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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포크 그룹 동물원 '혜화동'은 어떻게 녹음됐나

2023-07-18 18:13

조회수 : 2,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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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파솔 레(높은 레)도 시시시도(높은 도)시....'
 
멜로디언 첫 소절부터 '응답하라1988'(응팔)의 정겨운 쌍문동 골목길이 펼쳐집니다. 밥 짓는 냄새와 사람 내음으로 가득한, 지금은 느낄 수 없는 색감의 온도들. 
 
'최택(박보검 분)'이 중국에서 열린 바둑대회에서 우승하고 돌아와 쌍문동 친구들과 함께 피자를 먹는 장면과 택이 '덕선(혜리분)'을 끌어안는 '심쿵 포옹신'을 할 때 울려 퍼지던 노래. 사실, 원곡은 멀리 떠나는 어릴 적 친구를 만나러 가는 마음을 아름답고 정적인 가사로 그려낸 노래입니다.
 
한국 포크 그룹의 전설 동물원 2집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에 실려 있는 노래인데요. 이 노래는 지금도 '거리에서', '변해가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널 사랑하겠어' 같은 동물원 대표곡들 중 으뜸으로 꼽히곤 합니다.
 
이 곡이 수록된 음반은 어떻게 녹음 됐을까. 동물원의 원년 멤버인 박기영(홍익대 공연예술학부 교수)씨를 최근 만나 들어봤습니다.
 
"88년 1월부터 1집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2집 수록곡 역시 대부분 이 때 작곡된 곡들이었어요. 2집 녹음 전 콘서트에서 계속 연주하던 노래들이었고요. 이미 콘서트를 통해 관객들에게 익숙했던 곡들이고."
 
데뷔 음반인 1집을 만들 당시 산울림 김창완이 설립한 스튜디오 '타임레코딩'에 들어가서 녹음을 했었습니다. 당시는 손으로 패드를 터치하는 드럼 머신과 플라스틱 건반 정도가 덩그러니 있는 조그만 녹음 부스였다고. 당시 밴드들은 주로 리버브이펙트(소리에 울림을 주는 효과 장치)를 보컬에 많이 활용해서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주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1집은 열악환 환경 덕에 그냥 녹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얘기하듯 사각사각 들리는 것이지요. 창완이형은 의도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들지만, 당시는 우리 음반 듣기도 싫었었어요."
 
1집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2집은 메이저 녹음실로 향했다고 합니다. 80년대 최고의 스튜디오로 꼽히는 동부이촌동 소재의 '서울스튜디오'로. 당시도 산울림 김창완이 프로듀싱 역할을 했는데, 일반적으로 모든 악기들을 개별적으로 녹음 받아서 수정하는 '멀티 마스터 녹음' 방식이 아닌, '투트랙 마스터 녹음 방식'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투트랙 녹음방식은 모든 악기들을 동시에 연주하고 녹음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누가 중간에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창완이형은 저희의 서툰 표현들이 저희의 노랫말이나 풋풋한 멜로디와 결합하는 그 묘한 화학작용을 끌어내려 하셨던 것 같아요. 당시 저희는 기술적으로 어떻게 하면 연주를 잘 할 수 있을까에만 골몰했지만. 결국 창완이형의 방향성이 맞았던 것 같아요. 평범한 노래들을 특별한 녹음방식으로 끌어내려 하셨던 것이죠."
 
'혜화동'을 포함한 2집 수록곡 전체를 서울스튜디오에서 하루만에 라이브하듯이 녹음을 끝냈다고 합니다. 
 
"대신 달라진 게 있다면, 1집 때 못썼던 리버브 이펙터가 한이 돼서 2집 때는 목욕탕사운드처럼 들릴 정도로 한을 다 풀었던 기억이 있고요."
 
'혜화동'의 원곡 녹음본을 잘 들어보면 묘하게 울리는 목소리들이 잔향처럼 들립니다. 가사처럼 친구들이 달려 오는 80년대 골목길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오늘 퇴근 길 만은 각자의 어릴 적 골목으로 떠나보는 것이 어떨는지요.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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