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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호

102보에서의 둘째날

다시쓰는 병영일기②

2017-02-2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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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102보에서의 첫날밤은 무난했다. 우리는 아침부터 줄을 서서 화장실을 가고 줄을 서서 씻으러 갔다. 치약, 칫솔, 비누, 비누곽, 수건, 속옷 등등 모두 1개씩만 지급됐다. 잊어버리면 큰일 난다. 안주기 때문이다. 숫가락도 개인용으로 한개씩 주고 왼쪽 상의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밥은 일부러 빨리먹게 했다. 정확시 3분으로 주고 시간이 지나면 식탁을 발로 찼다. 안씹고 밥을 먹은 적은 처음이었다. 하루종일 '개새끼야 밥 좀 빨리 처먹어'라는 조교들의 말이 여기저기서 귀에 울렸다. 일부러 군기를 잡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자대배치를 받고 나니 일부러가 아니라 진짜로 그런 거였다는 걸 깨달았다.
 
훈련소 둘째날은 할일이 없다. 하루종일 앉아있다. 군복을 받고 A급, B급, C급이라는 것의 의미를 알았다. 군화는 뻑뻑했다. 이걸 신고 어떻게 싸우나 싶었는데 적응되면 운동화보다 좋다. 모두들 화생방 훈련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저녁에는 글을 쓴다. 국가와 충성, 부모님 머 이런 내용들이다. 
 
한번은 저녁에 삼삼오오 팀을 짜서 글을 쓴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군대를 가면 막상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이 많지 않다. 반의 반도 안된다.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온 사람이라는 것을 확 깨닫는다. 게이바에서 일하다 온사람도 있고 불량패, 깡패도 많다. 근데 막상 모아놓으면 나쁜 행동은 안한다. 
 
한번은 저녁에 글을 쓰는데 귀찮아서 "너가 써"했다. 그 친구는 10여분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늦게 알게 됐다. 그 친구는 글을 쓸 줄 몰랐던 것이다. 괜히 둘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내가 다 썼다. 
 
밤에 잠을 자면 애들이 자꾸 잠꼬대를 한다. 훈련은 하지도 않았는데 잠꼬대가 심해서 새벽에 자주 깬다. 다들 집에 가고 싶나보다. 
 
화장실을 가려면 허락을 맡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신체리듬이 그렇게 맞춰진다. 똥오줌도 정해진 시간에만 나오게 된다. 자대배치를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최첨단 시스템으로 해놨다. 병역비리가 많아서 그런가 보다. 그래도 좋은데로 빠져나갈 놈은 다 빠져나간다. 아무래도 억울하다고 생각하며 죽지마라는 의미인 것 같다.  
 
별의별 부대가 다 있다. 난 원래 31사단(광주)로 갈 팔자였는데 한번 연기하면서 춘천으로 빠졌다. 그래도 군대는 강원도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쁘지는 않았다. 강원도에는 별의 별 부대가 다 있었다. 칠성, 이기자, 백마, 백골, 맹호 등 이름도 무섭다. 난 이왕이면 빡세게 자대를 가고 싶었다. 왠지 그런 분위기에서는 그렇게 된다. 말같아서는 특전사다. 하루종일 걷고 밥먹고 하는 일없이 102보의 밤이 깊어갔다. 
 
그놈의 달은 엄청밝고 귀뚜라미 겁나 운다. 내일은 편지를 쓴다는데 누구한테 쓸까. 중간에 몇명이 몸이 불편해 귀가했다. 부럽지 않았다. 왜냐면 언젠가 또 올텐데 그럴빠엔 지금 끝내는게 낮다.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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