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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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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한집 걸러 치킨집…대한민국은 '자영업공화국'

젊은이도, 중장년도 하나같이 '자영업'…과포화로 출혈경쟁 "다 같이 죽는 길"

2016-03-0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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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은 찾을 수 없는 반면 기대수명은 길어지면서 은퇴 후 창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직장에서 떠밀린 베이비부머 세대가 한 집 걸러 하나씩 치킨가게나 커피전문점 간판을 단다. 퇴직금에, 어렵게 대출까지 끌어안고 자영업에 뛰어들지만 이중 절반은 3년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대부분 투자비용을 회수하지 못하고 사업을 접기 때문에 재활도 어렵다. 사실상의 파산이다. 그럼에도 직장에서 내몰린 사람들은 은행 돈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든다. 특색도 없다. '먹고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생계형 자영업이다. 높은 자영업 비율은 제 살을 깎는 과열경쟁을 촉발한다. 또 다시 폐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중산층의 붕괴를 낳는다. 자영업자들의 실태를 확인하고, 이들을 정책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을 좇았다.(편집자)
 
"생존율이 한 30%쯤 될까요? 한 달 사이에 주인이 바뀌는 경우도 있어요. 워낙 빠르게 생겼다가 없어지곤 하거든요."(홍대 치킨집 운영자 김모씨) "지난해 쉬어본 날짜는 열손가락 안에 듭니다. 그것도 와이프가 쉬면 내가 일하고, 내가 쉬면 와이프가 일하는 방식인데, 이렇게 해봐야 한 달에 겨우 200만원 손에 쥡니다."(홍대 커피숍 운영자 안모씨)
 
사실상 비명에 가깝다. 젊은이들은 취업하지 못해, 직장인들은 조기 퇴직으로 저마다 자영업 문을 두드리지만 이들 중 절반가량은 3년 내 문을 닫는다. 특히 음식점과 소매업종, 서비스업종은 폐업률이 더 높다. 폐업한 자영업자의 61%인 약 58만명이 이 3개 업종에 집중돼 있다. 프랜차이즈 기업들도 높은 수익률을 미끼로 이들을 사각지대로 유인한다. '골목마다' 치킨집과 커피전문점인 자영업 현실은 주름으로 가득찬 한국의 서민경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신촌로터리 부근 임대를 내놓은 상점. 사진/뉴스토마토
 
한 집 걸러 치킨집·커피숍늘어나는 '한숨'
 
대학생들과 젊은이들로 붐비는 홍대 거리. 한 집 걸러 치킨집, 커피가게가 자리 잡고 있다. 주변에 동종 가게가 늘어날수록 이곳 상인들의 얼굴에는 주름이 깊어진다. '다 같이 죽는 길'임을 알면서도 같은 간판을 내건다.
 
이곳에서 7년째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치킨장사는 기름 온도를 맞추고 받아오는 물건으로 튀기면 된다"며 "별다른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쉽게 할 수 있다 보니 사람들이 자꾸 치킨집으로 몰리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김씨 가게 옆 건너에 치킨집이 또 하나 들어섰다. 한 집 걸러 같은 업종의 가게가 손님을 나눠가져야 한다. 김씨는 "옆 골목에도 조그맣게 치킨집이 하나 있고, 대로변에도 크게 하나 있다"며 "같은 가게가 계속 생기니까 갈수록 먹고 살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또 "지금 매출로는 인건비도 나오지 않아 홀서빙, 배달을 모조리 혼자 도맡고 있다"며 "동네 사람은 줄어드는데 치킨집만 늘어나고 있다"고 푸념했다.
 
10년째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는 강모씨는 벌써 치킨 브랜드만 네 번째 바꿔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강씨는 "장사를 계속해보니 유행을 타는 체인점은 보통 1년까지는 괜찮은데, 그 뒤로는 매출이 점점 떨어진다"며 "메뉴에 변화를 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나름의 노하우를 공개했다.
 
홍대 거리를 걷다 보면 치킨집만큼 눈에 띄는 곳이 커피숍이다. 가게 주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나는 커피숍을 보며 한숨이다. 점주들은 "행여 사업하더라도 커피숍은 하지 말라"며 입을 모았다.
 
2년째 커피숍을 운영 중인 서모씨는 "월세 250만원에다 아르바이트 인건비, 재료비, 운영비 등을 내려면 하루에 커피 100잔 이상을 팔아야 한다"며 "하지만 주말을 제외하고는 매출이 터무니없이 적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최근 경쟁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저가 커피전문점으로 인해 매출은 30% 가까이 뚝 떨어졌다. 서씨는 "옆 가게와 손님몰이 경쟁에 이어 이제는 가격파괴 경쟁까지 해야 하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5년째 안정적으로 매출을 올리던 강모씨 상황도 다르지 않다. 강씨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을 운영 중이지만, 최근 저가 커피전문점으로 간판을 바꾸려 고민 중이다. 건물마다 하나씩 차지하고 있는 커피숍에 이어 최근에는 저가 커피가 인기를 끌면서 매출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아메리카노 한 잔을 3000원에 팔고 있지만 매출이 줄어 박리다매 전략으로 바꿀까 고민 중"이라며 "장사를 처음 시작하던 때와 비교하면 매출이 20% 넘게 줄었다"고 말했다.  
 
