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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정당은 이데올로기적 질서가 있어야

2017-0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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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조기대선 시계는 빨라지고 각 후보들의 치열한 경쟁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번 대선에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은 자기를 알리기 위한 각종 강연과 민생 살피기에 분주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경선규칙을 일찌감치 확정하며 대선후보를 뽑기 위한 로드맵을 제일 먼저 제시했다. 민주당은 이번 당 내 후보 선출과정에서 유권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국민경선제를 도입했다. 이를 놓고 보수 유권자들이 대거 참여해 최근 지지율이 상승한 안희정 충남지사를 찍는 이른바 ‘역선택’ 우려도 제기된다.
 
이 시점에서, 민주당의 국민경선과 안 지사의 정치적 행보가 타당한지 한 번 따져보고 싶다. 역선택 문제 이전에 민주당의 대선 후보를 뽑는데 왜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지 참으로 의아하다. 정당이란 자신들 고유의 후보를 내어 정권 창출을 해내고, 정부정책에 영향을 주고자 하는 하나의 정치 조직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정당은 ‘파당’이라는 말의 동의어다. 프랑스 소설가이자 정치인인 벵자멩 콩스탕(Benjamin Constant)의 용어를 빌리면 같은 정치적 독트린을 공언하는 인간의 집합체가 정당이다.
 
이러한 정당의 개념에 입각하면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는 데 국민 모두가 유권자가 되는 것은 그리 적절치 못하다. 2011년 10월 프랑스 사회당은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한 오픈프라이머리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때 사회당은 경선에 참여하는 유권자의 조건을 룰로 정했다. 최소 1유로를 지불하고 좌파의 가치인 자유사회와 평등사회, 상호 이해하는 사회, 정교분리사회, 정의사회, 결속력 증강을 추구하는 사회를 구가하는 헌장에 동의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뒀다. 적어도 같은 정치적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만이 선거에 후보와 유권자로 참여할 자격이 주어지는 전제조건을 만든 것이다. 이와 달리 이번 대한민국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는 그 어떤 전제도 없다. 참여하고 싶으면 누구나 가능하다.
 
또한 안 지사의 정치적 행보와 발언이 민주당 옷에 부합하는지도 따져보고 싶다. 콩스탕의 말처럼 같은 정치적 독트린을 공언하는 사람들이 뭉쳐있는 곳이 정당이라면 현재 안 지사가 내걸고 있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가치 등은 민주당의 후보로 보기 어려운 점이 많다. 특히 안 지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없는 사람들과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하시려고 그랬다”며 이른바 ‘선한의지론’을 들고 나와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을 연출했다. 이런 안 지사를 후보로 용인한 채 경선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은 과연 무엇을 정당의 이념과 가치로 삼고 있는지 못내 궁금하다.
 
만약 안 지사가 지금과 같은 정치 이념이나 가치를 내걸고 대선 행보를 계속한다면 민주당은 안 지사에게 민주당 옷을 벗어 던지라고 일침을 놓아야 한다. 그러나 우상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일부 민주당 정치인들은 안 지사를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공개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모양새다.
 
프랑스에서는 한 정치인의 정치적 노선이 정당의 이념이나 가치와 어긋날 때 그 정당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걸을 수 없다. 최근 대통령감으로 급부상한 엠마뉘엘 마크롱은 본래 사회당 당원으로 15년 간 활동했고, 올랑드 정부에서 2년 간 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그러나 마크롱은 사회당의 가치와 이념에서 상당히 벗어났고 결국 사회당 정부를 떠났다. 마크롱이 사회당의 옷을 입고 경제정책과 고용정책을 우클릭 했을 때 일부 사회당 정치인들은 마크롱의 선동적 전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전 사회당 당수인 마르틴 오브리(Martine Aubry)는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넌더리가 난다(ras le bol)”는 말까지 했다. 결국 마크롱은 자기의 노선을 고수하기 위해 지난해 8월 장관직을 사임하고 진보와 중도를 표방하는 ‘전진’이라는 정치 단체를 만들고 독자적 대선 행보를 내딛었다.
 
이처럼 한 정당에 속한 정치인이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가 변질되었을 때 그 정당을 떠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정당의 이러한 선명성이 없다보니 정치인들은 원칙 없이 정당을 바꾸고 정치적 행보도 갈지자를 걷기 일쑤다.
 
안 지사가 민주당의 옷을 입고 대연정을 노래하고 선한의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똘레랑스(포용) 정치라기보다는 정당의 이념과 가치를 무시한 기만행위에 가까워보인다. 정당은 콩스탕의 말처럼 같은 정치적 독트린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집합체가 되어야 한다. 민주당 정치인이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겠다는 애매모호한 정치적 노선을 걷는 것은 꿩 먹고 알 먹겠다는 전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민주당이 이데올로기적 질서와 가치를 선명히 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확고한 원칙을 세워 21세기 정당으로 재탄생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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