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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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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시론)과거와 미래의 '일자리 충돌'

2017-01-12 07:00

조회수 : 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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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일자리 문제로 20세기와 21세기가 충돌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가 근대적인 방식으로 일자리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이달 17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다보스포럼에서는 미래 일자리를 놓고 다양한 의제가 활발하게 논의된다. 유권자들에게는 아무래도 미래보다 과거 형식인 무역전쟁과 보호주의가 더 피부에 와 닿는다. 대선을 앞둔 한국도 일자리 전쟁이 벌어질 태세다.

반기문 캠프는 아직 그가 국내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7대 경제공약'을 내놨다. 내용을 뜯어보면 전형적인 포퓰리즘 공약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한 나라를 5년 동안 끌고 가겠다는 대선 후보의 공약이라면 일자리를 몇개 만들고 임금을 얼마나 올리겠다는 단순수치를 넘어 공약 간의 지도와 논리가 보여야 한다. 논리적 일관성과 맥락도 없이 마냥 좋아 보이는 정책들을 잡동사니 만물상처럼 모아둔 것이라면 포퓰리즘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선 공약에는 개별적인 정책들을 넘어 메타 아젠다(Meta agenda)가 보여야 한다. 그래야 유권자들에게 메시지가 전달된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도 정책의 정합성에서는 트럼프보다 클린턴의 경제정책이 더 정교하고 치밀했다. 그러나 미국 유권자들은 클린턴의 정합적인 정책보다는 트럼프의 일관된 보호주의 열정에 더 매혹됐다. 멕시코와 국경을 장벽으로 막겠다는 황당한 주장도 일관성 있고 반복적으로 제기되면서 하나의 단일한 메시지와 정책으로 유권자들에게 전달됐다. 동시에 중국, 한국 등과의 무역전쟁에서 태평양 연안에 쳐질 보호무역 장벽도 동시에 느껴졌다. 트럼프는 보호주의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유권자에게 심어줬다. 그 결과, 트럼프의 악동스런 보호주의를 보수든 진보든 거의 모든 유권자가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였다.

반면 반기문의 7대 경제공약에서는 유권자가 신뢰할 만한 일관된 메시지나 방향성을 찾을 수 없다. 청년 초봉 200만원, 해외 청년일자리 확충, 특성화고 무상화는 그의 취약점인 2030세대를 겨냥한 공약으로, 반시장주의적 정책도 고민 없이 갖다 썼다. 트럼프라면 이런 정책은 집권과 동시에 가장 먼저 폐기되어야 할 것들이라고 목청을 높였음에 틀림없다. 더구나 보육과 의료 등 공공 일자리 정책은 지난 대선 때부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매특허 공약이었다.

보수세력들이 자유주의를 자처하면서 지난 30년간 맹비난했던 공약이 어느새 보수의 정책기조가 됐다. 이 공약들이 국내 유턴기업 지원확대와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규제 시스템의 전면적 조정이라는 친기업적인 정책과 논리적으로 일관성을 갖는다고 유권자들은 믿을 수 있을까. 구색 맞추기처럼 전국을 4차 산업 전초기지로 만들겠다는 공약도 약방의 감초로 들어갔다. 보수와 진보의 정책들을, 오로지 표로만 계산해 짜집기했다면 포퓰리즘 외에 달리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정당은 이념을 추구하며, 이념은 정책으로 표출된다. 방향성 없는 정책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는 급격히 변화하는 산업 생태계와 일자리 문제를 '소통과 책임 리더십'란 주제로 14개의 미래 아젠다로 깊이있게 논의한다. 지난해 포럼 주제였던 '4차 산업혁명'은 1년 내내 온 나라를 들끓게 했다. 이 제안은 5년 이내에 일자리 710만개가 사라지고 신규로 200만개가 생겨나, 결국 500만개의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내용으로 사람들을 경악케했다. 이 아젠다는 과학기술의 진보로 생산력이 급격하게 늘어남에도 사람들의 일자리가 대량으로 사라지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올해 이 포럼은 과학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성장과 사회적 포용', '교육과 성 평등, 고용', '에너지와 천연자원', '식량안보와 농업', '금융과 재정' 등 거의 모든 공공정책 분야를 총괄하는 14개 아젠다를 야심차게 제기한다. 그리고 이 14개 분야를 '미래'라는 메타 아젠다로 묶고 있다. 미래 일자리 정책은 개별적인 분야별 정책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화를 조감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펼쳐낼지를 다보스포럼이 말하고 있다.

앞서 2015년에는 미래 일자리 정책에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글로벌 아젠다도 제기됐다. UN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로 2030년까지 인류가 지향해야 할 공공정책의 17개 목표와 169개의 의제를 제시했다. 17개 분야는 현 글로벌 시대에 개별국가와 인류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그해 12월에는 '기후변화협약'이 어렵게 타결됐다. 이에 따라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일자리는 급격하게 사라지고, 재생에너지 분야 등 새로운 일자리가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2년 대선 이후 글로벌 환경과 과학기술 환경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선 후보들은 여전히 포퓰리즘에 근거한 과거형 일자리 정책들을 짜깁기로 내놓고 있다. 사라질 수밖에 없는 과거형 일자리를 신기루처럼 좇는 정책을 아니라, 변화하는 글로벌 미래 일자리 아젠다에 주목하면서 이 나라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그들이 시대의 현자이기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급변하는 글로벌 아젠다를 소화해서 변화를 앞서갈 수 있는 미래형 일자리 정책만은 내놓기를 희망한다.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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