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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사람)“책 거리, 출판 생태계 복원 위한 출발”

권혁재 출판협동조합 이사장, “경의선과 책의 만남 영광스러운 일”

2016-10-06 06:00

조회수 : 9,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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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지독한 '책 사랑'에 철도가 지나던 공간을 책의 거리로 만든 이가 있다. 권혁재 학연문화사 대표 겸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장의 이야기다. 그의 책 사랑은 남다르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신수동 한국출판콘텐츠 사옥 그의 집무실 책상엔 박경리의 ‘토지’, 김정운의 ‘상상하지말라’ 등 5권의 책이 펼쳐져 있었다.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여유로워야 한다는 게 그의 고집이다. 여러 권을 두고 천천히 읽는 습관이 몸에 자연스레 배였다. “이책, 저책 옮겨 가며 책을 읽다 보면 여유도 생기고 다양한 생각도 할 수 있다”고 행복해하는 그에게 책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과 애정이 은은하게 묻어 났다.
 
그가 걸어왔던 30여년의 출판 인생 동안도 책은 늘 친구 같은 존재였다. 대학시절 고고학 서적을 벗 삼았던 그는 1988년 학연문화사를 설립하고 고고학미술 서적을 출판했다. 자신이 사랑하던 책들을 한땀 한땀 정성 들여 만들다 보니 29년이란 세월이 켜켜이 쌓였다. 지금까지 출판된 전문서적만 총 600여종에 달한다.
 
2013년부터는 마포구 주최로 협동조합의 이사장으로서 ‘경의선 책거리’ 사업도 이끌고 있다. 오는 28일 오픈하는 책거리는 경의선 홍대입구역 6번 출구부터 와우교까지의 구간에 상설 책 테마 공간으로 국민들의 독서 진흥을 이끌겠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책 거리가 자신처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거리가 되길 바란다는 권 이사장. 개장을 앞두고 그는 잔뜩 설레고 기대감에 부푼 모습이었다.
 
“경의선은 용산에서 신의주까지 남과 북을 잇는 한반도의 주요 철도였어요. 이 철도가 지나는 공간은 우리 민족의 역사가 담겨있던 셈이죠. 그런 공간을 문화적 가치를 담은 곳으로 만들 수 있게 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시민들에게 볼거리와 읽을거리가 조성된다면 제게도 큰 기쁨일 거에요.”
 
준비가 길었던 만큼 사업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길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사업 초창기 협동조합 이사진들이 마포구청에 제안했던 아이디어는 내부 반대의견에 부딪히며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사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던 2012년에는 일본이나 영국처럼 헌책방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실제로 구청 관계자들과 함께 외국에 견학을 가기도 했었고요. 하지만 일부 조합원들이 새 책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니 헌책보단 새 책으로 해보는 게 낫지 않겠냐는 반대 의견을 개진했어요. 의견을 주고 받다가 결국 새 책을 전시하고 판매하자는 쪽으로 가닥이 모아졌죠.”
 
사업 방향이 잡힌 후부터는 어려운 출판업계를 되살려보자는 신념 아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 출판인과 독자 모두에게 혜택이 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우리나라에서 특수 출판을 제외한 출판사 90% 이상이 현재 우리 조합에 등록돼 있어요. 이분들이 만든 소중한 책들이 열차 모형의 부스에서 판매되고 독자들이 이를 구매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시장이 워낙 어렵기 때문에 출판사들이 책을 진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참신한 콘텐츠도 필요한 상황이다. 그는 도서 부스를 콘셉트에 따라 나눠 꾸미고 야외에선 관련 강연이나 음악회 등을 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우선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콘텐츠가 있어야 하죠. 여행, 예술, 인문, 문학 등 카테고리 별로 도서 부스 종류를 나누고 매주 주말에 맞춘 기획전도 선보일 계획이에요. 야외에서는 저자와의 대화나 북콘서트, 강연, 버스킹 등 다양한 행사도 개최할 예정이고요.”
 
그러나 아직 걸림돌도 있다. 바로 운영 예산이다. 정부에서 올해부터 2018년까지 매년 2억650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권 이사장은 야간 관리비 등을 고려하면 앞으로 예산이 부족할 것 같다며 아쉬워한다.
 
“사업이 시작되면 방범비나 행사비가 훨씬 더 늘어날 수 있기에 추가적인 예산확보가 과제에요. 도서부스에서 판매되는 책의 경우 판매가의 10%만 저희에게 들어오기 때문에 큰 수익이 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고요. 그래서 현재 문화관광부 쪽에 자체적으로 건의하고 있어요. 사업 진행과정을 봐서 마포구와의 협의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산 확보가 관건이지만 권 이사장은 앞으로 책거리에 대한 청사진을 이미 그려놨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명물로 만들어 출판 생태계를 복원하는데 일조하겠다는 생각이다.
 
“저 역시 출판사를 운영한지 벌써 30여년이 흘렀지만 종이책이 사양 산업에 들어서면서 사업 환경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어요. 책의 거리는 그런 점에서 출판 생태계를 복원하는 출발점이 됐으면 합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출판단체들의 협력도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검토할 예정이에요. 이 공간이 우리나라의 문화 명물이 되고 이 공간으로 인해 전국에 책 읽는 붐이 조성됐으면 좋겠거든요. 나비 효과처럼요.”
  
권혁재 학연문화사 대표 겸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장. 사진/한국출판협동조합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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