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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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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시론)트럼프 정부와 방위비 협상

2016-11-15 07:00

조회수 :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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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미국 대통령 선거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승리로 끝난 후 한국인들은 걱정이 많아졌다. "트럼프 정부가 방위비를 올릴 것이 뻔한데 우리 정부는 요구한 대로 다 들어줄 것인가"가 관건이다. 우리 정부 지도자들이 미국과 냉정하게 협상할 수 있을 것인가 염려된다. 많은 국민들은 오바마 정부에 대해서는 한국의 동지라고 믿었지만 돌이켜보면, 미국은 미국일 따름이었다. 역대 어느 미국 정부든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이 분담하는 주한 미군의 방위비가 1조원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어느 주머니에서 얼마나 분담되는가, 간접지원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모르고 자세히 알려져 있지도 않다. 사드가 배치되고 전술무기들이 들어오면 방위비는 더 늘어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한국이 방위비를 증액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감축하겠다"느니 "전술무기를 철수시키겠다"느니 등의 요구를 할 게 뻔하다.
 
미국의 무기회사 록히드 마틴은 최근 차세대 전투기(F-35A), 이지스함 전투체계, KF-16 개선사업, 패트리어트(PAT-3) 등 수십조원대의 무기를 한국에 팔았다. 미국은 우리 국방부를 배제하고 비선을 통해 무기 구매를 진행한 탓에 핵심기술 이전 등 우리 측이 요구한 조건은 거의 관철되지 않았다. 이제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된다면 방위예산의 단위 자체가 달라진다. 사드 미사일 1발 값만도 100억, 1개 포대 세트는 '조' 단위다. 우리나라 예산으로 감당될까? 방법이라면 다른 예산들을 희생시키는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가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면 우선 주한미군이 한국의 안보만을 위해서 주둔하는가를 따져야 한다.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에 따라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한다면 무턱대고 우리가 방위비를 증액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미국에 미군기지 사용료를 내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가 "무기를 감축하겠다…어쩌겠다"면서 을러메면, "무기를 감축하니, 마니"할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물론 보수 우파들이나 대북 선제공격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북한이 당장 쳐들어온다고 선전할 테다.
 
하지만 무력 감축론이 불거지면 군비에 관한 명세 공개가 불가피하다. '국가안보'를 내세운 군 당국자들의 일방적인 예산운용이 시정될 것이다. 매년 천문학적 수준의 국방비를 투입했으면서도 당국자들의 지지를 받은 '한국군의 전력이 북한에 뒤진다'는 수수께끼가 풀릴 수 있다. 이왕 엎질러진 물이라면 모험을 걸어 봐야 한다. 트럼프 정부의 방위전략이 잘하면 우리에게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 한국의 맹방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용병으로 변신할 것인가를 잘 판단하여야 한다.

트럼프는 당선 후 우리 정부 수반과의 통화에서 "한국과 100% 함께 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오고가는 방위비 속에 우정이 싹틀까? 그는 대통령 당선 연설에서 "각국과 사이좋게 지내겠다"고 천명했지만 그것은 예의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의 국고가 비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아시아·태평양(亞太) 지역에서 중국의 패권 다툼을 좌시하지는 못한다. 오키나와 주둔군 등 주일미군도 미국의 아태 전략에 의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일본에 공여할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일본의 아시아 맹주 역할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

국내 정세가 불안정하면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트럼프 정부와 냉정하게 방위비 분담을 협상하기 어렵다. 작금의 우리 정치상황을 보면 당사자들의 지적체계만 붕괴된 것이 아니라 통치체계가 고장이 났다. 지난번 서울 시청광장과 광화문광장을 메웠던 20만명의 시위 인파가 지난 주말에는 100만명으로 늘었다. 엄연히 국회가 있고 국비보조를 받는 정당들이 활동하며 정치 지도자들이 시위 현장에서 무엇인가를 외치지만 속수무책이다. 시국에 대해 정치인들 스스로도 무력감을 많이 느낄 것이다.

국민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흉을 보고 탄식하며 거리에 나가 연일 저항권을 행사하는데, 통치자는 광화문 앞에 새로 두른 철의 장막 '버스 방벽' 뒤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시국이라면 우리 정부는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에 얼마나 대차게 대응할 수 있을까? '먼저 인격을 닦고 집안을 다독거린 다음에야 국가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修身齊家 治國平天下)는 가르침이 새롭다. 국민들은 대통령 선거 때 단 한번 행사한 국민투표가 제공한 법적 안정성 덕분에 일반의지(국민총의)를 구기고 있다.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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