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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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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시론)거짓말이 일상화된 사회

2016-09-0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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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투명사회와 신뢰사회를 천명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사회의 신뢰지수는 하위권이다. 일상에서 만연된 거짓말도 신뢰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한다. 오늘은 얼마 전 방영돼 충격을 준 프로그램 내용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지난 8월28일 MBC 시사매거진에서 나란히 보도한 두 가지 사례가 그것이다.
 
먼저 일산에서 일어난 현유환군 사건을 본다. 의료기관이건 공공기관이건 간에 조금 지나면 들통이 날 일을, 우선 모면하자고 태연히 거짓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사건은 2012년 산모가 A산부인과 분만실에 들어간 지 2시간 만에 사망했고, 태어난 아기는 생명은 건졌으나 뇌성마비 장애아가 된 일이다. 그로부터 4년 동안 진실공방이 진행됐다. 그간의 상황은 말로 듣던 것보다 실로 끔찍한 비극이었다. 방송을 잠시 보는 이들의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지는데, 매일매일 유환이를 간호하는 가족들의 심경은 오죽했겠는가.
 
사고가 일어나자 해당 산부인과 측은 산모의 사망 원인을 양수색전증으로 판단하고 병원에서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해당 병원의 담당 의사는 "마취하지 않고 수술했다"고 증언함으로써 마취제 투여로 인한 의료과실을 빠졌나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이를 지지했다. 법원은 이런 내용을 근거로 병원 측이 유가족을 대상으로 제기한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2012년 3월)에서 병원 편을 들었다. 병원은 산모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가족의 주장은 달랐다. 결정적으로 산모를 부검하니 진료기록에 없는 프로포폴이 검출됐다. 외부 전문가들의 판단도 달랐다. "양수색전증이라면 수면마취제(프로포폴)가 호흡곤란을 유발하기 때문에 투여해서는 안 된다"고 증언한다.
 
진실을 밝히려는 유가족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국과수는 올해 6월 "해당 병원의 진료기록에 신빙성이 없고, 부검 결과 양수색전증으로 판단할 명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발표했다. 국과수가 애초 결론 낸 사인을 뒤집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해당 병원의 담당 의사도 뒤늦게 프로포폴 사용을 시인했다. 이에 따라 경찰이 재수사에 착수, 진실 확인은 다시 원점에 섰다.
 
통계적으로 보면, 의료과실에 따른 소송은 대부분 피해자 측이 패소한다. 의료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사고 당시의 증거를 확보하기도 어렵다. 설사 이제 와서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죽은 산모가 살아나겠는가. 그러나 진실을 밝혀져야 한다. 유가족들의 한을 달래고, 그 힘으로 유환이가 호전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의료과실 여부는 사법당국과 의료전문가들이 규명할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의 산부인과는 의료행정 절차를 그르쳤다. 처음에는 산모의 사망 사실을 은폐한 가운데 현장의 증거들을 인멸하고 부실하게 작성된 의료기록을 폐기했다. 그리고 양수색전증에 적합하게 짜 맞춘 제2차 기록을 국과수에 사후 제출했다.
 
독나무의 열매도 독이듯, 절차를 그르치면 법은 그 절차에서 얻은 내용이 옳아도 증거능력을 부정한다. 정당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면, 수사기관이나 유가족들이 의료과실을 입증할 일이 아니다. 해당 병원이 무과실을 입증했어야 한다. 그렇더라도 의료기록 부실기재와 은폐 및 사후조작 등의 절차 위반은 여전히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두 번째 진실공방은 인천공항에서 벌어진 일이다. 인천공항에서 상습적으로 이·착륙이 지연되는 일이 일어나자 얼마 전까지도 공항 측은 중국이나 동남아 쪽으로 가는 하늘 길이 붐벼서 그렇다고 말했다. 대부분 언론은 이를 그대로 옮기면서 인천공항 측의 주장을 들어줬다. 하지만 사실은 그것과 달랐다. 기장들의 지적에 따르면, 제3 활주로가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폐쇄되기 때문에 정체가 가중된다는 것이다. 활주로 폐쇄 이유는 현재 건설 중인 제2 여객터미널 공사 때문이다. 터미널 연결 철도구간이 제3 활주로 밑을 지나는데 일부 구간에서 침하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천공항 측 주장대로 하늘 길이 붐벼서 이·착륙이 지연된다면, 뉴욕의 J. F. 케네디 공항이나 런던의 히드로 공항 등은 괜찮을까. 지반 침하가 당장의 지하 터널 공사 탓만일까. 터널 공사가 끝나고도 지반 침하가 계속되면 그때는 또 뭐라고 둘러댈까. 인천공항은 갯벌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지반이 침하되거나 누수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상식적인 걱정을 마지막 순간까지 외면할 일이 아니다. 침하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조사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거짓말이 일상화되는 것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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