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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기업부의 계절일본이 애매한 몸짓을 취했다. 지난 8일 한국수출 규제대상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가운데 1개인 포토레지스트 수출 신청 1건을 허가한 것이다. 지난달 4일부터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동한지 1개월여가 흐른 다음에 취해진 조치다.  그 하루 전 일본 정부는 이날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법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다만 기존 3개 품목 외에 추가로 '개별허가' 품목을 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사실상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선 이번에 허가된 수출이 단 1건에 불과하다. 일본이 '캐치올'(Catch all) 제도를 이용해 비전략물자까지 새로 규제대상에 넣을 가능성도 남아있다. 국내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국제적인 비판여론을 무디게 하려는 시도라는 풀이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한 조치가 본격 시행되는 오는 28일이 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외무장관 회의도 21일쯤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본의 의도가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한국도 지난 8일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고시 개정안을 일단 보류했다. 일본의 향후 태도를 조금 더 지켜보자는 뜻에서다. 현명한 태도라고 판단된다. 민간 차원의 불매운동과 달리 정부의 대응은 조급할 필요는 없다. 시기를 기다리되 때를 놓치지 않으면 된다.   이번 ‘경제왜란’이 어떻게 흘러가고 어떻게 매듭지어질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어쨌든 한국으로서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 소재부품을 더 이상 일본에 매달려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재부품을  최대한 스스로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을 시급히 갖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됐다. 태풍이 지난 후에 빛나는 햇빛처럼  선명해졌다.  이에 따라 경제부처들이 소재부품 국산화 대책을 마련하느라 그 어느때보다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중소벤처기업부가 바쁘게 움직일 듯하다.   중소기업부는 지난주 대책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자금난을 겪는 기업에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을 원활하게 해주고, 소재·부품·장비 생산을 위한 시설투자 자금 융자한도를 기업당 100억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올해 중소기업 연구개발에도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확보된 1천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그렇지만 돈보자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무엇보다 소재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과 이를 사용하는 대기업을 이어주고 ‘고무찬양’하는 것이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도 대기업으로부터 국산화가 필요한 부품 리스트를 받아 중소기업과 연결해 주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파악된 품목이 20~30개에 이르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필자는 젊은 시절 몇 년 동안 철강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원자재와 공장조업용 자재 수입 업무를 맡은 바 있다. 그 당시에도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품목의 국산 대체 가능성을 나름대로 모색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국내 어떤 업체가 생산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적지 않았다. 간혹 국내 업체를 찾아서 방문해 보기도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볼 때 소재부품 국산화의 첫걸음은 대기업과 공급 중소기업 사이에 다리를 놔주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런 ‘복덕방’ 역할을 하는 곳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중소기업부가 그런 훌륭한 일을 한다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사실 필자는 지금까지 중소벤처기업부가 왜 굳이 필요한가 의문을 품어 왔다. 공연히 공무원들 자리만 늘려주는 것 아닐까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제 중소기업부가 할 일을 제대로 찾은 것 같다.  대상 품목을 발굴하는 것으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협력 정신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된다. 중소기업이 성실하게 생산하고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구매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를 위해 소재·부품·장비경쟁력위원회 산하에 설치될 상생협의회에서도 중소기업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기대된다. 지금은 국가경제에 참으로 엄중한 시기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중소벤처기업부로서는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바야흐로 중소벤처기업부의 계절이 온 것이다. 이럴 때 주어진 책무를 다하면 국가경제에는 굳건한 토대가 구축될 것이요, 중소기업부 직원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보람과 자긍심이 새겨질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 (folium@nate.com) 


안중근·박열이 바랐을 한일관계최한영 정치부 기자일본의 한반도 침략에 맞서 독립운동에 나섰던 사람 중 안중근과 박열을 빼놓을 수 없다. 독립운동가라는 점 외에 두 사람의 행적은 여러모로 대비된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성공하고 이듬해 3월26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했다. 박열은 1923년 천황 암살을 꾀하던 중 체포돼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이후 무기로 감형, 22년2개월 수형생활을 하고 출소해 1970년대까지 생존한다. 안중근이 공화주의 또는 근왕주의 정치사상을 갖고 있었다고 평가되는 것과 달리 박열은 민족주의에 기반한 아나키스트였다. '안중근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비난의 초점을 이토 히로부미에 맞추고 천황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해석이 있는 것과 달리 박열은 천황제 자체를 비판했다. 공통점도 있다. 두 사람은 각각 평화·정의를 내세운 사상가였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을 통해 동북아 평화정착 모델을 제시했다. 사형집행일 유언도 "내가 한 일은 동양평화를 위해서였다. 한일 양국이 협력해 평화를 이루기를 바랄 뿐이다"였다. 박열은 출감후 쓴 '신조선혁명론'에서 "나의 사상과 행동은 언제나 올바르고 정의로울 것을 지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일본인 간수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안중근은 수많은 일본인 간수와 관리들에게 존경을 받았고 이들에게 많은 휘호를 써줬다. 육군 상등병이었던 지바 도시치에게 사형집행 1시간 전 그 유명한 '위국헌신 군인본분' 휘호를 남겼으며 지바는 이를 평생 소중히 간직했다. 형무소장 구리하라는 안중근 사형 집행 후 집에 가서 "아까운 사람을 죽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열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수감생활을 하던 중 형무소 책임간수장이었던 후지시타 이이치로는 자신의 책에 "나는 선생의 인격에 반하고 굴복해 숭모의 신념을 금할 수 없다"고 썼다. 괴팍해 보였지만 일본인 아내 가네코가 인정한, 순결한 휴머니즘의 공감이 박열의 일생에서 종종 묻어난다.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노동 피해자 배상판결과 일본 경제산업성이 한국을 수출허가 신청 면제대상(화이트리스트) 제외하며 극단으로 치닫던 양국 갈등이 문재인 대통령의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그나마 숨통을 트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국민들이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에 반대하면서도 양국 국민의 우호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대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기존 대일 강경노선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다음날 한일 관계가 얼어붙더라도 민간 교류에까지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정부간 갈등으로 한일 국민감정마저 안좋아진 상태다. 전쟁과도 같았던 양국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일본인들이 안중근·박열에게 보냈던 존경, 안중근과 박열이 추구했던 평화·정의의 가치가 투영되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필요한 일이다. 최한영 정치부 기자(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