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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시론)고용 절벽과 일자리 만들기

2017-02-01 15:03

조회수 : 3,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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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일정이 3월 중순으로 가시화하면서 각 정당과 대선 후보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정당마다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규칙이 결정되고,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해소할 굵직한 공약들이 하나씩 제시되고 있다. 정치인의 공약이 빈 공약(空約)이 된 경우가 다반사여서 국민들의 관심이 높지 않지만, 공약은 후보의 철학과 비전을 담은 대국민 약속으로 그 의미와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19대 대선,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과 개혁과제는 무엇인가.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촛불시위는 적폐 청산과 사회 대개혁을 주창한다. 정치 민주화뿐 아니라 재벌개혁 등 경제 민주화가 그 요체이다. 사회 불평등과 격차 사회의 타파를 통한 공정한 대한민국을 요구한다. 하지만 거창한 구호보다 더 절박한 것은 일자리 문제로 모아진다. 만성적인 청년실업, 비정규직 차별, 최저 생활을 강요하는 최저임금제의 해결을 요구한다.
 
이명박근혜정부 9년 동안 규제완화를 통한 경제성장 및 고용률 70%의 장밋빛 공약은 파산하였다. 통계청의 ‘2016년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실업자는 역대 최대인 101만2000명을 기록했고 실업률은 3.7%로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3.7%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높은 실업률과 함께 고용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먼저 6개월 이상 구직을 하지 못 한 장기실업자 수는 13만3000명으로, 전체 실업자의 13.1%에 달한다. 한 자릿수에 머물던 장기실업자 비율이 2015년 두 자릿수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에 급증한 것이다. 장기실업자가 증가한다는 것은 실업의 구조적인 내상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준다.
 
둘째, 고용을 이끌었던 제조업 취업자의 축소이다. 2015년에는 15만6000명 늘었지만 지난해에는 조선·철강산업의 불황으로 5000명이 줄어들었다. 일자리의 버팀목이었던 제조업의 고용비중은 떨어지는 반면 새로운 성장산업은 뚜렷하지 않다. 셋째, 얼어붙은 고용시장의 가장 큰 피해자는 청년층이다. 청년(15~29세)실업률은 사상 최고인 9.8%, 청년실업자 수는 43만5000명이다. 그런데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따라 청년의 체감실업률을 구하면 22%까지 뛴다. 여기에 취업준비생, 비자발적 비정규직, 단시간근로자 등 사실상 실업 상태인 청년을 포함하면 30%에 육박한다. 설날 만난 친척들의 자녀 중 취직한 청년이 절반도 안 되는 사실은 통계보다 더 정확한 현실이다.
 
지난해까지 어려웠지만 새해 전망이라도 좋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하지만 우리들의 주관적인 희망과는 거꾸로 대내외적 환경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고용창출 여력을 가늠하는 경제성장율 전망치는 계속 떨어져 정부도 2.5%로 낮추었다. 이 전망치도 불안정한 외부 환경을 고려하면 목표에 불과하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무역보복, 트럼프정부의 보호무역주의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외부 변수이다. 국회 탄핵이후 장기화하고 있는 정치 리더십의 공백도 상황 타개를 어렵게 하는 정치적 환경이다.
 
고용 빙하기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실낱같은 희망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표출될 고용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및 대책 마련이다.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한 산업구조 개편, 대기업 편향 정책의 중단, 교육제도 및 직업훈련 시스템의 전면 개조 등 장기 전략과 기반 구축도 중요하지만 당장 문제를 풀 수 있는 단기 처방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방안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먼저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이다. 공공부문은 경기 악화 시 최후의 고용자(last employer)로서 일자리 창출을 선도해야 한다. 보육·안전·의료 등 필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부문의 일자리가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21.3%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러므로 다른 국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공공부문의 인력 확충이 요구된다. 소방·복지·안전 분야의 일자리 창출은 고용 문제 해결뿐 아니라 공공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또한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시간 상한선인 주당 52시간을 넘는 장시간 초과노동을 대기업부터 없애야 한다. 법을 위반하며 주당 52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가 300만명이 넘는데, 이들의 근무형태를 8시간 근무체제로 변경한다면 약 3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이의 현실화를 위해서는 노사정 간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기업은 투자를 확대하고 청년 고용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며, 노동계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선도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일자리 창출과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에 합의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는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광장의 외침을 정치적 공론화의 장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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