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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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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후 '5공 청문회' 판박이…'모르쇠' 일관에 "나는 피해자"

2016-12-0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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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잘못된 역사는 참회 부재로 되풀이됐다.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국정농단 사태를 규명하기 위해 재벌 총수들이 청문회에 섰다. 1988년 5공 청문회 이후 28년 만이다. 재벌들은 예나 지금이나 '모르쇠'와 '정권 강요'를 되풀이하며 대가성 등 혐의를 부인했다.  

6일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는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GS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대표, 구본무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손경식 CJ 회장 등 9명의 재벌 총수가 출석했다. 이들을 국회로 불러들인 동인은 성난 촛불민심이었다.  

이날 청문회의 핵심은 대가성과 강제성이었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최씨 등 비선실세를 지원하는 대신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등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에 궁지로 몰렸다. 롯데와 SK, 한화 등도 검찰수사 무마와 총수일가 사면, 면세점 선정 등에서 정경유착의 의혹을 받고 있다. 전경련은 청와대 지시로 삼성 등 16개 그룹에서 총 774억원을 거둬 미르·K재단 등에 상납한 의혹과 함께 해체론에 직면했다.
 
1988년 전두환 정권의 정경유착을 규명하자는 5공 청문회에는 정주영 현대 회장(전경련 회장)을 포함, 최순영 신동아 회장, 류찬우 풍산금속 회장, 장치혁 고려합섬 회장, 이준용 대림산업 부회장,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 등이 증인석에 섰다. 당시 조사 대상은 전 대통령의 호를 딴 일해재단이었다. 재단은 1983년 아웅산테러로 숨진 유가족을 돕자는 취지로 출범, 대기업에서 598억원을 거뒀다. 모금계획 300억원을 훌쩍 넘는, 현재 화폐가치로 따져도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재계 7위였던 국제는 재단에 기부금을 적게 냈다는 이유로 1985년 그룹이 공중분해 됐다. 
 
사진/뉴스토마토
 
일해재단과 미르·K재단 모두 대통령의 측근이 재단 출범과 모금에 관여했다는 점에서 판박이였다. 일해재단은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지금의 국가정보원)이 재단 설립과 모금에 깊이 개입했다. 미르·K재단은 비선실세 최씨와 청와대가 관여했다. 전경련이 모금책 역할을 한 것도 같다.
 
그럼에도 총수들은 5공 청문회와 마찬가지로 대가성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정주영 회장은 "테러 유족들을 돕는다는 취지로 모금했고, 2차 모금 때도 재단 설립의 취지에 찬동해 적극 협조했다"며 "기금 목표가 200억원 이상으로 증액될 때는 내는 게 편하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모금에 대가성은 없었고, 정권의 강요는 시인했다.

이런 입장은 이번 국정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재용 부회장은 "미르·K재단 출연에 대가를 바란 적은 없다"며 "그룹이 하는 문화·스포츠 지원 등은 일일이 다 보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태원, 신동빈, 김승연 회장 등도 "어떤 대가를 바라고 출연한 사실은 없다"며 강제성을 부인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청와대의 출연 요구는 거절하기 어려운 입장"이라며 기업이야말로 오히려 피해자라고 부연했다.

정경유착 속에 그 한 축을 담당했던 재벌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국회의 질타도 이어졌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기부하면 '기브 앤 테이크'가 떠오른다"며 "적게 주고 많이 받는 게 기업 속성이고, 재벌 속성"이라고 꼬집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오늘 청문회에는 일해재단 사건과 관련해 의혹을 산 분들의 자제 6명이 출석했다"며 "정경유착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탄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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