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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댓글女'부터 1심 판결 선고까지

검경 수사 초기부터 '외압' 논란 휩싸여

2014-09-1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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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대선을 8일 앞둔 2012년 12월11일 저녁, 강기정 의원 등 민주통합당(현 새정치연합) 의원 4명과 보좌관 및 당직자들이 언론을 대동한 채 서울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을 급습했다. 국정원 요원 김하영씨의 오피스텔이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처음으로 외부에 알려진 된 순간이다.
 
◇'국정원 댓글녀' 실체 확인 '대선개입' 수면 위로
 
당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국정원 전직 직원인 김상욱씨의 제보를 받은 후, 국정원 요원들이 대선과 관련한 '댓글'을 작성하는 현장을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당직자들이 며칠 간 잠복 한 끝에 마침내 이날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거주지를 확인하는 것에 성공했고, 의원 등이 현장을 급습해 '정치 개입'의 꼬리를 잡은 것이다.
 
김씨는 그러나 민주당의 급습에 문을 걸어 잠그고 문밖에 나오지 않았다. 민주당의 신고를 받고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은 '범죄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강제진입을 하지 않았다. 이 사이 김씨는 방 안에서 삭제 프로그램을 이용해 컴퓨터 사용 정보를 지웠다.
 
◇'국정원 댓글녀'김하영씨가 지난 2012년 12월15일 서울수서경찰서에서 소환조사를 마친 뒤, 취재진에게 심경을 밝히고 있다. 당시 그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이후 수사를 통해 거짓임이 드러났다. ⓒNews1
 
이후 경찰의 수사가 진행됐다. 그리고 대선을 3일 앞둔 12월16일 밤 11시, 경찰은 전격적으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선후보간 마지막 TV토론이 끝난 직후였다. 경찰은 '대선개입은 없었다'는 요지의 발표문을 읽어내려갔다. 향후 검찰 수사를 통해 엉터리로 밝혀진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였지만, 민주당은 역풍을 피할 수 없었다.
 
같은 달 19일 치러진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패배한 민주당은 고개를 숙이고 '참회' 모드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몇몇 의원들은 지속적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했다.
 
그 중 한 명인 진선미 의원이 원 전 국정원장이 구체적으로 개입을 지시한 정황이 담긴 국정원 내부 문건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을 입수해 폭로했다.
 
◇경찰 '수박 겉핥기'..검찰, 국정원 윗선 겨냥
 
이 과정에서 지지부진하게 끌어오던 경찰 수사가 4월 마무리 됐다. 국정원 하급 직원 3명에 대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국정원 상부에 대한 기소는 물론이고, 수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수사 결과였다. 중간 수사 결과에 비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역시 사건의 본질에 전혀 접근하지 못한 수사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특수통인 윤석열 여주지청장(현 대구고검 검사)을 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팀을 꾸려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초기부터 원 전 국정원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고, 경찰이 신원파악조차 하지 못한 국정원 윗선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하며 수사에 속도를 냈다.
 
그러나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수사팀은 원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대선개입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고 구속 기소 의견을 냈지만,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반대로 불구속 기소하는데 그쳤다.
 
이 과정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은 특별수사팀에 힘을 실어주며 황 장관과 대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 직후 불거진 '혼외자' 의혹으로 검찰을 떠났다. '혼외자' 의혹이 폭로된 배경에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있다는 설이 정치권 중심으로 이어졌지만, 검찰 조사는 거기 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NLL 대화록 공개'·'채동욱·윤석열 찍어내기' 등 여권 총 반격
 
검찰이 원 전 원장에 대한 기소를 결정하자 국정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전격 공개했다. 당시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대화에서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는 여당의 공세에 야당이 몰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선개입' 사건으로 국정원으로 집중되던 여론의 뭇매가 주춤했다.
 
