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이향기자]
가장 먼저 눈에 띈 작품은 어느 가장들의 초상화, 아니 영정그림
“망루에 올라가면 대화가 되고 해결이 될 줄 알았어요. 그 안에서 누가 죽으리라고는…”
-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
용산 참사하면 떠오르는 단어 용역 그리고 화염병
적은 보상금을 던져주고 ‘재개발을 해야 하니 떠나라’는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자 돌아온 건 용역의 폭력
망루에 올라 항의하는 이들을 경찰은 무리하게 진압하고 화재가 발생한다.
‘경찰은 정당한 공무집행, 화재의 원인은 철거민이 사용한 화염병, 철거민 모두 유죄’
- 법원의 판결
하지만 화염병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로부터 8년 후,
진압을 지시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용산4구역은 개발되기 시작했다.
“용산참사의 물리적 흔적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국가폭력과 참사의 반복 속에서
용산은 과거의 사건으로만 잊힐 수 없다” - 용산참사 8주기 추모위원회
무악2구역(옥바라지), 월계2구역(인덕마을) 등에서는 아직도 철거 문제로 공권력과 힘겹게 맞서고 있다.
“이 참사에 책임이 있는 국가가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우리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
김이향 기자 lookyh8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