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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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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시론)권력의 종말

2016-09-2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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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지난해 11월 전남 보성에서 상경해 정부 수매가에 항의해 시위하던 농민 백남기씨가 사경을 헤매다 며칠 전에 숨졌다. 고인은 경찰 버스에 시위대가 매단 줄을 당기다가 경찰이 뿌린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백씨의 죽음을 놓고 한쪽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다른 한쪽에서는 부검을 실시해서 책임의 소재를 가리자고 하고 있다. 이들 중 과연 누가 방향착오를 범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경찰 관계자는 "머리에 생긴 외상이 물대포에 직접 맞아서인지, 넘어지면서 땅에 찧어서인지, 혹은 다른 원인이 있는지 등을 명확히 들여다보려면 법의학적으로 부검을 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외상의 인과관계를 가려 백씨의 죽음과 경찰의 살수에 대한 인과관계가 끊어지면 경찰은 책임이 없다는 논리로 들린다. 하지만 이런 법리는 왜곡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이다.
 
경찰 관계자가 상정한 '다른 원인'은 무엇일까. 의료진은 고인의 직접적 사인이 급성신부전이라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다른 원인이란 급성신부전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어차피 급성신부전으로 죽을 것이 살수와 겹쳤기 때문에 경찰은 사망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설사 고인이 넘어지면서 머리를 땅에 찧었다고 하여 살수와 사망의 인과관계가 단절되지는 아니한다.
 
구태여 책임을 가리자면 최소한의 직접적 인과관계부터 따져야 한다. '고인이 살수에 맞고 넘어졌다', '사경을 헤매다가 죽었다' 이것이 최소한의 인과관계다. 넘어진 것과 사망 사이에 뇌진탕이나 급성신부전 등 다른 원인이 개입했더라도 살수와 사망 간에 기본적인 인과관계가 단절되지는 못한다. 인과관계를 단순화시키면 '물 뿌림(撒水)'이 '죽음의 수(殺手)'를 부른 셈이다. 인과관계에 다른 어떤 개입이 생겼다고 할지라도 최초의 원인을 단절할 정도가 아니면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경찰은 인과관계뿐만 아니라 살수행위의 정당성도 거론했다. 사건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강신명 전 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시위 진압 도중 농민이 부상당한 것은 안타깝지만, 정당한 공권력 행사는 보호돼야 한다"고 말했다. '살수가 정당방어라면 경찰은 책임이 없다'는 사고로 이해된다. 경찰의 직무집행은 당연히 정당행위이거나 정당방어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정당성은 백씨의 죽음으로 분노하는 대중의 법감정을 덮기 어렵다. 정당성 시비는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처사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수 있다.

백남기대책위원회는 "경찰이 살수차 운용지침을 어겼다"며 폭력진압에 대해 정부가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 말대로 경찰이 살수차 운용지침을 어겼다면, 일단은 정당방어가 아니라 과잉방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고인을 부검할 일이 아니라 살수차 운용지침이 준수되었는가를 따져야 한다.
 
인과관계나 정당방어를 논함은 사태의 벗어나고 본질을 흐리기 위한 면피용이다.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인과관계와 위법성을 객관적으로 계량하고 그에 따라 책임의 한계를 설정하겠다는 태도는 물론 법적이다. 하지만 계량으로 인해 책임을 완전히 면할 수 없다면, 경찰이라고 해서 현행 법의 그물은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다가 더 큰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국민들에게 경찰은 검찰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바로미터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자칫 경찰이 모면하려고 하는 '작은' 책임은 더 윗선의 책임자에게는 '큰' 책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권력에도 엔트로피(Entropy, 에너지 변형)의 법칙이 통용된다. 이것은 폐열 등의 물리량으로 인해 자연계의 무질서가 늘어나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이것이 증가하면 불안정이 늘어난다. 엔트로피가 높아지면 작은 충격에도 큰 파문이 일어난다. 가스가 가득 찬 공간에서 작은 불꽃이라도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것과 같다. 권력의 무질서가 늘어나면 예상하지 않은 엉뚱한 곳에서 불꽃이 일어날 수 있다. 태풍은 엔트로피를 감소시킨다. 공권력은 갈수록 쌓이는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지혜를 갖춰야 한다.
 
권력과 폭력의 뿌리는 모두 힘이다. 힘이 잘 쓰이면 권력이고, 잘못 쓰이면 폭력이다. 공권력이라고 해서 언제나 힘을 정당하게 쓰는 것은 아니다. 공권력은 방심하거나 교만해질 때 정당한 힘이 폭력으로 변할 수 있다. 시위대를 향한 직격 살수는 정당한 힘이 아니라 폭력이다. 공권력은 스스로 폭력화를 경계해야 한다. 공권력이 폭력으로 변할 때 민심은 떠난다. 권력의 종말은 전쟁이나 엔트로피의 폭발처럼 의외의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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