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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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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시론)더 공정한 대한민국

2016-01-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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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연구센터 연구원
‘공정한 대한민국.’
4.13 총선에서 시민적 관심을 끄는 아젠다로 설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1월16일 영국 노동당의 제레미 코빈은 유서 깊은 페이비언협회에서 기조연설로 ‘더 공정한 영국(a fairer Britain)'을 천명했다. 그는 현재 집권 보수당의 캐머런 정부에서 불공정이 확대되고 있음을 질타했다. 70년대 노동당을 이끈 키녹의 제자는 길지 않은 연설문에서 '공정함'이라는 단어를 무려 21번이나 사용했다. 지난해 11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캐나다 트뤼도의 승리에서도 핵심적인 의제는 '강한 중산층을 새롭게 만드는 계획'이라는 '공정함'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진짜 변화'를 불러온 선거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키워드는 '공정'이다.
 
1971년 발표돼 케인지언 복지국가의 철학적 기초가 되었던 존 롤즈(J. Rawls)의 정의론도 그 단초가 되었던 것은 1960년대 후반에 나왔던 그의 ‘공정으로서 정의’라는 논문이었다. ‘공정함’은 사회 정의의 기초에 자리잡고 있다. 대표적인 유럽진보 철학자인 데이비드 밀러(D. Miller)는 사회 정의를 지난 100년 동안 유럽 사민주의를 이끌어 온 견인력으로 규정했다.
 
시민들은 사회 정의라는 철학적인 이론보다는 좀 더 직접적이고 체감적인 불공정에 대한 분노로 ‘공정함’에 귀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는 상위 10%의 소득이 중하층 90%에게 빗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낙수효과(trickle down)가 일어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으로 지탱해 왔다. 그러나 1970년대 복지국가의 재편 이후 지난 30년 동안 이런 낙수효과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최근 OECD, IMF 등 다소 보수적인 국제기구들도 이를 확인하고 있다.
 
시민들은 사회 정의와 같은 세련된 철학적 이론이 아니라 좀 더 직접적이고 적나라하게 현실을 반영해주길 원하고 있다. ‘공정함’은 2008년 위기 이후 유권자들의 분노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최소극대화(Maximini)’나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같은 현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불공정함을 시정해 달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듣고 싶어한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경제지표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상위 소득 10%가 차지하는 소득점유율이 IMF 외환위기 직후 35% 수준에서 현재 45%에 이르고 있다. 중하위 90%의 소득점유율이 65%에서 55%로 악화되었다는 의미다.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OECD 주요 경제대국 중에서 미국 다음으로 최악이다.
 
상위 10%의 소득이 중하위 90%에게 흘러내리지 않는다면 정부는 망가진 경제적 순환구조를 시장 메커니즘에만 맡겨둘 수 없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고 사회구조를 개혁하는 정치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상위 소득 45%로 악화되고 있는 불평등 구조를 방치해 놓으면 한국은 미국과 같이 상위 소득이 절반에 이르는 나라가 될 것이다.
 
지금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정치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2016년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소득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해서 중산층을 복원하느냐는 것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권자들은 ‘더 공정한 대한민국’을 열망하고 있다.
 
지난 11월에 있었던 캐나다 선거에서 ‘열에 아홉 가족’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 유권자들의 폭발적 관심을 끌었다. 미국과 유럽의 진보들도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특히 중산층 90%의 가족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위기 이후 사회불안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안정감을 주는 가족의 중요성에 새삼 눈뜨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사회에서 아동에 대한 더 많은 사회투자가 가족정책의 핵심으로 등장할 것이다.
 
유권자들은 90%의 강한 중산층 복원을 위해 상위 1%에 차별화된 조세개혁을 원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저부담 저복지 국가에서도 일률적인 세금인상은 유권자들의 반발만 불러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소득수준에 따른 합리적 조세부담의 조정이 그 어느 선거보다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의 핵심쟁점은 상위 10%의 소득이 아래로 중하위 90%에 흘러내리는 순환적 경제구조를 만드는 조세개혁이 될 것이다. 대기업을 향한 불공정한 조세우대 정책들도 세제 개혁의 한 방향이 될 수 있다. 청년을 위한 일자리 기회 제공, 지불가능한 집값을 실현하는 정책과 같은 강한 중산층 복원 공약들도 이러한 조세개혁에서 출발해야 시민적인 설득을 얻을 것이다.
 
올해는 2008년 위기 이후 최악의 불평등 상황이다. 이번 총선에서 90% 강한 중산층을 만드는 ‘더 공정한 대한민국’이 유권자들에게 가장 호소력 짙은 아젠다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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