점심시간 텅 빈 커피 전문점. 사진/뉴시스
 
임대료 상승에 '휘청'…유동인구 감소에 '울상'
 
과열된 경쟁만이 자영업자들을 갉아먹는 것은 아니다. 유명세로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몸살을 앓는가 하면, 유동인구 감소로 울상을 짓는 이들도 있다.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2번 출구에서 녹사평대로를 따라가다 보면 회색 담장에 둘러싸인 국군재정관리단이 나온다. 그 길로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까지 연결되는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입소문이 난 커피숍과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이태원 경리단길이다.
 
이태원 경리단길은 임대료가 저렴한 구도심에 스튜디오, 갤러리, 공방 등 예술가들의 거점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레 문화인들이 즐겨 찾을 만한 카페, 식당들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임대료가 올랐고, 결국 원주민들은 이곳을 떠나야 할 지경이다.
 
공방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지역이 뜨니 상가는 한정돼 있고 임대료가 오르는 건 당연시됐다"며 "건물주가 부르는 게 값이라 이번에 재계약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커피숍을 운영 중인 한모씨는 "5년 전 전용면적 33㎡기준 월 임대료는 50만~60만원이었지만, 지금은 300만원대로 상승했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권리금 역시 5배 가까이 올라 지금은 억대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번에는 다행히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다음에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유동인구 감소로 울상을 짓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신촌이다. 이곳 매출의 60% 이상은 대학생들 비중이다. 하지만 연세대가 4000여명에 달하는 1학년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송도 국제캠퍼스에서 의무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수업을 듣게 한 이후로 매출이 4분의 1가량 줄었다.
 
신촌 먹자골목 거리 안쪽 A점포 점주는 "전체 점포 중 절반가량은 인건비만 간신히 건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마저도 안 되는 곳들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얼마 전 위치를 옮길까 싶어 자리를 알아봤는데, 2층이나 지하층 점포는 워낙 빈 곳이 많아 찾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백반집을 운영 중인 박모씨는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연세로 대로변에도 임대 문의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고, 먹자골목 안쪽으로 접어들수록 불 꺼진 점포가 늘어나고 있다"며 "예전에는 소위 잘 되는 집이 3곳이었다면 지금은 1곳도 찾기 힘들다. 같은 시기에 문을 연 가게 중 절반 가까이가 문을 닫았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대문구 이대역 근처의 상점들이 폐업신고로 인해 문이 닫혀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문 닫은 자영업자 8만9000명…5년만에 최대치
 
자영업자의 비참한 현실은 통계 수치로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문을 닫은 자영업자는 5년 만에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자영업자 수는 556만3000명으로, 전년보다 8만9000명 줄었다. 이는 11만8000명이 줄었던 2010년 이후 5년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이다.
 
특히 지난해 자영업자 중에서 종업원 없이 혼자 장사하는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12만명이나 줄었다.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3만1000명 늘어나 영세 자영업자의 폐업이 훨씬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럼에도 기업의 인력 구조조정에 따른 명예퇴직 등으로 직장을 떠난 월급쟁이들이 치킨집, 김밥집, 식당업 등에 뛰어들면서 자영업은 이미 넘쳐날 만큼 넘쳐난 과포화 상태로 치닫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7.4%로 31개 회원국 가운데 그리스(36.9%), 터키(35.9%), 멕시코(33.0%)에 이어 네 번째로 높았다. 2010∼2011년 OECD 회원국의 평균 자영업자 비중은 15.8∼16.1%로 한국보다 훨씬 낮다.
 
산업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인구 1000명당 한국의 음식·숙박업체는 13.5개로, 일본(5.6개), 미국(2.1개), 영국(2.7개) 등에 비해 훨씬 많았다. 제한된 내수시장을 두고 과도한 경쟁이 붙으면서 출혈은 불가피해졌다. 수익률은 낮고 폐업하는 곳은 늘어나는 죽음의 시장이 됐다. 
 
전국자영업중앙회 관계자는 "국내 자영업은 은퇴한 중장년층이 너도나도 가게를 차리면서 과포화됐고, 상호경쟁 과열과 경기 침체로 금방 문을 닫는 구조"라며 "은퇴 후 창업전략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등 자영업자들이 고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업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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