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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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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사이클의 붕괴)①혁신에 무너지는 한국 제조업

성장은 정체, 경쟁은 심화…몸집 비대해져 변화 대응력 약화

2017-03-1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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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에 법칙으로 통용되던 업종별 사이클(경기순환)이 붕괴되고 있다. 저성장과 경쟁심화 등 산업 구조가 변화하면서 기존 성공 방정식은 설 자리를 잃었다. 융·복합으로 요약되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제조공장이 필요 없는 설계 혁신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전통의 강자들은 강한 도전에 직면했다.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유연성과 개방성 없이는 생존조차 어려워졌다. 규모의 경제로 진입장벽을 쌓았던 한국 제조업은 변화에 둔감한 약점을 보인다. 사이클에 균열이 커지는 현 산업 생태계를 진단했다.(편집자)
 
[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수출은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났다. 지난해 11월 이후 4개월 연속 플러스 성장을 보이며 3년여간 지속된 감소세를 마무리하는 분위기다. 세계 경기가 호전되며 교역 규모가 반등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경기 회복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신흥국도 경기 급락 우려를 덜었다. 하지만 수출 회복을 제약하는 요인도 여전히 산재해 있다. 글로벌 공급과잉, 후발국과의 경쟁심화 등 우리 수출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는 극복하기 힘든 난제다.
 
특히 국내 제조업은 선진 기업들에 비해 성장판이 약화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경기순환 측면에서 확장 국면은 갈수록 짧아지고, 수축 국면에서는 과거보다 성장률 둔화 폭이 커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제조업이 확장 국면에 위치할 때 평균성장률은 1990년대 10.4%, 2000년대 8.4%, 2010년대 8.1%로 과거와 큰 차이가 없다. 반면 수축 국면에서는 1990년대 1.6%에서 2000년대 4.5%로 늘었다가, 2010년대(2016년 11월까지) 2.5%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특히 확장 국면 지속기간은 1990년대 18분기에서 2010년대 7분기로 축소되고, 같은 기간 수축 국면은 4분기에서 8분기로 확대되는 등 정점은 짧고 저점이 길어졌다.
 
유형자산 비중이 높은 국내 제조업이 특히 취약점을 보인다. 외부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지는 과거 구조의 고수가 근본 원인이다. 유형자산이 높아 고정비 부담이 크면 불황기에 원가절감이 어려워진다. 불황일 때 선진 기업들보다 수익성 낙폭이 큰 것은 이런 까닭이다. 국내 주력 제조업인 자동차와 반도체는 유형자산 기반의 대량생산을 특징으로 한다. 현대차는 자산총계에서 유형자산 비중이 32% 정도다. 반도체 전문기업인 SK하이닉스는 53%나 된다. 이처럼 높은 유형자산은 후발주자의 진입을 막는 장벽 역할을 해왔다.
 
반면 중국은 이런 벽을 손쉽게 허물고 있다. 막대한 자국 수요를 담보로 정부의 든든한 자금 지원도 뒤따른다. 스마트폰의 샤오미나 오포, 전기차의 테슬라 등 신흥 제조 강자들은 자산의 경량화를 통해 역동적인 사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아웃소싱에 기반한 생산체제가 이들의 공통점이다. 이런 체제는 고정비 부담을 최소화하고 수요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 등 시장 반응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제품 개발에서는 개방형 R&D 방식이 용이해 개발 기간과 비용도 크게 단축시킨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추월한 로컬 기업들의 성공 비결을 단순히 애국심 마케팅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자동차 산업의 변화도 눈여겨봐야 한다. 2013년부터 저성장과 경쟁이 심화되면서 깊은 침체에 빠져들었다. 현대차 영업이익률은 2009년 6.1%에서 2012년 11%까지 상승했다가 2013년 9.5%, 2014년 8.5%, 2015년 6.9%에 이어 지난해에는 5.5%까지 떨어졌다. 글로벌 자동차 수요 성장률도 같은 궤적을 보인다. 2009년 -3.7%에서 2010년 13.7%로 급반등했다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대에 머물렀다. 2015년에는 1.8%까지 하락했다. 지난해 3.6%로 회복세를 보였지만, 올해 다시 1%대에 그칠 전망이다. 저성장이 굳어지면서 현대차도 부진을 면치 못하는 양상이다.
 
