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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준비 없는 '호모 헌드레드 시대'는 불행 뿐

2016-09-2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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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풍요와 의학의 발달, 그리고 에스테틱 화장품의 발명은 인간의 수명을 한없이 연장하고 육체적 노화를 늦춰 준다. 인간의 평균수명은 80세를 넘어 ‘호모 헌드레드 시대’(100세 삶이 보편화되는 시대)를 예고하고, 너도나도 ‘백세인생’을 부르며 오래살기를 소망한다. 지난 2000년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7%에 달했고, 2015년에는 13.1%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025년에는 그 비율이 20%가 될 전망이니 백세인생이 결코 유행가 가사로 끝나지만은 않을 듯하다.
 
그러나 호모 헌드레드 시대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불청객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찾아드는 병마는 쉽게 피할 수 없다.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었다 한들 노년의 20~30년은 보통 병마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 중 가장 무서운 질병은 치매일 것이다. 우리가 보통 치매라고 하는 것은 서양의 알츠하이머와 비슷하다. 알츠하이머는 정신기능, 특히 기억을 서서히 잃게 하여 돌이킬 수 없게 만든다. 1906년 독일의 신경정신과 의사 알르와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가 치료 불가능한 뇌조직의 퇴행성 신경병(신경세포의 점진적 상실)을 최초로 묘사해서 그의 이름이 병명이 되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작년 한국의 치매 환자는 64만 명으로 80세 이상 노인 5명 중 1명이었고, 2030년에는 127만 명으로 늘어 3명 중 1명이 될 형국이다.
 
일본은 지난 2012년 치매환자가 462만 명에 달해 세계기록을 세웠다. 그래서인지 치매환자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다. 치매라는 단어가 차별적 용어로 일반에게 거부감을 준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난 2004년 후생노동성이 위원회를 발족하고 용어 검토에 들어갔다. 그 결과 치매대신 닌치쇼(認知症)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아베 내각은 “정든 지역에서 자기생활을 인생최후까지 계속하고 싶다”는 많은 국민의 염원을 들어주기 위해 의료, 간호, 예방, 생활지원, 주거가 제공되는 ‘지역포괄케어시스템’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인지증 환자나 그 가족, 그리고 전문가 등 많은 관계자로부터 폭넓게 의견을 듣고 지금까지의 의료, 간호 등을 중심으로 한 대처뿐만 아니라 지역의 관찰체제 정비나 생활하기 쉬운 소프트·하드 양면에서의 환경조성을 위해 정부 12성·청이 혼연일체가 되어 시책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프랑스 또한 정부가 주체가 되어 알츠하이머와의 전면전을 펼치는 중이다. 지난주 9월 21일 올랑드정부는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을 맞아 환자에 대한 지원을 증가하고 여론의 대대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각종행사를 펼쳤다. 많은 연구자들과 과학자들이 알츠하이머에 대항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발표했다. 올해 프랑스에는 90만 명의 알츠하이머 환자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고, 매년 20만 명 이상이 증가할 전망이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프랑스에서는 알츠하이머가 창피한 병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2006년 9월 21일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이 병이 2007년에는 “국민적 대사건(Grande cause nationale)”이 될 것이라고 언론을 통해 발표했고 알츠하이머와 전투를 벌이겠다고 의지를 표명했다. 이는 알츠하이머와의 싸움에 전환점이 되었고, 그 후 2008년에서 2012년까지 4년 간의 플랜을 세워 알츠하이머를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국민적 대사건’으로 시인하고 심혈을 기울인 결과 알츠하이머 환자를 바라보는 프랑스사회의 시선이 변했다. 또한 요양원 시설의 증가와 알츠하이머 환자의 집으로 직접 방문하는 요양보호사 양성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요양원 안에 알츠하이머 환자를 보호하는 구역을 늘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도 지난 9월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치매 인식 개선과 치매 극복 희망 확산을 위해 제9회 ‘치매 극복의 날’ 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한국인 대부분은 이러한 행사가 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갔고 따라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구 선진국들이 지정하고 있으니 우리도 지정해 형식적인 흉내나 내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을 지울 길이 없다.
 
한국사회는 치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고 지원제도도 미비해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이 안고 있는 부담과 고통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노인인구 5명 중 1명이 치매환자인 지금 한국정부도 프랑스정부처럼 치매를 ‘국민적 대사건’으로 시인하고 치매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시설확충을 위해 전면전을 펼쳐야 할 때다. 그렇지 않다면 호모 헌드레드 시대는 불행으로 가득할 것이 자명하다. 박근혜정부는 실속 있는 대책마련에 절치부심하기를 바란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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