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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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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삼성물산 합병’ 둘러싼 ‘삼성-최순실-대통령’ 3각 커넥션 의혹

국민연금 ‘찬성’ 직전 전방위 외압 흔적…최경환 의원 고교동기 홍완선 본부장 역할 주목

2016-11-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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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검찰의 칼날이 혈세 50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공단을 정조준 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 찬성표를 던진 것을 놓고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정점으로 한 '박근혜 대통령-삼성-국민연금' 간 뒷거래 의혹을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국민연금은 어림잡아 지난 1년 반 동안 숱한 의혹의 중심에 서왔다.
 
검찰은 24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 이사장)을 소환조사하고 전날인 23일 삼성그룹과 국민연금을 압수수색하는 등 국민연금을 둘러싼 의혹들에 전방위적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을 상대로 한 제3자 뇌물수수죄 적용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찬성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지만, 삼성물산 합병을 전후해 드러난 정황으로 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한 두곳이 아니다.
 
사진/뉴스토마토
 
무엇보다 지난해 7월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을 결정한 과정이 의혹의 대상이다. 당시 국민연금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아니라 내부 기구인 투자위원회가 합병을 결정했다. 당시 여론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 건을 전문위에서 다룰 것으로 전망했다. 불과 한달 전 SK(주)와 SK C&C 합병안도 전문위에서 다뤘고, 합병에 반대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그런데 SK 건보다 더 민감하고 이견이 첨예한 삼성물산 건은 전문위가 배제된 채 국민연금이 독자적으로 입장을 정하기로 했다. 결과는 당연히 찬성이었다.
 
국민연금기금 운용지침을 보면, 의결권 행사는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결정하되 의결권 찬·반을 판단하기 곤란한 안건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자문을 구한다'고 명시돼 있다. 반드시 전문위의 자문을 얻지 않아도 되지만 그럴 경우에는 합당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삼성물산 건은 이런 과정이 생략됐다. 국민연금 측은 "합병 시 기대되는 시너지 효과 등을 고려, 투자위원회가 표결에 부친 것은 사전에 준법감시인 의견을 참고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삼성물산 합병이 의결된 지 2달 후, 국민연금이 투자위원회를 열기 전 삼성 측과 접촉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 설득력을 잃게 됐다. 2015년 9월 국정감사에서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삼성물산 주주총회 2주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고 시인했다. 홍 전 본부장은 "독대도 아니고 합병과정에 대한 공정성과 주주환원 정책 등을 문의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을 둘러싼 의혹에 기름을 부었다. 투자위원회는 기금운용본부장 등 12명으로 구성되지만 사실상 본부장의 발언력이 가장 강하다. 국민연금과 삼성이 모종의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도 이 대목이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이 당시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에게 전화해 '청와대의 뜻'임을 언급하며 삼성물산 합병 찬성을 종용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삼성이 청와대와 정부를 움직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정을 하도록 국민연금을 압박했다는 정황이 확인된 셈이다.
 
특히 최광 당시 국민연금 이사장이 지난해 10월27일 임기를 7개월여나 남기고 사퇴하는 일도 이 이슈와 관련해 숱한 의혹을 양산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홍완선 전 본부장의 연임을 둘러싼 정부와의 갈등이었지만, 최 전 이사장과 홍 전 본부장이 기금운용 시스템을 놓고 오래 갈등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홍 전 본부장은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의 대구고 동기로, 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에서 독립시켜 공사화 하자고 주장하면서 최 전 이사장과 팽팽히 대립했다. 이런 마당에 홍 전 본부장이 독단적으로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을 결정하자 둘 사이의 갈등은 더 커졌다는 설명이다.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된 국민연금 외압 의혹은 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며 폭발했다.
 
당시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열중이었고, 합병은 지배구조 개편의 꼭짓점이었다. 하지만 2015년 5월26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을 선언한 지 일주일 만에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당시 삼성이 확보한 우호 지분은 19.94%, 엘리엇은 11.62%였다. 삼성물산 지분 11.21%를 쥔 국민연금의 향방에 따라 합병이 결정될 판이었다. 자칫 합병이 어그러지면 이재용 체제 구축에도 제동이 걸릴 마당이었다. 삼성은 합병 찬성을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했고, 이런 과정에 비선실세의 힘을 빌린 것 아니냐는게 의혹의 핵심이다.

지난해 가을 취재팀과 만난 전 기금운용본부 고위 관계자는 "당시 삼성물산에 유리하도록 의결권을 행사하라는 청탁이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윗선의 개입 없이 시장에서 의견이 엇갈린 사안을 국민연금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배경에는 삼성과 이를 비호하는 세력이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삼성은 최순실씨 모녀의 회사인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35억원을 입금한 것으로 드러나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특히 이 회사는 공교롭게도 삼성물산 합병이 결정된 당일(7월17일) 법인을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비덱스포츠가 합병에 힘을 실어준 댓가로 최씨에게 보답하기 위한 삼성의 창구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 삼성은 최씨가 설립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도 각각 125억원, 79억원을 출연했다.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실소유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불법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재용 체제 구축을 위해 삼성은 드러난 것만 239억원을 최순실씨 등 비선실세들에게 갖다 바친 셈이다.

최근에는 국민연금이 아닌 기관투자가쪽에서도 관련 의혹이 튀어나왔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23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그룹에서 '김승연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일가가 가까우니 합병에 부정적인 보고서를 쓰지 말라'고 요구했다"며 "배후에 청와대가 있었고,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지 모른다'는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주 사장은 지난해 그룹과의 불화설에 시달리다가 곧 사퇴했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한 결과는 수천억에 달하는 손실이었다. 합병 1년여 만에 주가 평가 손실액이 2300억원에 달했다. 국민연금이 500조원이 넘는 국민의 연금 재산을 재벌 경영권 승계와 정권 비선 실세의 사익을 위해 오용해 막대한 손실을 냈다고 비판받는 이유다.
 
이제 대통령에까지 공이 넘어갔다. 복지부 장관이 나서서 국민연금을 압박하고 최광 전 이사장이 물러난 것은 비선실세를 통해 청와대가 외압을 행사했다는 방증이 되고 있다. 검찰은  특검 조사 전까지 '삼성-최순실-청와대'로 연결되는 제3자 뇌물 혐의 입증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검찰은 삼성그룹이 지난해 10월 최씨의 딸 정유라씨(20)의 독일 승마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35억원을 송금한 과정에도 박 대통령의 개입이 있었다면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행 형법 130조 '제3자 뇌물제공죄'에 따르면,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 또는 약속할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근거 뇌물 액수가 1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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