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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정

(위기의 600만 소상공인)②중기적합 해제, 골목상권 '찬바람'

올해 적합업종 79개 중 49개 해제…"보호장치 마련돼야"

2017-03-2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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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임효정·정재훈기자] #. 10년간 빵집을 운영해 온 박모씨. 1년전 박씨의 가게 바로 옆에 대기업 프렌차이즈 빵집이 문을 열었다. 프랜차이즈 빵집은 당초 150m 떨어진 곳에서 영업해왔지만 해당부지의 재개발로 이동이 불가피해졌고 결국 동네 빵집과 대기업 빵집이 나란히 붙어 영업을 하게 됐다. 제과점업은 지난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대기업 프렌차이즈 빵집은 신규 출점 시 동네 빵집과의 500m 거리제한과 전년도 말 점포수의 2% 내에서만 가맹점을 신설할 수 있는 규제를 적용 받는다. 박씨의 사례는 재개발, 재건축 등으로 500m 거리제한 없이 이동하게 된 예외적인 경우다.
박씨는 "적합업종으로 지정됐음에도 여러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여기에 규제까지 없으면 동네빵집은 프렌차이즈와 정면 대결할 수 밖에 없고 도산까지 이르게 된다"고 한탄했다. 빵집의 경우 초기 투자비용이 많은 만큼 도산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도 막대하다.
그는 "빵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도 1000만원이 훌쩍 넘는 장비들이 필요하다. 10평 남짓한 빵집을 오픈하는 데 보증금과 월세를 제외하고 1억원 가량 들었다"며 "투자비용의 절반 이상을 대출로 받아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기업까지 소상공인 영역에 들어오면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진다"고 울분을 토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일몰시기가 다가오면서 소상공인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잠식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더이상 없기 때문이다. 국내 소상공인은 전체 종사자의 35%이상을 차지한다. 기형적인 한국경제 구조에서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제재할 수 있도록 법이 뒷받침돼야 한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란 중소기업이 사업하기에 적합한 업종·품목을 선정해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로 지난 2011년부터 시행됐다. 대기업이 무차별적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면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일궈온 음식·숙박·소매 등 생계형 서비스업에까지 진출하자 대기업으로부터 골목상권을 지키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2008년말 이후 대규모기업집단의 계열사 증가는 대부분 서비스업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대규모기업집단의 업종별 계열사는 2009년 1139개사에서 2014년 1616개로 모두 477개의 계열사가 증가했다. 이 가운데 81.1%(387개)가 서비스업에서 이뤄졌다. 이에 따라 같은 기간 제조업 계열사 비중은 32.3%에서 28.3%로 감소한 반면 서비스업 계열사 비중은 67.7%에서 71.7%로 증가했다. 골목상권의 잠식 속도도 빨랐다. 1999년 당시 7조원이던 대형마트의 매출액은 2010년 36조원으로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통시장 매출액은 46조원에서 2010년 24조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산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가 절박했다.
 
현재까지 적합업종은 제조업 56개, 서비스업 18개 등 총 74개 품목(시장감시, 상생협약 제외)이 지정된 상태다. 민간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가 권고하는 형태로 운영 중이다. 때문에 법적 강제성은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합업종 제도가 소상공인의 방어선 역할을 해왔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문제는 소상공인들의 보호막이 됐던 적합업종이 이달말부터 해제된다는 점이다. 금형을 시작으로 골판지상자, 전통떡, 청국장, 순대, 장류, 두부, 단무지 등 49개 품목이 올해 안에 해제된다. 2019년 6월 메밀가루를 끝으로 74개 모든 품목에 대한 적합업종 지정이 풀린다.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는 셈이다.
 
한국장류협동조합 관계자는 "전체 장류 시장은 1조원 규모로 2000여개 업체가 있다. 이 가운데 대기업 5곳이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5인 이하 가내수공업 형태의 영세 업체가 아주 많다"며 "장류시장을 대기업이 잠식하면 영세식자재 도매상들도 대기업제품에 종속되고 소비자들의 선택폭도 좁아지는 것이다. 또 전통장류 제조법 등 보존해야할 기술들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연식품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도 "이미 포장두부(가공두부) 시장의 80% 가까이 대기업이 잠식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어떠한 제도 아래에서 보호 받지 못한다면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동반위와 정부가 아직까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자 소상공인을 포함한 중소기업계는 '생계형 적합업종'에 한해 법제화를 촉구했다.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관련내용을 담은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해놓은 상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영세 소상공인들에 대한 보호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는 요구가 나온다. 차상익 변호사는 "해외 사례에서 적합업종 제도와 동일한 제도는 찾기 어렵지만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제도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며 "일본은 소매시장 지역에 대한 대기업의 진입을 규제하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도 대규모유통업자의 개설을 규제하고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경제에서 자영업자의 국민경제적 비중을 낮추고자 한다면 사회보장제도의 강화가 필요하다"며 "따라서 10년 혹은 15년의 기간을 설정해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 같이 이들을 보호하는 정책과 함께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를 OECD수준으로 향상 시키는 중장기 목표를 동시에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생계형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는데다 업계 내에서 합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넘어야할 산도 많다. 관련 업계 내 한 관계자는 "법안을 내놓은 국회에서 조차 생계형 적합업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현재 적합업종 지정 품목에 대한 업종들은 대부분 생계형으로 주장할텐데 오히려 갈등을 부추길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경기도 내 한 지역. 동네 빵집과 대기업 프렌차이즈 빵집이 나란히 붙어 영업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임효정·정재훈기자 em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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