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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50년 롯데' 일군 신격호의 초라한 말로

남은 등기이사직 모두 퇴진…장남에겐 주식 압류까지

2017-03-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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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광표기자]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롯데 경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오늘 할 일과 내일 할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궁리하고 있다."
 
'창업 1세대', '맨손 기업인'으로 불리며 96세(1922년생) 고령에도 줄곧 경영의지를 드러냈던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인해 여타의 재벌 창업주와는 달리 초라한 말로를 맞고 있다. 껌 장사로 시작해 연 매출 100조원대 롯데그룹을 일군 '유통 거인(巨人)' 신격호 총괄회장이 아들간의 경영권 싸움에 휘말려 '치매'라는 치부까지 드러내면서 창업주의 성공신화가 초라하게 비춰지고 있다.   
 
롯데의 '신격호 지우기'가 마무리 수순에 들어가며 그가 맨손으로 롯데를 세운지 50년만에 쓸쓸한 퇴장을 맞게 됐고 장남으로부터 주식까지 압류당하며 초라한 신세가 됐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대기업을 일구며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아왔던 화려한 경영인의 삶 치고는 끝자락이 너무나도 기구하다.
 
16일 롯데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24일부터 시작되는 주총을 통해 모든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다. 성년후견인 지정 소송과 함께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드러난 것이 퇴진 배경으로 거론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이미 지난해 호텔롯데과 롯데제과 등 주요 계열사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으며 퇴진 수순을 밟아왔다. 하지만 그룹의 위기 상황과 끝나지 않은 경영권 분쟁 속의 퇴장이라는 점은 그의 화려한 경영 인생의 오점으로 남게 됐다.
 
롯데쇼핑은 오는 24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이사 선임건 등을 처리할 예정이다. 임기가 만료되는 신 총괄회장의 임기 연장 안건은 상정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물러나게 될 전망이다. 신 총괄회장은 롯데쇼핑을 시작으로 26일 롯데건설 등기이사 임기가 만료되고 5월에는 롯데자이언츠, 8월에는 롯데알미늄 이사 임기도 모두 종료된다. 신 총괄회장은 올해 예정된 3곳의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면 이사직에 올라 있는 주요 계열사는 단 한 곳도 없게 된다.
 
롯데 안팎에선 신 총괄회장이 96세의 고령인데다 법원으로부터 성년후견인 결정을 받으며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점이 퇴진을 부추긴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건강 문제가 있는만큼 이사직 수행에 어려운점이 있다고 판단해 지난해부터 계열사 임기 만료에 맞춰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공식적으로는 '정신건강' 문제가 퇴진 배경으로 거론되지만 지난달 롯데의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인사를 기점으로 신동빈 회장 시대가 본격 막이 오른 것 역시 '신격호 지우기'와 '신격호 시대의 종언'을 공식화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과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신동빈 회장 체제를 굳히기 위한 마무리 수순으로 신 총괄회장의 영향력을 원천 차단하는 작업의 일환으로도 해석된다.
 
최근에는 신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의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주식 지분에 대해 압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롯데 안팎에선 부친의 지분을 이용해 경영권 분쟁 중인 신동빈 회장과 지분 확보 경쟁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최근 증권사 등 금융업체들로부터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의 롯데제과 지분(6.8%)과 롯데칠성 지분(1.3%)을 압류할 예정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 지분의 가치는 총 2100억원에 이른다. 이에 앞서 신 총괄회장은 지난달 말 자신의 재산을 신 전 부회장이 강제집행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은 지난 1심과 2심에서 모두 정신적 문제가 인정돼 '한정후견인' 대상이라는 판결까지 받았다"며 "조만간 최종심을 통해 신 총괄회장에 대한 후견인 지정이 확정되기 전에 부친 지분을 변칙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밝혔다.
 
더구나 현재 롯데 임직원들 모두 사드 보복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정신적 문제가 있는 아버지를 상대로 지분을 챙기는데 몰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가장 늦게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1세대 기업인으로 롯데왕국의 왕으로 군림해왔던 신격호 시대가 완전히 저물게 됐다"며 "한일 양국에서 거침없는 성공신화를 써왔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결국 씁쓸한 퇴장으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아산병원에서 퇴원하는 신격호 총괄회장 모습. 사진/뉴시스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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