼저 달에 도착하느냐 등을 놓고 1진 1퇴를 거듭했다. 양국은 자존심이 걸린 싸움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결국 임계점에 도달했고 돌파구가 필요했다. 우주 데탕트의 신호탄이 된 '아폴로-소유스 실험 계획(Apollo-Soyuz Test Project. ASTP)'는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아폴로 18호와 소유스 19호의 우주 도킹에는 숨겨진 일화가 있다. 애초 미국과 소련이 계획했던 도킹 지점은 독일 엘베강의 토르가우 지역 상공이었다. 30년 전 함께 독일군을 무찌르고 처음으로 악수했던 그 역사적 장소와 시간에 맞추고자 했다.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우주 공간에서 이처럼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맞추기는 쉽지 않다. 결국, 도킹은 예상보다 6분 앞당겨졌고, 장소도 포르투갈 부근의 대서양 상공으로 바뀌었다. 어느 시대고, 어느 나라고 화해를 싫어하는 세력이 있게 마련이다. 모든 일을 돈 문제로 연결하는 사람도 있다. "수 억 달러를 퍼부은 깜짝 우주 쇼에 불과하다"라는 비난과 "긴장 완화에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기술적으로는 거의 의미가 없다"라는 평가절하가 교차했다. 맞는 지적이다. 실제 당시 미국과 소련이 수행한 공동 실험은 기술적으로 큰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일례로 소유스 19호가 해를 가리면 아폴로 18호가 이를 관측하는 '인공 일식 실험'이 어떤 과학기술적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돈과 기술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교훈과 가치를 남겼다. 훈련 과정에서 미국 승무원은 러시아어, 소련 승무원은 영어로 대화했다. 도킹에 성공한 후 소유스 19호 레오노프 선장은 이런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세 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러시아어와 영어, 그리고 오클라호마어." 아폴로 18호 선장 토마스 스태퍼드가 오클라호마 억양으로 러시아어를 했기 때문이다. 양국은 최초로 우주선 발사 장소와 시간을 공유했고, 상대방 우주선을 관찰(염탐)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이후 1995년 미국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와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가 결합했다. 20년 전 아폴로와 소유스가 우주에서 도킹하는 '깜짝 이벤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에는 44시간에 불과했지만, 미르에서는 미국 우주인 7명이 977시간이나 머물렀다. 이 프로젝트는 국제우주정거장(ISS) 건설·운영으로 이어졌다. 모든 것을 돈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하다. 우주개발이 조금만 늦어져도 예산 낭비 타령이 먼저 나온다. 원전 건설 중단 논란도 돈이 중심이다. 심지어 햇볕정책을 비난할 때도 예외 없이 돈 문제가 거론된다. 사실은 핑계다. 그냥 마땅치 않고 하지 말자는 거다. 단 44시간의 도킹을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쓴 이유는 단순명료하다.이제 우리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교훈과 가치가 있다면 기꺼이 지불하자고 하면 좋겠다. 왜냐고? 때로는 그것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힘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런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겠나.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 


우리은행 민영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완성해야 지난 19일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2년4개월의 재직기간을 끝으로 금융권의 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임 전 위원장의 뒤를 이어 국내 금융정책의 키를 잡은 인물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이다. 최 위원장은 같은 날 취임식을 통해 정식 임명됐다. 이 자리에서 최 위원장은 국내 금융권에 산적한 과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겠다는 당찬 포부를 내비췄다. 현재 금융권에는 많은 현안들이 산적된 상태다. 국가 경제의 뇌관으로 위협이 되고 있는 가계부채 해결안부터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규제 해법, 비정규직 제로화에 따른 일자리 창출, 우리은행 민영화 마무리 등이 핵심 과제로 꼽히고 있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금융권 수장의 자리가 73일 동안 공석으로 비어있어 금융권에서는 새로운 금융위원장의 등장만을 기다려온 상황이었다. 특히 금융위원장의 인선에 대한 기다림이 장기화되면서 정부가 금융권을 홀대하고 있다는 '금융 홀대론'이 나오기도 했다. 때문에 국내 금융사들은 이번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목소리만을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정책 컨트롤 타워가 본격 가동되는 만큼 최 위원장이 국내 금융권에 산적한 현안 과제에 대해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에 산적된 현안 문제 가운데 후순위로 밀린 과제는 우리은행 민영화 마무리 문제다. 앞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우리은행 민영화에 포문을 열어놓았다. 그동안 우리은행은 최대주주였던 예금보험공사가 작년에 지분을 대량 매각하면서 과점 주주를 중심으로 한 경영체제를 구축하고 민영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잔여 지분(18.40%) 매각을 해야 민영화의 완성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상태다. 과점주주 방식을 통해 민영화 경영체계는 구축했지만 아직까지 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은행의 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불투명하던 잔여지분 매각 이슈가 최종구 금융위원장 후보자의 말 한마디에 다시 주요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우리은행은 지주회사 전환을 앞두고 정부의 지분 우선 매각을 통해 민영화를 속히 마무리해야하는 입장이다. 때문에 금융당국이 주도해서 잔여지분 매각이 성사되면 우리은행의 지주회사 전환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 위원장은 앞서 인사청문회에서 "우리은행의 민영화 마무리를 위해 어떤 방향으로 할지 최대한 빨리 결론을 내는 게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인사청문 답변 자료에서도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우리은행 잔여지분을 신속히 매각하도록 검토하겠다"며 "투자수요 등 시장 여건과 공적자금 회수 가능성, 과점주주 체제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공적자금관리위원회와의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정부의 우리은행 잔여 지분 매각에 대한 금융위원장의 의사가 뚜렷해지면서 우리은행의 지주사 전환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최 위원장의 발언에 우리은행은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민영화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해묵은 과제였던 우리은행 민영화라는 활시위를 이제는 놓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문제지만 최종구 위원장이 놓치고 가서는 안될 문제이기도 하다. 최 위원장의 결단력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정운 기자 jw891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