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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획)①"판단 기준 뭐냐"…구속영장 심사 객관성 논란

검찰 "일관성 없어"…법원 "사안별 신중히 판단할 뿐"

2017-01-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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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국정농단 사범들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들쑥날쑥하다. 법원은 25일 '정유라 학사농단'을 주도한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최 전 총장의 지시를 받아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입학과 학사관리에 부당한 특혜를 준 김경숙 전 이대 체대학장과 남궁곤 입학처장 등 교수 4명은 앞서 구속됐다.
지난 21일에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관리 혐의(직권남용)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됐지만, 앞서 19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430억원대 뇌물공여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 청구이 기각됐다.
법원은 사안별 수사에 대해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구속의 필요성을 판단했다는 입장이지만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구속영장의 심사기준은 무엇인지, 이해당사자가 많은 재벌총수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판사와 검사, 학자 등의 의견을 통해 짚어봤다.(편집자주)
 
피의자들이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역시 구속이다. 국회의원이나 재벌기업 총수 등 권력층에서 더욱 그렇다. 특히, 재벌기업 총수의 경우 수사 단계에서 구속되면 본인은 물론 기업이미지와 경영권에 큰 타격을 받기 때문에 구속을 면하는 데 그야말로 총력을 다 한다. 수사를 받고 있는 재벌총수 대부분은 거액을 들여 영장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등을 변호인으로 선임해 방어막을 친다. 기소된 뒤에는 집행유예를 받기 위해 실력 좋은 부장판사 출신들을 대거 선임한다.
그러나 한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필요성을 두고 구속영장 청구 주체인 검찰과 영장 발부 심사기관인 법원의 해석이 상당부분 서로 엇갈리고 있다.
 
재벌총수 구속사유 ‘도주 우려, 증거 인멸’
 
2000년부터 현재까지 재벌 총수들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분석해보면 ‘범죄 소명의 정도’, ‘도주 우려’, ‘증거 인멸’ 등이 대부분이다. 사기성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1조3000억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기소된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의 경우 2014년 1년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돼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점이 인정돼 구속됐다. 현 전 회장은 이후 재판을 받다가 구속만기일이 도래했으나 재판부는 같은 해 7월 같은 이유로 직권 구속했다. 롯데홈쇼핑 납품비리 사건과 관련해 3억원대 횡령·배임수재 혐의로 수사를 받은 신헌 전 롯데쇼핑 대표도 1차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됐으나 검찰의 재청구를 통해 구속됐다. 법원은 "소명되는 범죄혐의가 중대하고 현재까지의 수사 진행 경과에 비추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CJ이재현·SK최재원, ‘증거인멸 우려’ 구속
 
비자금을 운용하면서 배임ㆍ횡령ㆍ탈세를 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이재현 CJ 회장도 2013년 7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있고 기록에 비추어 증거 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보여진다"는 이유로 구속됐으며, 2011년 12월에는 1천9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형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함께 수사를 받던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에 대해 법원이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당시 최 회장은 구속을 피했지만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는 반면, 최 부회장은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최 회장은 이에 앞서 2003년 2월에도 그룹 지배권 확보를 위해 자신이 보유중인 워커힐호텔 주식과 지주회사 SK 주식을 맞교환토록 하고 SK글로벌로 하여금 워커힐 주식을 인수하도록 해 모두 959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법원이 인정한 구속사유는 "범죄사실이 충분히 소명돼 높은 형량의 처벌이 예상되고 도주의 염려가 있다"였다.
 
한화 김승연 재벌 총수 중, 첫 경찰 구속
 
수천억 원 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나중에 구속기소된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도 2011년 1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됐고, 이른바 북창동 유흥업소 종업원 '보복 폭행' 혐의로 입건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07년 5월 범죄사실 소명, 증거인멸의 우려 등으로 구속됐다. 당시 김 회장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 구속된 첫 재벌총수가 됐다. 2006년 4월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정ㆍ관계 고위인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혐의로 수사를 받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같은 이유로 구속됐다.
 
“법리상 다툼 여지…구속 필요성 인정 안돼”
 
반면,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재벌총수들에 대해서는 ‘범죄 소명’ 부족이나 ‘방어권 보장의 필요성’ 등이 주요 사유이다. 롯데그룹 비리사건으로 2016년 9월 구속영장이 청구된 신동빈 회장에 대해 법원은 "현재까지 수사 진행 내용과 경과,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같은 시기 억대 뇌물수수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에 대해서도 법원은 "주요 범죄혐의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는 등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포스코비리 정동화 영장 두번이나 기각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의혹으로 2016년 8월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동훈 전 폭스바겐 코리아 사장, 같은 해 4월 광고기획사로부터 부정한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 등)로 영장이 청구된 백복인 KT&G 사장도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 등에 비춰볼 때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구속을 면했다. 2015년 포스코 비리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은 박 전 사장과 같은 이유로 두 번이나 영장이 기각됐다. 100억대 횡령배임혐의로 조사를 받던 이석채 전 KT 회장도 2014년 1월에, 수백억대 탈세와 횡령혐의로 조사를 받던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도 2013년 12월 "현재까지의 범죄혐의 소명 정도 등에 비춰볼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구속을 면했다.
 
수사단계 구속 면해도 법정구속 가능성
 
검찰 수사 단계에서 구속영장청구가 기각됐더라도 본 재판에서 실형을 받고 법정 구속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앞서 언급한 SK그룹 최 회장이나 3000억대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를 받은 한화그룹 김 회장도 수사 단계에서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됐지만 본 재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불구속 기소된 효성 조 회장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법원은 고령과 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법정구속하지 않았다.
 
430억원대의 뇌물공여와 횡령·위증 등의 혐의로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9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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