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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마법의 거울'에 빠진 한가한 리더

2016-12-26 11:42

조회수 : 3,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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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 모두는 산타클로스나 백설공주 이야기를 한 번씩 떠올린다.
 
빨간모자에 흰수염을 기르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는 산타클로스.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푼 ‘상투스 니콜라스’의 이름을 아메리카 신대륙에 도착한 네덜란드인들이 ‘산테 클라스’로 바꾸고 다시 산타클로스로 영어화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얀 눈을 연상시키는 백설공주 이야기에는 마법의 거울이 등장한다. 여왕이 마법의 거울에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묻자 거울은 "여왕님이십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어느 날, 마법의 거울이 “여왕님도 아름다우시지만, 백설공주가 더 아름다우십니다”라고 하자 여왕은 백설공주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이 불러온 비극의 한 장면이다.
 
이번 연말은 훈훈한 산타클로스보다 슬픈 백설공주 이야기가 더욱 흥미롭게 와 닿는다.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끝없는 의혹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의문의 ‘세월호 7시간’ 행적 속에 불거진 성형 여부와 부스스한 올림머리를 둘러싼 의혹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꽃다운 아이들이 찬 바다에서 수장되는 순간에 박 대통령은 미모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증언들이 쏟아진다.
 
인간은 누구나 아름다워지기를 원하며 늙는 것을 거부한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구해오라던 진시황의 일화도 있지 않던가. 그래서인지 박 대통령이 각종 시술을 하고 갖가지 주사를 맞은 것을 탓할 수는 없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만일 대통령이 아니라 연예인이나 여염집 아낙네 이야기라면 그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정 최고책임자가 중세 왕비처럼 한가롭게 에스테틱이나 하며 그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면 이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5000만 명의 생사여탈권을 쥔 대통령의 무게는 천칭저울로 도저히 달 수 없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에 빠져 국가와 국민을 망각한 이 같은 해프닝이 프랑스 현대사에서도 있었을까. 적어도 프랑스 대통령 중에서는 없었다. 오히려 프랑스 대통령들은 국가가 위기에 빠질 때 이를 돌파하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대표적인 예가 드골 대통령이다. 1950년대 말 프랑스인들이 알제리 문제와 제 4공화국의 무능에 분노하며 거리로 몰려나왔을 때 드골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진정하고 모든 것을 내게 맡겨 달라. 집에 돌아가 달라”고 호소했다. 결국 그는 1958년 대통령이 되어 제 5공화국 시대를 열었다.
 
드골 대통령은 원활한 국정운영과 민의 수렴 차원에서 고문 수를 대폭 늘렸다. 이는 사회당 정권의 미테랑 대통령에까지 이어져 1981년 엘리제궁에는 약 40여 명의 고문이 있었다. 고문은 정부 내 각 부처 현안들을 다뤘으며 필요 시 다른 주제로 관심을 확장할 수 있었다. 고문들의 주요 역할은 시민사회와 국회, 지방자치단체 대표, 기자들을 만나 의견수렴을 한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매일 3개 이상의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고문들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거나 측근을 통해 메모를 전할 수 있었다. 또한 개인적인 의견을 대통령에게 건네거나 대통령의 선택과 태도에 관한 조언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전달된 메모를 비서실장이 선별해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대통령은 이를 토대로 소통하고 정책 결정에 반영했다. 이 업무를 충실히 하는데도 대통령은 많은 시간을 써야만 했다. 이밖에 국방·외교 등 다른 정국현안까지 챙겨야 하니 업무량이 얼마나 많았을까.
 
이처럼 통상의 대통령이라면 꽉 짜여진 스케줄로 눈 코 뜰 새가 없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어떻게 그 많은 시간을 미용에 할애할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정상적인 시스템 운영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공식 업무계통이 아닌 밀실의 비선라인에 의존하며 일을 했다. 박 대통령이 보통의 국가 지도자처럼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국정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고자 동분서주했다면 결코 마법의 거울을 가까이 할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어떤 대통령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한 국가의 운명이 엇갈린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은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에 나서며 깨닫는다. 이 사실을 되새기고 내년 대선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을 다짐한다면 남은 연말이 그리 춥지만은 않을 것이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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