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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정

(경제민주화, 양보다 질)②박근혜식 금산분리, 이도저도 아닌 `맹탕`

2013-09-26 10:00

조회수 : 15,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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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해야 한다는 의미로, 대기업집단의 은행 혹은 금융회사 소유와 맞물려서 주목되는 이슈다.
 
이 제도를 도입한 건 기업이 은행을 주무르다 애꿎은 예금주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손쉬운 예로 IMF금융위기나 저축은행 사태 당시 일각의 모럴헤저드가 이들과 상관없던 서민층에 위기를 전이시키고 사회 전체 시스템에 위기를 초래한 사례가 해당한다.
 
금산분리는 좀 더 직설적으로 '재벌'에 은행이나 금융사를 안기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뉴스토마토 자료사진)
현실적으론 보험사, 카드사 등 제2금융권에 대기업집단이 진출해 있는 만큼 '은산분리' 정도만 지켜지고 있는 상황.
 
이런 가운데 '금산분리'는 경제민주화 흐름을 타고 강화될 필요성이 제기됐고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기간 '금산분리 강화'를 공약했다.
 
정부 공약은 세부적으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모든 금융사로 확대하고, 현행 9%인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한도를 축소하며, 금융보험사가 보유한 비금융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강화하겠다는 내용 등이다.
 
여기에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보유를 허용하되 일정요건 충족시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를 의무화' 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4개 공약 가운데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한도를 축소하는 내용은 올해 상반기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산업자본이 보유할 수 있는 은행지분 한도가 종전 9%에서 4%로 줄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금산분리 공약. (자료제공: 경실련)
하지만 나머지 공약은 국회 처리가 유예됐다. 심지어 각 방안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는 중이다. 무엇보다 내용을 따져보면 금산분리 '강화'가 아닌 '완화' 방안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논의과정에서 내용 자체가 뒷걸음질쳤다는 비판도 높다. 대표적인 게 '대주주 적격성 심사' 제도다.
 
이 제도는 '문제가 있는 대주주는 금융사를 지배할 수 없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이 공감을 표하면서 관련내용을 담은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제정이 점쳐졌지만 결국 불발에 그쳤다.
 
무엇보다 대주주 범위와 부적격 기준, 부적격 대주주에 대한 제재방법을 놓고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대주주 범위를 최대주주로 한정할지 계열사 지분을 통해 '사실상 지배' 하는 총수 일가로 넓힐지 이견이 갈렸고, 부적격 기준에 대해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을 넣자는 야당과 이에 반대하는 여당 의견이 부딪혔다. 정부도 부적격 사유에 공정거래법과 금융관련법 위반만 집어넣자는 입장이다.
 
부적격 대주주를 제재하는 방법을 놓고서도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는데 야당은 '의결권 제한'과 '지분 매각' 방안을 내놨지만 정부 여당은 이에 반대했다.
 
이 자체로 이중규제가 될 수 있고 대주주가 물러난 빈 자리를 외국자본이 치고 들어와 적대적 인수 합병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 등이 거론됐다.
 
결과적으로 은행과 저축은행에 적용돼온 대주주 적격성 심사 내용을 카드사, 보험사 등 제2금융권에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정책도 당분간 미뤄지게 됐다. 정책당국 안팎에선 부적격 대주주를 제재하는 방안이 완화되는 선으로 조율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법정구속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대주주 적격성 심사 규제가 강화되면 김 회장이 한화건설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갖고 있는 한화생명 지분이 당장 규제 영향권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 전성인 홍익대 교수의 지적이다. (뉴스토마토 자료사진)
  
◇대주주 자격 심사, 전체 금융권으로 넓힌다더니..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강화하는 건 금융정책의 핵심 가운데 하나"라며 "대주주가 자기 돈 아닌 금융사 고객 돈을 갖고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건 너무도 당연하고 최대한 엄격하게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23일 '경제민주화와 금융' 토론회에서 "금융회사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대주주에 대한 자격심사는 주기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모든 금융업권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행 자본시장법과 같이 최대주주가 법인인 경우 그 법인의 중요한 경영사항에 대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대주주 범위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대주주 범위를 금융회사의 직접 주주로 한정할 경우 "규제의 사각지대가 나온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그 사례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불법대출로 유죄판결을 받고도 그룹 산하 태광산업(003240)이 쌍용화재 지분을 별 문제 없이 인수한 사실을 거론했다.
 
◇금산분리 강화? 완화?..중간금융지주 도입을 어떻게 볼 건가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보유를 허용' 한다는 방침도 뜨거운 감자다. 그 자체로 금산분리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금산분리 차원에서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보유를 금지하고 있으며, 만일 금융사를 보유 중인 기업집단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을 하려면 갖고 있던 금융사 지분을 전부 매각해야 한다.
 
