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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호

숲을 떠난 원숭이

빨간건 사과

2017-02-22 09:39

조회수 :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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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적 숲을 떠난 원숭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겨레21이었는데 20년도 더 넘은 것 같다. 주제는 노마디즘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과 원숭이는 털이있고 없고의 차이밖에 없어서 원숭이를 인간, 숲을 사회정도로 비교해서 쓴 글로 기억한다.
 
내용을 기억하기는 힘들다. 아마 난 중학생정도였던 것 같은데 현실사회에 대한 염증과 개선불가능에 관한 글이었던 것 같다.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이었을텐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숲을 떠나고 싶었나보다. 적자생존, 정글, 아비규환같은 숲을 떠나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자유를 만끽하고픈 사상에 대해 글을 쓰신 것 같다. 그때는 인터넷도 없을때라 다시 보고 싶으면 한겨레21에 문의해야 할텐데.
 
우리는 인간사회에 짜증을 느낀다. 누구나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방랑하며 자유에 흠뻑 젖고 싶다. 여름휴가만 기다리는 이유다. 그리고는 다시 목줄에 매여 노마디즘을 목이 타게 애원한다. 현실세계에서는 금과 보석을 두른 원숭이만 노마디즘을 만끽할 수 있다.
 
원숭이가 숲을 떠나는 이유는 수컷놈들이 서열전쟁을 벌이느라 짜증이 나서기도 하지만 '정글의 법칙'이 깨져서기도 하다. 법칙이 깨지면 서로 물고 뜯고 난리나기 때문에 못볼 꼴 보기전에 숲을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숲을 떠나는 원숭이도 막상 갈곳은 없어 금과 보석을 두른 원숭이만 먼저 피신하게 된다.
 
아주 오래전 이 숲에서 아비규환 같은 일이 있었다. 법이 깨진 것이다. 그 우두머리 원숭이는 아비규환을 진정시키고 모든 원숭이들에게 자유를 주었는데 얼마 못가 다시 지옥이 된 것이다.
 
그 우두머리 원숭이는 진시황제다. 그는 지옥에서 해매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중국을 통일했다. 그리고 자유를 선물했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해 진시황은 자기가 지옥문을 연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욕망이 법과 칼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영웅 진시황은 그렇게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을 통제하기 위해 글과 말을 없앴으며 종교를 권장하고 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늦었다. 그렇게 진은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했지만 제일 빨리 망한 왕조로 기록됐다. 인간의 자유로운 욕망이 법을 부셔버린 것이다.
 
서로 물고 뜯고 잡아먹는 사람들을 더이상 법이 통제하지 못해 결국 항우의 손에 진은 망했다. 그 욕망은 다시 유방의 손에 사라지게 됐다. 한고조는 그렇게 진시황을 교훈삼아 몇백년을 이어가지만 결국 욕망앞에 갈갈이 찢겨진다.
 
법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기 보다는 정확히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는 수단이다. 법은 그래서 종교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카톨릭과 사리기독교의 사랑, 유교의 예, 불교의 자비는 진실을 말하면 구세주가 아니라 욕망을 통제하려는 기구다. 법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욕망이 모두 터져나온다면 그곳은 지옥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그 법이 깨질랑 말랑 할 위기에 처해있다. 헌재가 인용을 할 경우 태극기가 화를 낼 것이지만 얼마못가 다른 1명의 보수를 향해 몰려갈 것으로 보인다.
 
기각을 한다면 촛불이 쏟아져나올 것이다. 하지만 촛불은 1명의 진보만을 향해 몰려가지 않을 것 같다. 사분오열하여 법을 위협할 수도 있다. 그래서 문재인씨의 혁명발언은 매우 위험한 말이었다. 진시황이 되겠다는 포부였겠지만 그 화는 더 커져서 사회를 분열시킨다. 보수가 문씨의 발언을 경계한 것은 대권경쟁보다는 사회존립 자체에 대한 우려였다. 
 
법치주의의 의미는 법이 합리적이고 현명해서가 아니다. '인간이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만들어놓은 장벽'에 불과하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나 싸우고 죽일까봐 법으로 장벽을 쳐놓은 것이다. 서로 믿지 못해서 만든 법이 결국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헌재 인용이 되면 큰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보수는 현명하기 때문에 안되겠다싶으면 포기하거나 다른 후보를 찾는다. 하지만 기각이 되면 법을 깨려는 사람이 쏟아질 것이다. 한국진보는 아직 감정이 앞서고 분열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헌재의 결정은 그래서 중요하다. 인용이 되든 기각이 되든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서. 그게 법치주의의 의미다.
 
만약 법이 깨지면 노마디즘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숲을 떠나야 하니 헌재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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