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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철

(시론)계파정치의 일그러진 영웅 이정현

2016-10-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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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의장이 사퇴를 하든지, 내가 죽든지라며 사생결단의 의지를 보였던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단식농성이 7일 만에 끝났다. 이정현 대표의 단식은 정 의장의 사퇴로 이어지지 않아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친히 단식을 만류한 것처럼, 그의 단식은 주군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다함으로써 계파보스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 대표는 이번 일로 박근혜의 남자라는 세간의 타이틀을 재확인했다. 그는 보스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국민과 국가는 많은 손해를 봤다. 이 대표는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헌법 제46(‘의원자율성의 원칙’)를 팽개치고, 대통령의 보호에 충실한 나머지 국정감사를 멈추게 했다.
 
국회가 멈춘 사이, 미르·K스포츠 재단, 농민 백남기 사인규명, ‘최순실관련 의혹, 우병우 의혹 등 국가부패사건을 제때 처리하지 못함으로써 국민들은 엄청난 손해를 봤다. 특히,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던 백남기 씨가 925일 사망했음에도, 그 다음날 단식농성에 돌입하여 민중생존이 외면되었다.
 
파행국회가 여야합의를 통해 정상화되고 있다. 국회가 정상화되는 일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정현 대표가 취임부터 박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 역할을 노골적으로 해왔다는 점에서 이런 사태의 반복을 배제할 수 없다.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계파정치의 퇴행성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계파정치의 부조리는 이문열의 단편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닮았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행태와 말로와도 유사하다. 주인공 엄석대와 한병태의 주군과 꼬봉의 관계는 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현 대표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소설 속 엄석대의 힘은 막강하다. 같은 반 아이들의 숙제검사와 청소검사는 물론 처벌권까지 행사한다. 엄석대는 모범생이고 반장이면서 우등생처럼 행세한다.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로 이사한 한병태는 엄석대를 만나 그의 독재로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얼마 후 병태는 엄석대에게 굴복하고 그의 꼬봉이 된다. 병태는 어느새 권력의 맛에 취해 엄석대의 일그러진 왕국에서 2인자의 위치까지 오른다. 엄석대의 권력은 영원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선생님에 의해 엄석대의 위선과 거짓은 밝혀지고, 결국 그의 독재는 최후를 맞는다.
 
아이들은 엄석대에게 매일 도시락 반찬을 빼앗겨야 했던 일들이며 시험까지 대신 쳐준 일 등 온갖 부조리한 행동들을 폭로한다. 결국 영웅답지 못한 영웅들은 비참하게 일그러진 말로를 보이며 퇴장한다. 마침내 새 담임선생님의 노력과 아이들의 자각으로 학급은 점차 민주적 분위기를 회복한다.
 
지난 89일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 될 때만 해도 이정현의 경력은 찬사를 받았다. 그는 전당대회에서 말단 당직자부터 시작해 16단계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첫 호남 출신 당 대표이기도 하지만 당직자 출신으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당시 이정현 대표에게 국민이 박수를 보낸 이유는 그가 보여준 우직함과 성실함 때문이었다. 국민들은 그의 주장처럼, 금수저도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 소외세력 중 소외세력, 서민 중 서민이 당 대표가 되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엄석대의 위선과 거짓처럼, 단식농성을 통해 폭로된 이정현 대표의 우직함과 성실함은 그 대상이 국민과 국가가 아니라 자신의 주군(계파보스)박근혜 대통령에 전적으로 맞춰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다. <‘박근혜 방패막이이정현보스에 매달린 30년 정치인생>이란 101일자 한겨레신문 기사가 말해주고 있듯이, 그의 우직함과 성실함은 끊임없이 힘 있는 주군을 찾아 보스에게 충성하면서 그 대가로 지위와 권력을 보상받는 데 필요한 봉건적인 생존기술이고, 그런 점에서 퇴행적이다.
 
따라서 이정현 대표의 성공은 오롯이 개인 스스로 성취한 노력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계파보스인 박 대통령에게 충성하여 하사받은 성실함의 대가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정현 대표의 성실함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박 대통령을 비판하여 배신정치의 아이콘으로 공천배제까지 당한 유승민 의원과 너무 대조적이다.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간 시민들은 계파정치의 청산을 위해 공천민주화를 부르짖었다. 하지만 이정현 대표는 거꾸로 계파정치의 지속을 위해 살았다. 이 대표가 자신의 성공을 위해 계파보스에게 충성을 다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점은 일그러진 영웅들의 행태와 닮았다. 계파공천의 역풍으로 지난 선거를 망쳤음에도, 여전히 계파정치를 따르는 이 대표를 보면, 그의 운명 역시도 일그러진 영웅의 말로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서 우려된다.
 
채진원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비교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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