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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법조계 재스민 혁명' 청년변호사 게시판 '율담' 사실상 폐쇄

서울회장 선거 돌풍·변호사 집단시위 등 이끌어 냈으나 '익명성 논란'으로 활동 중지

2012-07-29 14:32

조회수 : 7,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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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인터넷 온라인상의 청년변호사 익명게시판 '율담(www.legalqna.com)’이 '익명성 보장 논란'으로 사실상 폐쇄된 것으로 확인됐다.
 
율담은 변호사들의 집단시위, 청년변호사의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선거 돌풍 등 이른바 '법조계의 재스민 혁명'을 몰고 온 법조인들의 게시판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율담은 지난 5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변호사들이 의견을 올리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소식이 업데이트 되지 않고 있다.
 
이날 현재 회원수는 3461명이지만 하루에 수천개씩 올라오던 변호사들의 의견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으며 사실상 운영이 정지된 상태다.
 
그동안 회원으로 활동했던 변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되는 것으로 알려졌던 게시판 운영이 기술적으로 신원 식별이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지난 3월부터 변호사들의 대규모 이탈이 시작됐다.
 
익명성 보장이 안 된다는 사실은 매우 우연한 기회에 밝혀졌다.
 
여느 때와 같이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변호사가 자신이 올린 글 위에 마우스 커서를 올리고 오른쪽 버튼을 클릭해보니 소스보기와 함께 회원 가입시 입력했던 아이디가 창에 뜨더라는 것.
 
이 변호사는 다른 사람들 글의 소스도 똑같이 조회하자 글을 올린 변호사의 아이디를 알 수 있었으며, 이어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아이디를 입력한 후 해당 변호사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이같은 사실은 율담회원들 사이에 순식간에 퍼졌고 변호사들의 탈퇴가 봇물을 이뤘다.
 
◇익명 변호사 게시판 율담. 얼마 전까지 하루에 수천개의 글이 올라오며 청년변호사들 사이의 '소통의 광장' 역할을 했으나 최근 익명성 보장 논란이 불거지면서 활동이 정지된 상태다.
 
2009년 3월20일부터 운영되기 시작한 율담 게시판은 사법연수원 29기의 P변호사가 만들었다.
 
오직 변호사와 법무관, 판·검사 등 법조인만 회원가입이 가능했으며 주기적으로 게시판 비밀번호를 바꾸는 등 외부 차단을 철저히 했다. 가입대상은 법조인 전체지만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청년변호사들이 활발히 활동해왔다.
 
율담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에는 새내기 변호사들의 업무 고민에 대한 선배 변호사들의 답변이나 휴가시 여행 정보, 여성 변호사들의 육아고민 등 소소한 것이 주로 화제였다.
 
그러나 익명으로 의견을 게재한다는 장점 때문에 회원 수가 점차 늘어났고 사법개혁이나 청년변호사들에 대한 부당대우, 로스쿨 문제 등 굵직굵직한 이슈가 터지면서 점차 세력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2011년 1월 제91대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선거 당시에는 30대 중반의 나승철 후보(35·35기)를 지지하자는 움직임이 율담을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나 후보가 당시 당선된 오욱환 후보(52·14기)를 불과 26표차까지 추적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후 재야법조계의 '영 파워(young power)'로 떠오른 율담은 2011년 3월7일 법무부가 추진하던 '로스쿨원장 추천자에 대한 검사선발 방안'에 반대하는 변호사들을 대검찰청 앞 집단시위 현장으로 이끌어 내기도 했다.
 
사법연수원 36기인 한 변호사는 "율담이 흉가, 폐가가 됐다"며 "정보교환이 막혀서 매우 답답하다"며 안타까워 했다.
 
37기의 한 변호사도 "여행정보를 공유하려고 오랜만에 율담에 들어갔다가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는 충격이 컸다"며 "새내기 시절부터 오랫동안 큰힘이 됐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38기인 또 다른 변호사는 "우리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공감하며,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가는데 율담이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며 "앞으로 청년변호사들이 고충이나 부당한 대우 등에 대해 하소연 할 곳이 없어져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일부 변호사들이 모여 포털사이트에 제2의 율담 역할을 할 게시판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지만 호응이 크지는 않은 상태다.
 
35기의 한 변호사는 "익명성 보장이나 관리자의 개입 등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과거 율담 만큼의 역할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율담을 처음 만든 변호사께서 애초에 익명성 보장의 어려움 등을 공지해 같이 해결책을 찾았더라면 지금처럼 폐지되는 최악의 일은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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