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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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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시론)반기문 정책 아이디어의 빈곤

2016-09-22 10:31

조회수 : 2,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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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추석을 지나면서 각종 대통령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1위를 굳히고 있다. 스스로도 사무총장 임기를 끝내고 내년 초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대선 행보를 할 것이라고 은연 중에 시사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지지율 1위의 반기문이 어떤 정책 아이디어와 비전을 가졌는지 아는 것이 없다.
 
동아시아의 갈등 관리와 평화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시민들은 알지 못한다. 반 총장은 UN의 수장으로 10년을 지냈고, 이전에는 한국의 외무부 장관을 역임한 외교통이지만 세계 어느 분쟁 지역보다 갈등이 첨예한 동아시아 문제에 대해 어떤 해법도 제시한 적이 없다. 글로벌 정치 지도자라면 자신의 조국이 직면한 국제정치적 문제에 대해 적어도 '반기문의 생각' 정도는 내놓았어야 했다.
 
특히 5차 핵실험으로 사실상의 핵보유국에서 법적 핵보유국으로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북한으로 인해 한반도의 긴장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UN의 수장이라면 전문가의 논쟁 뒤에 숨어 있지 말고 자신의 해법을 제시하고, 6자 회담의 당사자들을 협상의 테이블로 불러내는 시도를 해야 한다. 성사 여부에 상관없이 그런 중재의 큰 정치적 동선을 그리는 것이 그가 말하는 세계 대통령의 위상에 걸맞는 일이다.

지난 10년간 그가 국제 무대의 중심에서 동아시아 문제에 대해 자신의 독창적인 제안을 할 수많은 기회들이 있었다. 예컨대 2018년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데, 민족 화해를 위해 남북 공동 개최와 같은 아젠다를 제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차별화된 국가적 아젠다 설정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지금까지 그가 보인 행보를 보면 아젠다를 설정하는 정치인이기보다 이를 집행하는 조용한 외무관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UN 사무총장이 된 이후에도 독립적인 글로벌 리더로서의 행보보다는 미국의 입장을 충실히 집행하는 대리인의 역할에 머물러 있다. 때문에 그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는 피동적이고 무기력한 정치지도자 이상을 기대할 수가 없다.

3김 이후의 한국 대통령들은 모두 적극적인 고유한 아젠다와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고유한 정치적 포지션과 강한 개성이 있는 후보만이 대통령이 되었다. 거친 한국 정치지형에서 그 정도의 카리스마 없이 대선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1990년대 자치분권연구소를 설립, 오랜 기간 지역주의 체제와 맞서 싸우면서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아젠다를 설정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행정수도와 혁신도시를 핵심공약으로 제시하고, 이를 통해 선거를 주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친기업적 노선으로 시장주의를 대변했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핵심 공약으로 제기했던 한반도를 관통하는 대운하의 개발은 이미 그가 초선 국회의원 시절 구상했던 아이템이다. 박정희 정부의 경부고속도로와 같이 한반도를 관통하는 대운하를 통해 새로운 국가발전전략을 제기하고 이를 통해 집권했다. 이에 대한 정책적 신뢰성과 정당성은 차치하고, 그는 대통령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한 정책 아이디어와 비전을 오랜 세월 동안 숙성시켰다.

박근혜 대통령도 박정희 시대의 발전전략으로 회귀하겠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제기, 복고적인 지지층을 확보해서 집권했다. 표면적으로는 창조경제와 복지국가 공약을 내세웠지만, 유권자들이 받아들인 메시지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와 복원이었다. 절대 지지층이던 중장년층과 고령 인구들이 적극 투표층을 형성했고, 이는 집권의 밑바탕이 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뚜렷한 정치적 아젠다가 있었고 이를 정책 아이디어로 뒷받침했다는 점이다. 대통령 후보가 고유한 아젠다를 갖고 있을 때 비로소 예측 가능해지고, 열성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1년 이상 장기 레이스에서 순간순간 찾아오는 위기를 돌파하고 최종후보로 대통령 선거의 결선에까지 오르게 된다.

대통령 후보는 크게 3가지로 평가할 수 있다. 정책과 비전, 경력과 업적, 그리고 그와 함께 대통령실(presidency)을 꾸려갈 정치세력이다. 이중 선거에서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정책과 비전이다. 한국 정치에서 정책정당은 무늬에 불과하다는 통념이 여의도 정치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경우는 예외다. 대통령 후보에게는 정책 아이디어와 비전이 핵심이다. 시민들은 대통령을 고를 때 그 후보와 일체화된 고유한 정책과 비전을 확인한다. 이 여부가 다선 국회의원에 그치는 정치인과 대통령이 되는 정치 지도자를 나누는 시금석이다.

지금 반 총장에게는 자신만의 고유한 정책 아이디어와 비전이 없다. 그저 업적이 아닌 경력에 덧씌워진 엷은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때문에 현재 지지율도 물거품에 불과하다. 바꾸어 놓으려고 하는 세상에 대한 고유한 정책 아이디어가 없다면 시민들의 열정과 지지를 끌어낼 수 없다. 대통령 후보가 되려는 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치공학적인 세력 형성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려는지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정책 빈곤이 아닌 정책 주도를 보고 싶다.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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