특히 전기차는 시장의 판을 깨는 메가 트렌드다. 기존 자동차에 비해 생산공정이 단순해 진입장벽이 낮다. 배터리를 조달해 차체를 조립만 하면 된다. 내연기관(엔진) 기술로 시장을 지배했던 승자의 법칙이 무너질 수 있다. 지난해 전세계 친환경자동차 중 순수 전기차 판매는 중국을 중심으로 큰 폭으로 성장했다. 전기차의 관건인 배터리 가격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어 가격적 이점도 높아졌다. GM은 지난해 kWh당 145달러였던 가격이 2020년 120달러, 2022년에는 100달러까지 내릴 것으로 예측했다.
 
반도체는 제로섬 게임의 승자들이 과점 시장을 향유하고 있지만 위기도 엄습해 오고 있다. 통상 반도체는 개발과 투자, 양산 시점에 상당한 시차가 존재해 주기적으로 수급 불균형이 발생한다. 하지만 2012년 2월 엘피다 파산 후 과점체제를 구축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사는 투자와 생산량을 조절해 경기 수축기를 단축시켰다. 이는 기존 PC D램 가격 협상 주기가 기존 1개월에서 3개월로 변경되는 등의 변화에서도 나타난다.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은 2009년 2.4%, 2010년 24.6%, 2011년 3.1%, 2012년 -1.9% 등 변동이 심했으나, 치킨게임이 종료되면서 안정화됐다.(2013년 23.9%, 2014년 29.8%, 2015년 28.4%) 지난해 상반기엔 수요가 부진했음에도 반기 만에 다시 수급이 균형을 찾으면서 연간 19%의 이익률을 거뒀다.
 
중국은 이런 흐름에 파문을 일으킬 최대 변수이자, 악재다. 지난해 중국 칭화유니그룹의 미국 반도체 기업 인수가 당국 규제로 실패했지만 자체 3D 낸드플래시 및 D램 라인 설립에 나서는 한편, 중국 국영 파운드리 기업 XMC도 미국 스팬션과 낸드플래시 합작공장 건설에 착수하는 등 진입이 본격화됐다. 올 하반기 이들 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며 메모리 시장에 첫 발을 디딜 것으로 점쳐진다. 시장 최대 매물로 등장한 도시바의 낸드사업이 폭스콘이나 칭화유니 등 중국계에 넘어갈 경우 기존 한·미·일 트라이앵글의 붕괴를 막을 수 없다. 
 
 
차세대 사물인터넷(IoT) 시장의 중심이 될 시스템반도체는 한국이 여전히 취약하다. 핵심 솔루션인 통신칩이나 센서 등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3D프린팅이 제조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을 요소로 꼽힌다. 대량생산 체제를 바탕으로 한 규모의 경제와 저임 우위의 제조 전략이 붕괴될 수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전자산업에서 3D프린팅의 활용 비중은 2020년 평균 24%, 2025년 38%, 2030년 50%로 급속히 높아질 전망이다. 3D프린팅 산업이 가장 발달한 미국의 기술 수준을 100으로 했을 때, 현재 한국의 3D프린팅 수준은 미국 대비 장비산업 42.6%, 소재 37.9%, SW 35.3%로 매우 낮다. 특히 삼성전자를 비롯해 대기업들이 손을 놓고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국가경제 기간인 제조업이 최근 조선, 철강, IT 등 주력 산업의 시장 성숙과 중국 등의 거센 추격으로 활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에 산업별로 차이가 나는 경기 국면의 위치와 향후 방향성 등을 고려해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준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제조업이 재도약하기 위해 기존 기술제품 혁신을 넘어선 비즈니스 모델 전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책 당국이 산업별로 상이한 경기 국면과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국내 경기 전체의 부양 및 안정화 정책을 시행한다면, 개별 산업에서 경기 과열 혹은 경기 급랭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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