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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호

침대는 왜 과학을 포기했나

힘을 내요. 진짬뽕

2017-01-16 11:03

조회수 :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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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오랜만에 목동을 찾았다. 맛있는 스시집을 찾아가는 저녁외식길에 눈에 들어온 것은 방송회관.
예전 방송통신위원회를 출입하던 당시 가끔 방송회관도 들렀던 기억이 났다. 
 
방송회관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고 하는 민간기구가 방송통신위원회 산하기관으로 있다. 
 
방심위라고 보통 말하는데 이곳에서는 방송, 통신, 보도, 광고 등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와 관련해 심의를 하는 일종의 규제기관이라고 보면 되겠다. 언론이나 미디어를 정부가 통제할 수 없기에 방심위라고 하는 일종의 민간기구에 권한을 맡긴 격이다. 
 
이곳에서 한가지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 
 
하루종일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모든 컨텐츠를 다 심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통 시청자들이나 일반인들이 방심위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민원을 올리면 심의위원들이 검토하고 사후에 시정조치나 권고를 하는 시스템이다. 방송사에서 가끔 하는 사과방송이나 정정보도도 여기를 거친다. 
 
기자들이 거의 찾지 않는 이곳. 한번 심의위원들의 회의를 지켜보았다. 
 
안건은 '침대는 정말 과학인가'였다. 누가 이의를 제기했는지는 모르지만 에이스 침대의 CF 광고내용 중 침대는 과학이라고 하는 문구에 대해서 '정말 과학인지 아닌지 증명해봐야 한다는 건의'가 꾸준히 접수됐다. 
 
일반인인지 경쟁업체인지는 모르겠지만 메트리스에 스프링 넣은게 무슨 과학이냐며 거짓 정보를 선동하고 있다는 식이다. 
 
듣고 보니 틀린말도 아닌 것 같다. 캐치프레이즈가 '침대는 과학'이라는 건데 굳이 물리학, 인체공학적으로 따지고 보면 정말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만든 게 맞냐는 주장이다. 
 
방송과 통신은 거짓된 내용을 송출할 수 없기에 결국 침대는 과학이 아닌 '에이스'로 싹둑 수정됐다. 
 
이 침대제조사의 곤욕은 한번 더 있다. 
 
이번에는 '세계인이 인정한 침대'라는 문구가 덜미를 잡혔다. 누가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출한번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 회사인데 어떻게 세계인이 인정을 한단 말이냐'라는 주장이었다. 
 
듣고 보니 또 틀린말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세계인이 인정한 침대', '침대는 과학'이라는 문구는 다른 문구로 조용히 수정됐다. 
 
당 업체 입장에서 그럴만한 이유라고 인정한 건지 아니면 별걸 다 트집 잡는다며 투덜댄 건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이런 이유는 결국 침대가 과학임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요즘에는 방심위를 갈일이 없지만 이런저런 가위질이 여전하다는 것을 느낀다. 
 
진짬뽕 광고다. 언제부터인가 진짬뽕 광고멘트가 어색하게 들린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옷을 안사입고 진짬뽕만 사먹겠다는 황정민의 자신감이 급격히 쪼그라든 느낌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확인이 안되지만 대략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짬뽕 먹으려면 먹지 왜 옷만들어 파는 사람 괴롭히냐는 식'으로 방심위에 가위질을 요구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광고멘트가 어느날 어색하게 들린다면 방심위에서 서로 치고박고 하는 일이 있었던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
 
광고는 이렇게 힘이 쎄다. 일자리를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의 일자리를 뺏기도 한다.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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