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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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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윗선 지시 따랐을 뿐…" 공무원들의 궁색한 변명

"위법·부당 몰랐다면 무능. 알고도 했으면 고위공직자 자격 없다"

2016-11-2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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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최순실 게이트에 개입해 비선실세에 실질적으로 '부역'한 이들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과 정호성 전 대통령비서실 부속비서관만이 아니었다. 검찰 수사결과를 보면 기획재정부 고위공무원과 문화체육관광부 과장 등 엄격한 법집행을 해야 할 고위공무원들이 이들의 불법을 지원 내지 방조했다. 하지만 이들은 검찰수사로 자신들의 행태가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지난 20일 최순실 사건을 조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가 작성한 공소장을 보면, 미르재단 설립·운영에는 최상목 기재부 제1차관(당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과 하모 전 문체부 대중문화산업과장 등 고위 공무원까지 연루됐다.
 
먼저 최 차관은 지난해 10월21일부터 24일까지 안 전 수석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와 전경련, 정부 관계자 등과 매일 회의를 열고 미르재단 설립을 독려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제1차관. 사진/뉴시스
 
최상목 차관은 지난 10월19일 안 전 수석으로부터 '300억원' 규모의 문화재단(미르재단)을 설립하라는 지시를 받자 이틀 뒤인 21일 청와대 행정관,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 등을 불러 모았다. 최 차관은 이날 "10월 말 예정된 리커창 중국 총리의 방한에 맞춰 300억원 규모의 문화재단을 설립해야 하고 출연 기업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GS, 한화, 한진, 두산, CJ 등 9개 그룹"이라고 지시하며 재단설립을 준비했다.
 
그는 22일에는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실 관계자와 하 전 문체부 과장 등과 회의를 열었다. 전경련이 준비한 미르재단 설립 관련 문서를 보고받은 후 "재단은 10월27일까지 만들고 당일 현판식에 맞춰 반드시 재단 설립허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또 삼성과 현대차 등 9개 기업의 출연금도 분배·확정했다.
 
공소장에서는 특히 최 차관이 23일 회의에서 "아직 출연금 약정서를 안 낸 그룹은 명단을 달라"며 모금을 독촉했고, 안 전 수석과 함께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에게 롯데, KT, 금호, 신세계, 아모레, 현대중공업, 포스코, LS, 대림 등 9개 기업에도 '청와대 지시'를 빌미로 출연을 주문했다고 명시했다. 특수본은 "출연 요청을 받은 18개 기업 중 16곳은 사업계획서 등에 대한 사전 검토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르재단 설립과 관련해 청와대에서 최상목 차관이 움직였다면 문체부에는 하 전 대중문화산업과장이 있었다. 하 전 과장은 10월22일 최상목 차관이 주재한 미르재단 설립 회의(2차 회의)에 참석해 전경련이 보고한 문서를 검토했다. 또 10월26일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으로부터 미르재단 법인설립 허가 신청서류를 서울에서 접수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직원을 서울로 보내 신청서류를 접수하도록 했다.
 
정부세종청사 공무원이 민원인의 서류를 받으려고 서울까지 출장 간 것도 이례적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서류가 제출요건도 제대로 안 갖춰다는 점이다. 공소장을 보면 법인을 설립할 때는 발기인 전원이 날인한 정관과 창립총회 회의록을 제출해야 하지만 이 부회장은 청와대가 정한 시한(10월27일)에 맞추려고 SK하이닉스 날인이 빠진 서류를 냈다. 그럼에도 문체부는 내부 결재를 거쳐 미르재단 설립을 허가해줬다.
 
현행 공무원법에 따르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최상목 차관과 하 전 과장의 행위는 공무원의 품위유지 의무, 성실의 의무에 위배된다. 전국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공무원은 상관의 지시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그것으로 이번 잘못을 덮을 수 없다"며 "고위공무원이나 실무자가 사건의 진행과정 등을 몰랐을 리 없고 그럼에도 협력했다면 형법은 물론 공무원법에 따라서도 처벌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고위 공직자로서 기업에게 거액 출연을 압박하고, 행정절차도 무시하고 결재를 진행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상목 차관은 이에 대해 "미르재단은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민간 문화교류를 위해 필요했고, 거기에 맞춰 실무적인 작업을 진행했다"며 "당시 출연 기업과 금액은 모두 정해진 상태로, 안 전 수석이 재단 설립이 지지부진하니 전경련 관계자를 만나 도와주라고 지시했다"고 해명했다. 기업에 대한 출연요구 의혹에 대해서는 "출연금이나 기업을 넣고 빼는 이슈는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하 전 과장은 미르재단 문제가 터진 후 이달 초부터 문체부 본부를 떠나 있는 상태다. 다만, 하 전 과장은 지난 9월27일 국회 문체부 국정감사에 출석해 미르재단과 관련된 의원들의 질의에 "(미르재단)은 주로 주무관이 담당했고 민법상 법인에 대해서는 정부가 항상 감독하는 게 아니다"며 "저는 재단에도 가본 적 없고 (미르재단)은 저희도 잘 모르고 있던 이슈인데 최근 언론에서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답변했다.
 
한 정부부처 고위직 출신 인사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다그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은 있다"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시키는대로만 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위법·부당한 일이라고 인식하고서도 모른척했다면 공직자로서 기본이 안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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