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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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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만들었으니 대구에서 끝장냅시다"

(르포)박근혜 대통령 정치적 고향 대구 '제4차 박근혜 퇴진 주말집회'

2016-11-2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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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집회 시작 전부터 모여든 사람들로 이미 인산인해였다. '박근혜 퇴진', '이게 나라냐'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자리를 잡더니 집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집결지였던 '대구백화점 앞'은 만원이었다. 집회를 연 '박근혜 퇴진 대구비상시국회의'는 부득이 장소까지 옮겨야 했다. 주최 측과 시민들은 광장을 벗어나 중앙파출소~아카데미극장에 이르는 400m 구간에 빽빽이 들어섰다. 19일 대구에서 열린 제4차 '박근혜 퇴진 주말 집회' 참가자는 주최 측 추산 2만명(경찰 측 추산 5000명)에 달했다.
 

이날 모인 시민들의 수는 같은 날 다른 지역에서 열린 집회보다 많지는 않았다. 부산은 10만명에 이르렀고, 대구보다 인구가 100만명이나 적은 광주와 대전도 각각 7만명, 3만명씩 운집했다. 대구 집회는 시간도 짧아서 저녁 8시를 넘기자 공식적으로 해산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외친 '대구에서 뽑았으니 대구에서 끝장내자'는 목소리는 그 어떤 구호보다 울림이 컸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에서 보여준 퇴진 요구는 정부의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들의 인내와 분노가 임계점까지 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시민들은 '박근혜 하·하·하(박근혜 하지마라, 하야하라, 하옥하라)'를 외치며 박 대통령을 멸시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고등학생 채○○군은 "대통령이 거짓말로 오리발을 내밀어도 국민들의 뜻을 외면할 수 없다"며 "부끄러운 줄 알고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애초 5시부터 1시간 정도 예정됐던 시민 발언도 30여분을 초과했다. 뒷짐을 지고 웬만해서는 앞에 나서지 않는 게 대구 사람이라는데 할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국정농단에 대한 실망과 분노,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실상은 '우리'가 아닌 '최순실'에 의해 움직였다는 허탈감이 여과없이 표출된 셈이다. 윤○○씨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5%라고 하는데, 오차 범위를 생각하면 사실상 끝났다"며 "한 줌도 안 되는 지지율만 믿고 대구 망신시키지 말고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집회에서는 박근혜 '지지'와 '퇴진' 사이에서 갈림길에 선 대구의 모습도 그대로 엿보였다.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상권 앞에서 열린 집회는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사람들과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데이트와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로 대조를 이뤘다. 대구에서 열린 집회에 모두 참가했다는 박○○씨는 "처음 박근혜 퇴진 시위를 할 때는 어르신들이 손가락질하고 갑자기 뛰어와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며 "지금은 나아진 편이고, 저분들도 우리 모습을 보면 언젠가는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3㎞에 이르는 시민들의 거리 행진을 지켜보던 안○○씨는 "이제 어디서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천생 고아인 박 대통령을 대구라도 이해해줘야 한다"며 "최순실이 나쁜 게지 대통령은 잘못없다"고 말했다. 백○○씨 역시 "참…할말이 많지만 분위기가 있으니까 참고 있다"며 "선동에 휩쓸리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대구에서는 두 진영이 맞부딪치는 모습도 보였다. 8시 집회가 끝나고 주위를 서성이던 시민 중 몇은 마침내 박근혜를 지지하는 시민들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비판하던 노인과 "댁의 주장에는 논리가 없으니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하라고 요구하라"는 노인은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대구=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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