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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획)②"영장발부 심사 기준 판단 너무 주관적"

'도주·증거인멸' 등 기준 추상적…확대해석·자의적 판단 우려

2017-01-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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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우리 헌법 12조 1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며 엄격한 영장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국민의 인권과 재산권을 두텁게 보고하기 위한 취지이다. 영장주의는 수시기관의 강제처분에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형사소송법상 법관은 구속여부를 결정할 때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볼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함을 전제로 한다. 여기에 주거 부정, 증거인멸 염려, 도주염려 등의 사정을 구체적으로 판단한 뒤 범죄의 중대성이나 재범 위험성, 피해자나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를 고려하게 돼있다.
 
법원행정차가 발간한 법원실무제요에 따르면, 구속사유(구속의 필요성) 중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에 대한 판단은 재판에서의 유죄판결처럼 고도의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피의자에 대한 무죄추정을 깨뜨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범죄혐의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인정된다면 구속영장청구서에 기재한 사실이 실제 범죄사실과 일부 다르더라도 영장을 발부하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주거 부정’에 대한 판단은 주거의 종류와 거주기간, 주민등록 유무, 피의자의 직업, 가족관계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학계에서는 주거부정을 ‘도주우려’의 하위 사유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에는 교통과 이동통신의 발달로 ‘주거부정’에 대해 점차 제한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 법원 등 실무 관련자들의 설명이다.
 
‘증거인멸’은 구속사유 중 상대적으로 넓게 해석된다. 피의자를 구속하지 않으면 증거방법을 오염시키거나 공범·증인·감정인 등에게 부정한 영향력을 행사해 수사와 공판진행을 방해할 위험성이 있는 때를 말한다. 이런 위험성은 일반적 또는 추상적인 위험성만으로는 부족하고 구체적인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법원 실무 경향이다.
 
‘도망의 염려’에 대해서는 주거부정이나 증거인멸보다 심사기준이 상대적으로 세분화돼있다. 도주의 주관적 의도가 있어야 하며, 이를 판단할 때에는 범죄 횟수나 수법, 결과, 자수여부 등이 심사 기준이 된다. 직업이나 가족관계, 건강상태 등 피의자의 개인적 사정도 심사 기준이다. 특히 법원은 외국과의 연결점이 있을 경우 구속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피의자의 가족관계도 심사 기준이 된다. 가족간의 결속력이나 피의자가 부양해야 할 가족 유무 등을 판단한다. 사회적 환경에 대해서도 살펴야 한다. 피의자의 지역사회에서의 거주기간과 정착성의 정도, 피의자 가족의 지역사회와의 유대 정도, 이웃과의 친밀도 등도 판단한다.
 
한편, 법원실무제요 상에 나와 있는 구속사유 심사 기준에 대해서는 영장전담판사의 주관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청구 기각사례다.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독립적 고려사유로 판단해 논란을 불렀다. 조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범죄의 소명정도와 법률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진행경과 등과 함께 “주거와 생활환경에 비춰 현 단계에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없다”고 기각사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영장전담 부장판사 출신의 한 로펌 변호사는“주거와 관련한 기각 사유를 판단할 때에는 첫째 주거가 일정한지를 먼저 고려하되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할 경우 도주우려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 게 원칙이다. 단순히 주거와 생활환경만을 고려해 영장을 기각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 출신의 형사 전문 변호사도 “돈 많은 재벌은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매우 부적절한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송광섭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의 논문 <구속영장기각결정에 대한 불복제도의 허용>에서 재벌총수들의 영장기각 사유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범죄 소명의 부족’에 대해 “소명부족은 수사 초기 또는 수사 중간단계에서 충분히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사실관계나 고의, 인과관계에 관한 소명은 수사하는 전과정을 통해 규명되는 것”이라며 “법원은 소명부족을 이유로 하는 영장기각을 자제하고 검찰의 수사필요성에 대한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75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해 9월29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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