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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호

그냥 도장을 들고 다닐까봐

싸인할때 ♡ 금지

2017-01-23 09:16

조회수 :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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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는 여러가지 생활의 발견이 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 내막을 보면 굉장히 복잡한 과정이 압축된 사례가 많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큰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싸인'이다. 
 
편의점이나 마트, 식당, 생활 어디에서도 우리는 신용카드를 일상처럼 쓴다. 신나게 긁고 신나게 싸인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싸인을 어떻게 할까? 대체로 자기 이름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휙휙 휘갈기거나 줄을 긋거나 하트를 그리거나 점을 찍는다. 매일 일상적으로 하다보니 귀찮은 거다. 
 
하지만 이런 대충 휘갈기는 싸인은 정말 위험한 행동이다. 
 
마트에서 계산할때 하는 싸인은 얼마를 결제할지 확인하는 작업이 아니다. 신용카드를 사용할때 싸인의 정확한 의미는 '배서'다. 양도배서 할때 그 배서다. 
 
배서의 의미는 '내가 가입한 은행에 가서 내 계좌에서 직접 은행장의 허락을 맡아 돈을 빼가시오'라는 뜻이다. 
 
결재를 의미하는 싸인이 아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내 통장에서 돈을 빼갈 수 있도록 내가 허락하니 이 싸인을 들고가서 내 가입 은행에 가서 언제든지 출금을 해도 된다'는 허락의 의미에서 '배서'다.
 
점주는 사실상 그 싸인을 들고 가서 고객의 은행장을 만나 싸인을 보여주며 해당 계좌의 싸인과 비교해서 출금을 허락맡아야 한다. 그렇다고 실제 그렇게 하는 점주는 없다. 카드사들이 대신해주는 명목으로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카드사들이 고객들의 싸인을 일일이 다 확인해서 돈 계산하는 것도 아니다.
(카드사들 반성해라) 
 
왜 이렇게 복잡한 과정이 싸인에 숨어있을까?
 
그것은 신용이라고 하는 것의 시작이다. 
 
신용카드가 나오기 전 사람들은 현금뭉치를 들고다니기 귀찮아 '백지수표'를 들고다녔다. 
 
비싼 레스토랑에서 멋지게 저녁을 먹고 백지수표에 금액과 싸인을 한다음 종업원에게 내주면서 폼나게 데이트를 즐겼다. 당시는 종업원이 그 백지수표를 들고 은행에 찾아가 "돈주세요"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싸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실제 이사람이 쓴 돈이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싸인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백지수표보다 디지털 신용카드 역사가 먼저 들어와 사실상 이 '배서'의 과정을 삼켜버렸다.
 
그냥 '긁으세요'라고 하니 긁는거다. 사실 싸인보다 포인트에 더 관심이 많다. 
 
재밌는 실험을 해보면 CCTV가 없는 마트에 들어가 싸인을 멋대로 하고 다음날 "이거 내 싸인 아닌데요. 난 이런거 구매한 적 없는데요"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점주는 돈을 환급해줘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 싸인이 그 싸인이 맞는지 확인을 해야 하는데 현대사회에서는 생략하는 것이다. CCTV가 있고 그외에 여러가지 물증이 있으니까 가능한 것일 뿐이다. 어쩌면 CCTV가 있어도 싸인은 확인도 안할 것이다 .
 
우리는 통장을 만들때 싸인을 신중하게 한다. 하지만 결재할때는 대충한다. 계좌를 만들때 만약 싸인을 두가지로 다르게 하면 어떻게 될까?
 
은행 직원이 화낸다. "계좌만들때는 싸인을 같게 하셔야지 여러가지로 하시면 안됩니다". 맞다. 싸인은 신용의 기초고 돈에 대한 책임을 물을때 지문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은행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싸인은 서양의 문화다. 그래서 카드를 긁을때 싸인도 자기 싸인으로 꼭 한다. 한국은 도장의 문화다. 
 
이럴바엔 그냥 도장을 들고 다니면서 카드를 긁는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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