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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국민의 고민과 정치인의 고민

2016-12-1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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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혼란에 빠진 지 47일 만의 일이었다. 232만 명의 촛불 민심이 지리멸렬한 정치권을 압박해 결단을 촉구한 결과는 장엄했다. 일부 정치인들은 ‘위대한 국민의 승리’라고 예찬했고 명예혁명의 날로 규정했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최종 심판이 남아 있지만, 헌재가 판단을 적정하게 하리라 믿는다. 이제 우리 모두는 각자의 본업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고난기를 보내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을 하는 소상인들의 생활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 농민들은 어떠한가. 쌀값이 지난해에 비해 30% 폭락하면서 쌀 변동직불금 예산이 대폭 늘고 보조금 예산이 크게 삭감되었다. 분노한 농민들은 논을 갈아엎고 투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런 중차대한 일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파묻혀 버린 상태다. 박 대통령 탄핵안이 여의도를 떠난 시점에서 정치인들은 하루 빨리 정치를 정상화하고 민생 챙기기에 몰두해야 한다.
 
서민이 살기 어려운 것은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도 민생 문제는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난제다. 따라서 정치권은 이 문제를 두고 끝없는 사투를 벌인다. 특히 세계화로 인한 자유경쟁은 프랑스 소농가들을 비참한 상태로 내몰았다. 외국산 농산물을 일정 받아들여야 하는 쿼터제의 수용은 프랑스산 우유 값과 고기 값을 30%까지 폭락시켰다. 프랑스 농민들은 생활고에 절규했고 정든 고향을 버리고 타지로 직장을 찾아 떠나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를 심각하게 여긴 한 소녀가 정부에 편지를 써 프랑스를 감동시켰다. 그 주인공은 16세의 여고생 마농. 그녀는 지난달 11일 스테판 르 폴 농업부 장관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 페이스북에 올렸다.
 
“53세인 저희 아버지는 부르타뉴 작은 마을의 농부입니다. 저는 16살로 미래가 두렵습니다. 그리고 시골의 소농가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것도 두렵습니다. 우리의 풍경 속에 뿌리 내린 시골의 소농가들은 우리의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대를 이어온 것입니다. 이는 우리 유산의 일부입니다! 소농가의 목장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면 제 아버지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게다가 국가, 그리고 유럽이 그들에게 보조금을 점점 삭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우유 값이 1리터에 20상팀 씩 내리는 소식을 들을 때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장관님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천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습니까? 16살인 저는 미래가 두렵습니다. 프랑스 농부들을 구하십시오, 프랑스의 산물들을 먹으세요!”
 
이 같은 애절한 내용의 편지에 르 폴 장관은 다음과 같이 답장했다. “나 역시 당신 아버지 또래로 부르타뉴 출신입니다…나는 장관 부임 첫날부터 갈림길에 있는 농업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나는 프랑스에서 보조금이 목축과 큰 농장에 좀 더 공정하게 분배될 수 있도록 싸우고 있습니다. 당신처럼 나도 농부들이 세상에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자긍심으로, 아침에 일어나 그들의 일을 시작하며 사랑하길 희망합니다…당신이 옳습니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세계화(특히 우유의 쿼터제)로 인해 몇몇 제품의 가격이 내렸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기업들이 농업에 좀 더 투자하도록, 그리고 유럽이 다시 가격을 올리도록, 특히 고기와 우유 값 인상을 위해 분류 규칙을 바꾸도록 투쟁했습니다. 오늘날 프랑스는 이 영역에 있어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우리 농업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기에 당신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당신의 편지는 아주 아름다운 증인이고 나는 항상 당신이 꿈이라고 부르는 그 가까이에 다가갈 수 있도록 농업을 방어하기 위해 싸울 것입니다.”
 
마농과 르 폴 장관의 대화는 선진민주주의의 안정된 정치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 부럽기도 하면서 가슴 찡하게 만든다. 물론 박 대통령의 실정을 규탄하는 우리의 촛불 민심은 분명 마농의 한 장의 편지보다 더 숭고하고 위대했다. 하지만 이제는 광장보다는 각자 본업으로 돌아가 또 다른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정치권의 행동을 촉구할 때다. 그동안 퇴행만 거듭한 한국 민주주의의 원상복구를 위해, 그리고 과거형이 아닌 미래형 민주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혼란기를 최대한 줄여야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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