'NLL사건'으로 국면이 급격히 전환되면서 6월말 여야가 전격적으로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특위 위원으로 내정된 민주당 김현·진선미 의원의 자격을 흠잡아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두 의원은 가장 적극적으로 국정원 대선개입을 파고들었던 의원들이었다. 결국 두 의원의 특위 위원직 자진사퇴로 국정조사는 7월말에서야 시작됐다.
 
국정조사에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경찰 수사 당시의 외압을 폭로했다. 김 전 청장 등의 노골적인 수사 방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권 전 과장에 대해 노골적인 비하발언과 깎아내리기로 일관했다.
 
아울러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은 '증인선거'조차 거부했다. 두 사람이 국정조사에 한 모든 답변의 요지는 '나는 모른다'였다.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현 대구고검 검사)이 지난해 10월 21일 서울 서초동 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검찰청 산하 일선 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오른쪽)의 답변을 듣고 있다. ⓒNews1
 
10월에 진행된 국정감사에서는 검찰 특별수사팀 실무진의 입을 통해 수사 외압이 폭로됐다. 윤석열 전 팀장이 작심발언을 한 것이다.
 
당시 그는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국정원 직원을 체포했다는 이유로 특별수사팀장에서 밀려난 직후였다. 윤 전 팀장은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사전에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계획을 밝히자 '야당 도와줄 일이 있느냐'며 반대했다고 폭로했다.
 
윤 전 팀장은 이 일이 있은 뒤 정직 1개월의 중징계를 받고 대구고검으로 사실상 좌천됐고 조 전 지검장은 검찰을 떠났다.
 
검찰 조사와 국정감사 등을 거치며 '국정원 대선개입'은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으로 확대됐다. 군이 '사이버사령부'를 통해 국정원과 마찬가지로 '댓글'·SNS 등을 통한 야당 비방을 한 것이 밝혀진 것이다. 또 국가보훈처 등도 안보교육을 빙자해 야당과 야당 정치인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을 해온 것도 드러났다.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국정원 요원들이 인터넷에 쓰거나 퍼 나른 글들은 계속 발견됐다. 검찰은 2200만 건의 트위터 글을 발견했지만 수사 인력의 부족으로 121만 건에 대해서도 기소를 했다. 검찰은 3차 공소장 변경을 통해 이 중 78만개를 공소장에 적시했다.
 
원 전 원장은 1년이 넘는 재판 기간 내내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지난 7월 결심 공판에서 그는 "정당한 임무 수행이고 대선개입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60세가 넘은 사람으로 인터넷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트위터 사용 경험이 없어서 재판을 받으면서도 무슨 얘긴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1심 "원세훈 정치관여..선거개입은 아니야"
 
서울지법 형사21부(부장 이범균)는 1년3개월 동안의 재판 끝에, 11일 원 전 원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자격정지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 기소 내용 중 공직선거법위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하고, 국정원법 위반에 대해서만 혐의를 일부 인정했다. 검찰이 기소한 트윗글 78만개 중, 11만개만이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정치 관여 활동을 하게 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목적에 대해선 '정치 공작의 목적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국가정보원법 위반·공직선거법상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11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선고공판을 마치고 취재진을 피해 법정을 나서다 잡힌 뒤 소회를 밝히고 있다.ⓒNews1
 
재판부는 "국정원의 사이버 활동에 대해선 북한의 사이버 활동에 대응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원 전 원장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정치 공작의 목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잘못된 업무관행을 탈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여, 사실상 원 전 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새정치연합은 즉각 반발했다. 김영근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을 통해 "명백한 사실에 대해 애써 눈감으려는 정치적 판결"이라고 맹비난했다.
 
또 "대선이 한창 진행될 때 불법적으로 정치에 관여했다면 그것이 대선개입이 아니고 무엇이냐"며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속속 드러난 대선개입 증거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며 무책임한 국정 책임자의 모습을 보여왔다"며 "원 전 원장이 국정원법을 위반한 사실이 밝혀진 이상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에 공식으로 사과하라"고 박 대통령을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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