지난 7월 두산의 자회사 두산중공업(034020)두산인프라코어(042670)는 금융계열사 두산캐피탈 주식 처분이 늦어지는 바람에 공정위로부터 56억원대 벌금을 물기도 했다. 
 
문제는 정부가 지주회사체제를 권장하고 있다는 점. 이를 테면 정부는 지주회사 전환을 권하고 있는데 현장에선 금융사 지분 처리 문제로 전환이 어려운 상황이 나올 수 있다.
 
공정위는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보유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를 의무화 하겠다는 내용을 덧붙였는데 이를 테면 금융보험사를 3개 이상 두거나 금융보험사의 자산규모가 20조원 이상인 경우다.
 
자료제공: 공정위
 
무게를 어디에 두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릴 수 있지만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보유'는 문자 그대로 금산분리 원칙을 깨는 걸 의미한다.
 
흥미로운 건 이 문제에 한해서 금산분리 강화를 주장하는 쪽의 찬반견해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은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사진. 한성대 무역학 교수)이 맨 처음 제안하기도 했다.
 
사진: 뉴스토마토 조승희 기자
김 교수는 지난해 발간한 저서 <종횡무진 한국경제>를 통해 이미 "일반지주회사의 금산분리 문제와 관련해 금융계열사의 수 및 자산규모가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 그 밑에 금융 계열사를 모두 배치하도록 함으로써 금융 무분과 비금융 부문 사이에 차단벽을 만들고 중간금융지주회사 산하의 금융 부문에 대해서는 금융감독 당국의 더욱 엄격한 통합감독을 받도록 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중간금융지주회사에 대해선 금융과 비금융을 가르는 '방화벽'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김 교수는 적어도 비은행 금융회사에 대해선 금산분리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생각이다. 그 이유로 "재벌이 이미 비은행 금융부문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소유규제와 의결권 제한이란 둔탁한 수단만으로 금산분리를 실현하기에는 많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그 문제는 명백한 금산분리 완화"라고 지적했다.
자료제공: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전 교수는 "이걸 의무화 하는 게 아닌 이상 기업 입장에선 그냥 지금처럼 있어도 된다"며 "은행법도 아닌 공정거래법에 이런 식으로 완화하는 내용을 넣고 기업 마음에 의존해 제도를 운영하는 게 과연 실효가 있는 거냐"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삼성생명지주회사' 출현을 점치기도 한다. 삼성이 삼성생명(032830) 등 금융계열사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도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삼성이 금융계열사 지분을 그대로 '보유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런데 삼성은 지금도 이미 삼성생명 등 11개에 이르는 금융계열사를 보유 중이다. 금산분리 '원칙'을 상기할 때 이 방안의 효과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을 움직여야 진짜 규제다"
  
금산분리는 결국 삼성을 빼고 얘기하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의 금산분리 강화 방안 가운데 하나인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 방안도 결국 삼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실질적 관건이다.
 
구체적으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005930)에 행사 중인 의결권 6.1%가 얼마큼 제한 받을 수 있느냐 하는 점이 쟁점이다.
 
삼성을 빼고 금산분리 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뉴스토마토 자료사진)
 
현행 공정거래법은 이에 대해 '경영권 방어 차원'의 의결권 행사만 허용하고 "전체 금융회사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한 수치가 발생주식의 15%를 넘지 않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공정위는 이를 "금융 보험사가 행사할 수 있는 지분율을 합산" 해 발행주식의 5%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공정위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에 행사 중인 의결권이 1.1% 제한 받게 된다."
 
하지만 이 방안의 허점을 지적하는 쪽에서는 '전체 합산' 방식이 아니라 '금융회사 합산' 방식으로 바꿨다는 점을 문제삼는다. 의결권을 제한하는 데 '전체 합산' 방식이 규제수위 면에서 좀 더 효과적이라는 이유다.
 
이 논리에 따르면 공정위 안은 의결권 한도를 크게 떨어뜨렸지만 딱히 금산분리 강화라고 보기도 어렵게 된다. 실제 전성인 교수는 "제대로 하려면 현행법의 의결권 제한 수치만 '15% → 5%'로 갈아끼우는 게 낫다"고 말했다.
 
실제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소속 김상민 의원이 이런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뿐 아니라 같은 당 소속 강석훈 의원의 개정안도 발의돼 있는 등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 이슈는 논점과 방법이 각양각색이다.
 
전성인 교수는 "이건희씨가 동방생명에 약간의 돈을 내고 금융업에 진출한 뒤, 보험에 가입한 고객돈을 갖고서 막대한 삼성생명 자산을 형성하고 그것으로 전체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게 문제 본질"이라며 "궁극적으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에 갖고 있는 지분이 없어져야 하고 이번에 실질적으로 삼성을 움직일 수 있도록 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료제공: 김상조 교수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 및 금산분리 제도의 개선 방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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